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7 19:21
수정 : 2008.11.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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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캠시 에벌린가 캔터베리 뱅스타운 이주민지원센터에서 수단에서 온 한 이민자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영어이력서를 쓰고 있다.
시드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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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지원센터 대륙 전체에 70여곳 산재
직업교육부터 건강검진까지 한꺼번에 해결
소수민족공동체·모국어 교육도 적극 지원
지난달 15일 오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시드니 서쪽 캠시 애벌린가 캔터베리 뱅스타운 이주민지원센터. 아시아와 아랍,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 100여명이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있었다. 2004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온 세라(28)는 “510시간 동안 무료로 영어를 배웠지만 시민권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곳에선 직업 교육, 사회적응·가정 상담,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고 있으며, 건물 안 병원에서 자궁암 등 각종 성인병까지 무료 검진과 치료도 해준다. 세라는 “센터에 못 오면 방문·전화·인터넷 등을 통해 교육받을 수 있지만 공부·상담·치료는 물론 수다까지 모든 것을 이곳에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날마다 들른다”고 말했다.
2005년 13만7천여명, 2006년 15만8천여명, 지난해 18만4천여명 등 꾸준히 늘고 있는 호주 이주민들은 70여곳의 이주민지원센터를 거쳐 호주 전체로 흩어져 지역사회에 적응한다. 이주민 상담·교육을 하고 있는 송세근(35)씨는 “연방·지방 정부 예산과 지역 업체나 상가까지 내는 기부금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평등한 기회 보장에서 이주민과 내국인의 경계는 없다”고 말했다.
호주의 학교는 다문화 배움터다. 같은 달 17일 오전 시드니 채스우드 고등학교. 우리나라 수능시험 격인 에이치에스시(HSC)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전교생 870여명 가운데 65%는 한국·중국·스페인 등 20여개 나라에서 온 이민자 자녀들이다. 50년 전 문을 연 이 학교는 인종·종교·문화·언어와 관련한 자유와 평등을 학칙으로 정해놓고 있다. 스테파니 뎀시 교장은 “문화 다양성을 존중해 세계인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 목표”라며 “소수자인 한국계 학생을 회장으로 뽑을 정도로 다문화 의식이 성숙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호주 학교에서는 이주민 학생들의 영어가 일정한 수준이 될 때까지 집중적으로 가르쳐 정규 학교 과정에 편입시킨다. ‘다문화 가정 아이를 한국 아이들 속에 넣어놓으면 자연히 말을 배울 것’이라는 식의 한국식 통합 교육과는 달랐다.
특히 호주는 1980년대 초부터 모든 공립학교에서 모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만 20여개국 5만여명의 학생들이 소수 민족 언어 집중 과정인 ‘토요학교’에 다닌다. 16곳에 설치된 토요학교에서 한국어 등 27개국 언어를 가르친다. 채스우드 토요학교 친아무개 교장은 “각 나라의 말은 국제화 시대를 맞아 호주의 중요한 자산이자 호주의 다문화 속 각 민족의 정체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호주 정부뿐 아니라 각국 정부에서도 모국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 민족들의 자립 노력도 다문화 사회 정착에 한몫을 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다문화를 위한 소수민족 협력위원회’(CRC)는 호주에서 손꼽히는 다문화 공동체다. 1980년 주 다문화법에 따라 주정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소수민족 위원회는 지역 공동체를 대표하는 10명의 상임위원과 100여명의 다국적 직원들이 140여 민족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다국적 인력을 활용해 85곳의 나랏말 통·번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주 정부는 해마다 1100만~1200만 호주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며, 위원회가 제안한 다문화 관련 각종 제안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스테펀 커키아샤리안 의장은 “의미 없는 조각을 합쳐 의도된 모양을 만드는 단순한 모자이크가 아니라 각각의 과일·채소가 제맛을 내면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는 ‘샐러드 볼’ 형태의 호주 다문화 사회를 이루는 데 소수민족 공동체가 큰 구실을 했다”며 “정책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민 역사와 유물을 담은 이민 헤리티지 센터, 동서양의 문화를 통해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파워하우스 박물관 등도 다문화 사회 호주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시드니/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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