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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7 15:21 수정 : 2008.11.20 11:49

지난달 초 충북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월촌 마을회관에서 겨울옷을 고르던 탈북새댁 김정희씨가 일어서서 춤을 추자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충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가수·재담꾼 합류한 듯 문화차이가 즐거운 경험
거주 외국인 110만명시대…“능동적 대처해야”

일본어 선생님, 북한 출신 마을 가수, 베트남에서 날아온 재담꾼, 중국 출신 푸근이 아줌마….

낮엔 볕 잘 들고, 밤엔 달빛이 좋다는 충북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월촌마을에 새로 들어온 살림꾼들의 별명이다. 1995년 일본에서 요시다 미쓰에(39)가 이곳으로 시집와 먼저 자리를 잡은 데 이어, 2003년 베트남 신부 투토이(28)가 합류했다. 또 지난 해에는 중국 옌지에서 온 재중동포 고순희(41)씨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탈북한 김정희(37)씨 등 2명이 잇따라 시집와 42가구 120여명의 이웃들과 뒤섞여 살고 있다. 이 덕에 85년부터 10여년 동안 끊겼던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이 마을에서 들리고 있다.

네 자녀를 둔 요시다는 틈틈이 마을회관, 학교 등에서 어린이와 주민들에게 일본 문화를 소개한다. 이 마을 가장 나이 어린 새댁 투토이는 여느 사람 못지않게 마을 일을 척척 해내고, 베트남 말투로 농담까지 건넬 정도로 사교성이 좋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북한 협동농장 선전원으로 일했던 새댁 김씨는 충주시민 노래자랑 등 행사 때마다 상을 받아 월촌마을 ‘공식 가수’로 인정받았다. 김씨는 다른 아줌마들을 등에 업고 마을회관 노래방 기계에 “신곡이 없다”고 투덜대 구닥다리 노래방 기계까지 바꿨다.

이민자인 아내들에게는 으레 ‘베트남댁’, ‘일본댁’ 등 이름이 붙게 마련이지만, 이 마을에서는 공식 회의를 열어 이런 표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인근(52) 이장은 “재주꾼과 억척 살림꾼들이 모여들어 생기 넘치는 마을이 됐다”며 “마을의 복덩이들을 우리부터 아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달 17일 오전 전북 장수군 장수읍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에서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여성 10여명을 상대로 사과고추장 만들기 실습이 이뤄졌다. 강사는 이날 “지금 배우는 방법은 시어머니가 하시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추장 담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시어머니는 평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오셨기에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름을 인정하자’는 강사의 의미심장한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수리스티아니(34·인도네시아 출신)와 함께 실습에 참석한 김재산(43)씨는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과 프로그램이 많을수록 한국 사회의 적응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며 “아내와 함께 세상살이를 다시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숙직을 하고 베트남 출신 아내 보티레항(23)을 태우러 센터에 나온 정우현(42)씨는 “아내가 숙직제도를 이해하지 못해, 내가 바람을 피우는 줄로 오해하기도 했다”며 “어머니가 설명해 주려 해도 의사소통이 안 됐지만, 이곳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줘 이런저런 문화적 차이를 줄여나가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이 센터에서는 장수 160여명, 인근 진안과 무주까지 합해 모두 430여명의 이주여성들에게 ‘다름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전파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선 농촌 총각과 이주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을 위한 교육도 이뤄지는데, 이주여성 엄마가 교육을 받는 동안 ‘어머니의 나라’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배우도록 지도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 센터 이현선(44) 소장은 “다름이 공존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작은 실험실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올해 5월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은 89만1341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 4935만5153명의 1.8%를 차지한다. 불법체류자가 20여만명이 훌쩍 넘어서는 현실을 생각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은 이미 110만명을 넘어섰다는 추산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연구위원은 “현재의 다문화 변화 양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한국 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자원을 가진 새롭고 활기찬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미래는 심각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에 휩싸일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충주 장수/오윤주 박임근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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