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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28 14:02 수정 : 2008.11.28 14:02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특강’] ⑦ 잃어버린 교육을 찾아서
‘사교육 열풍’ 피해자는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전교조는 국민에게 신선한 플레이 보여줘야”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놓고 또 다시 이념논쟁이 불붙고 있습니다. 최근 교육과학부, 국방부, 통일부 등이 “역사 교과서가 좌향좌돼 있다”며 잇따라 교과서 수정 의견을 냈고, 한나라당 등 정치권도 이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사연구회와 한국역사교육학회 등 관련 학회와 일선 교사들은 “역사는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 근·현대사를 놓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 독자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사 특강’을 시작합니다. 해방 후 한국 현대사가 전공인 한 교수는 지난 10월13일부터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매주 월요일 특강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출판>에서 강의록과 녹취록을 정리해 영상과 함께 매주 금요일 오후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특강을 1회 ‘역사의 내전: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을 시작으로 모두 8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특강’ 순서


1. 역사의 내전: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2. 돌아온 간첩, 그 황당함에 대하여
3. 대한민국은 공사 중: 토목 국가와 ‘경제성장’
4. 헌법정신과 민영화 -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묻는다
5. 괴담의 사회사 - 여고괴담에서 광우병 괴담, 독도괴담까지
6. 경찰폭력의 역사 - 일본 순사에서 백골단 부활까지
7. 경쟁 만능의 비극 - 잃어버린 교육을 찾아서
8. 촛불과 민주주의

[한홍구의 역사특강] ⑦ 잃어버린 교육을 찾아서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목소리 커져
교육 문제, 누가 뭐래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다. 지금의 교육 구조 하에서는 모두가 다 피해자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힘들어하면서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를 외치고 있고, 부모들은 늘어난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힘들고, 교사들은 입시 경쟁 구조 속에서 부품화, 점수 관리자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가뜩이나 왜곡된 교육 구조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영어몰입 교육과 국제중 설립을 통해 각각 영어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엄청나게 커다란,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창출되고 있다. 평준화가 나라를 망치고, 사교육비를 증가시켰다는 선동을 하면서 펼치는 정책이 오히려 더 급격히 사교육비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군국주의 씻어낼 겨를도 없이 자라나
학교와 군대, 감옥은 근대가 낳은 세 가지 대표적인 규율 기관이다. 학교는 어린이, 청소년을 훈육함으로써 기존 질서와 권위에 대해 순종하는 인간형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특히 우리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은 훈육 기관으로서의 학교 기능을 더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애국문화운동 시기, 교육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많은 사립학교가 세워졌지만 일제 강점기가 길어지면서 학교는 식민지 체제가 필요로 하는 황국 신민, 황국 병사를 길러내는 양성소의 역할을 한다. 그렇게 일제가 키워낸 군국소년, 소녀들은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군국주의의 흔적을 씻어낼 겨를도 없이 자라났고, 일제 시절 직접 군국소년, 소녀들을 가르친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한국 교육의 국가주의화는 더욱 강화되었다.

전두환이 유일하게 잘한 일은 ‘과외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를 통한 학력 자본은 분명 계층 간의 이동 수단으로의 역할도 한다. 자본주의가 내세우고 있는 신화 가운데 하나는 계급적, 사회적 지위가 출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른 학력을 매개로 재편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입시 제도는 사교육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교육이 특권층의 재생산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현재의 입시 제도는 잘사는 집 아이들이 명문대학에 더 많이,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평준화, 과외금지 시절과 비교해 본다면 사교육의 폐해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전교조, 시민단체에서 사교육 폐지를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자녀들의 학원비 마련을 위한 임금 인상 파업을 실시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전두환이 유일하게 잘한 일이 있는데, 그게 과외 금지다. 그 때문에 우리 같이 가난한 집 출신이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라는 386세대의 씁쓸한 회한이 나오겠는가?

국가를 상대로 대학등록금 투쟁해야
우리나라는 사립학교의 교육 분담율이 너무 높다. 중·고등학교의 40퍼센트,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은 무려 85%가 사립학교다. 사립대학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사립대학 비율이 50%를 안 넘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국가가 국방비에 과도하게 지출하고, 토목 공사 일으키는 데만 돈을 썼지, 교육 투자를 너무 안한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우리 대학생들이 대학 재단만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등록금 투쟁을 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의 등록금은 대개 연간 100만원 이하이다. 천만원을 넘어서고 있는 우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우리는 왜 그 수준으로 못 줄이는가? 못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할 고등교육의 책무를 사립대학에 떠맡겨 놓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골 못넣고 심판에 항의만 하면 관중은 떠나”
1989년 참교육을 외치던 1500명 해직 교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의 전교조가 탄생했다. 10년 간의 법외노조 시기를 거쳐 1999년 7월 합법화가 되면서 비약적인 양적인 성장과 물적인 토대를 갖췄다. 89년 당시 전교조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80%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참된 스승, 가장 훌륭한 선생님들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의 주된 공격 목표가 되고 전교조 죽이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전교조에 대한 지지율은 10%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제 전교조는 저들의 터무니없는 공세에 잘 대응하고 있는가,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를 맞았다. 해직 교사 출신인 도종환 시인은 “골은 못 넣고 매번 심판에게 항의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관중은 떠나게 마련”이라며 “국민들이 기대했던 신선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호각소리만 들리면 심판에게 달려가는 팀으로 비춰진” 것에 대해 억울하지만 팀 칼라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금의 공세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다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사랑 받는 전교조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아파할 줄 아는 능력,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아는 능력, 분노의 대상을 정확하게 헤아릴 줄 아는 능력, 공공선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개인의 행복 추구하는 지혜를 가진 아이들로 자랄 수 있도록 학생들과 함께해야 할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촛불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다. 지금 현재 촛불은 꺼지고 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과 6월, 제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채, 거리에서 촛불을 켜지게 된 흐름을 살펴보고, 촛불에 투영되었던 우리의 염원과 희망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정리= 박상준 <한겨레출판> 편집부 인문팀장 laughter@hanibook.co.kr
영상= 이규호 피디 recrom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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