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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8 08:27 수정 : 2008.12.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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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뉴딜] ① 위기에 몰린 서민 가계부
부부가 즐기던 맥주 퇴출…갑작스런 병원비 겁나
전세약세 그나마 위안…‘보물1호’ 카메라 팔기도

불황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서민 가정을 위협하고 있다. 극빈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겉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답답함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평범한 서민 가정이 왜 불안해하며,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겨레>는 이번 기획을 시작하면서, 평범하고 단란한 서민 가정 한 곳을 찾아 생활상을 사실 그대로 소개하기로 했다. 넓고 깊게 퍼져 있는 불안의 실체를 알아야 대책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정훈(38·가명)씨와 조채영(34·가명)씨는 2001년 결혼한 7년차 부부다. 한씨는 한 유통회사에서 판매점 몇 곳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 그가 관리하는 매장 매니저였던 조씨와 ‘눈이 맞았다.’ 부인 조씨는 결혼 이듬해 큰아이를 임신해 회사를 그만뒀고, 지난해 8월엔 둘째아이도 낳았다. “남편은 건강하고, 아이들은 잘 먹고 잘 논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조씨는 “어려운 사람들에 비하면 못 버는 것도 아니고 사치도 안 했는데, 월말이면 언제나 ‘마이너스’”라고 말문을 열었다. 조씨네 통장에는 매월 25일 정확히 289만원이 입금된다. 남편의 월급 268만원과 활동비로 나오는 21만원을 더한 금액이다. 지난 11월 조씨 가정이 쓴 돈을 낱낱이 뜯어봤다. 영수증이 남아 있지 않은 식비 등은 만원 단위로 계산하고 지출을 합산해 보니, 307만8천원이었다. 18만8천원 적자다. 저축은 올해 초부터 못했다. 지난해 50만원씩 붓던 적금도 올해 중단했고, 10만원씩 네 번 넣었던 펀드는 지금 26만원이다.

서울 도봉구의 전세 7500만원짜리 22평 아파트에 마련한 조씨의 ‘둥지’에 적자가 쌓이고 있다. 쌓이는 적자만큼 불안도 커져간다.

맥주 퇴출


조씨의 가계에서 식비 비중은 매우 높다. 수입이 많지 않으니 당연하다. 지난달 외식비 10만원까지 포함해 50만원 정도를 썼다. 형편이 나았던 지난해보다 10만원쯤 줄인 규모다. 올해 적자로 돌아서면서 조씨는 대형 할인점 대신 아파트 단지 안 슈퍼마켓에 간다. 두부·콩나물·달걀 등 반찬거리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산다. 조씨와 남편 둘 다 맥주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맥주도 요즘엔 안 산다. 족발이나 통닭 등 주말 간식도 줄였다. “우유나 아이들 반찬 재료값이 계속 올랐는데, 우리는 적자로 식비 지출을 줄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부가 먹던 것들이 퇴출 1순위”라고 조씨는 말했다.

태권도학원, 기저귀

지난해 둘째아이가 태어난 뒤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뛰었다. 둘째를 낳기 전엔 월평균 32만원 정도 썼는데, 지난달엔 57만6천원을 썼다. 가계 지출에서 가장 큰 규모다. 큰아이 유치원 비용과 교재값 등으로 월 28만6천원을 썼다. 정부에서 받는 보육료 지원금 3만원을 뺀 금액이다. “구립 유치원은 차량 운행을 하지 않아 불편하고, 가격 차이(5만원)도 크지 않아” 사립 유치원에 보낸다. 지난달부터는 태권도 학원에도 월 9만원을 낸다. 6만5천원짜리 겨울 태권도복도 어쩔 수 없이 샀다. 친구들이 다니니 안 보낼 수 없었다. 50% 할인된 동화책 한 질을 인터넷 할부로 구매해 매달 6만원씩 나간다. 작은아이는 모유로 키웠지만, 크게 오른 기저귀값에 예방접종비나 감기약값 등도 만만찮다. 그렇다고 비용을 줄이긴 어렵다. “행복이자 희망인 아이들”에게 조씨 부부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조씨의 말처럼 “앞으로 아이들 때문에 늘어날 지출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게 사실”이다. 아이들은 불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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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지금 두 녀석이 모두 아프다. 작은 녀석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더 심해지고, 큰 녀석은 내복을 안 입으려고 하더니 감기에 걸려 밤새 39도까지 펄펄 끓었다. 두 녀석이 벌써부터 엄마를 힘들게 한다. 제발 아프지만 말아라.”

1년 전인 2007년 12월4일 조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다. 예상치 못한 병원비 지출은 조씨네처럼 빠듯한 가계에선 가장 두려운 ‘암초’다. 혼자 버는 가정에서 아빠 한씨의 건강 역시 생명줄이다. 조씨가 지난해(26만7천원)와 달리 월 소득의 16.8%나 되는 48만7천원을 건강 관련 보험료로 쓰는 이유다. 지난해 큰애가 밤중에 응급실에 실려가 초음파 등 이런저런 검사 등을 하느라 17만원을 낸 뒤로 두 아이 앞으로 의료실비 보험을 들었고, 남편 한씨한테도 월 12만원짜리 보험을 새로 넣었다. 지출이 큰 종신·연금보험의 해약을 고민한 적도 있지만 “노후 불안 때문”에 생각을 접었다.

방 두 칸

그나마 요즘 조씨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전세금’이다. 내년에 계약기간이 끝나지만 요즘 전셋값이 내리막을 걷고 있어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언제 뛸지 모르는 전세금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고, 내집 마련은 머나먼 ‘꿈’이다.

조씨 부부는 결혼 뒤 6년 동안 전세 5천만원에 15평짜리 주공아파트에서 살았다. “중앙난방인 그 집이 너무 추워서” 둘째를 임신한 지난해 대출 3천만원을 받아 지금의 방 두 칸 아파트로 이사왔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천국”이지만, 대신 관리비와 대출이자로 3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전에 살던 집에 들어갔던 돈(16만5천원)의 갑절에 가깝다. 출발점이 문제였다. 남편이 결혼 전에 6천만원 정도 돈을 모았지만, 아이엠에프 사태 뒤 신용불량자가 된 시댁 부모님들의 빚을 갚느라 2천만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하다 보니, 남편이 죽어라 일해도 방 두 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조씨는 “전세가 더 안 올라 이 정도만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메라

2년쯤 뒤에 둘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 조씨는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찾아볼 생각이다. “이 상태로는 당장 아이들 교육비는 물론 남편 퇴직 뒤를 생각하면 끔찍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10년차인 남편에게 일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매장을 관리하는 직업의 특성상 나이가 들어갈수록 실직에 대한 공포는 커지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퇴직금 가운데 일부(1300만원)를 미리 받아 전세자금에 보탰기 때문에 퇴직금도 많지 않다. 넉넉지 않은 친정, 시댁 부모님들이 아플까 걱정이다.

조씨는 얼마 전 아끼던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를 팔았다. 사진 찍는 게 유일한 취미였던 조씨가 첫째 출산 뒤 온 우울증을 이겨보려고 마련한 ‘보물 1호’였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기면 쓸 비상금도 없는 처지라 155만원짜리를 55만원에 팔았다”는 조씨는 형편이 좋아져 카메라를 다시 구입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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