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의응답
오늘은 수강생 중 한 분께서 지난 강의 끝나고 제게 주신 질문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되는데,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Q. 우리의 경우 과거사 청산 문제가 아직까지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4년 동안 나치 지배를 겪은 프랑스는 구악을 한 번에 처리했다고 하고, 북한도 비교적 말끔히 처리했는데요. 반면 대만이나 인도, 필리핀 같은 경우에는 식민지 시절 의료, 학교, 행정 시스템 등 근대화가 이뤄진 것에 대해 식민 모국에 고마워하는 분위기도 있던데요.
A. 과거 청산의 강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식민 통치 기간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3.1 운동 무렵, 혹은 고종 황제 서거 무렵 독립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완용을 사형에 처했을 거예요. 프랑스가 천 명 정도 나치 부역자를 처형했다고 하는데, 우리도 독립 시기가 빨랐다면 훨씬 센 강도의 과거 청산 작업을 했을 겁니다. 반면 인도의 경우 영국의 통치 기간이 200년이었거든요. 간디나 네루 같은 인도의 독립 운동가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친영파 제거보다는 ‘자치’의 문제였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독립 운동 진영에서 ‘자치’ 문제를 얘기했다면, 타협파나 친일협력파로 치부되었을 겁니다.
하나 더 살펴볼 것은 독립 후 누가 집권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독립운동 세력이 해방 후 집권한 나라는 남한과 남베트남뿐이거든요. 남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존재가 사라졌고, 남은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지요. 독립운동 세력이 해방 후 집권했다면 과거 청산 문제를 비교적 손쉽게 처리했겠지요. 우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과거 청산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그 과정이 바로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만과 한국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죠. 일본의 공식 식민지가 두 곳이었는데, 그게 대만과 한국입니다. 대만의 경우에는 이등휘 전 총통이 재직 시절 일본 식민지 시절 대만이 발전한 것에 대해 고맙다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우리와는 일본에 대한 정서가 다릅니다. 그게 대만 사회의 특성에서 기인한 거라 볼 수 있습니다. 대만에는 통용되는 언어가 대만어, 광동어, 북경어로 세 개입니다. 인구 구성도 본토 고산족, 청나라 시절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 국민당 정부와 함께 내려온 사람들로 나뉩니다. 따라서 본토 대만인의 입장에서는 장개석 정부나 일본 정부나 마찬가지 외래 지배 세력이었겠지요. 저항의 강도가 그래서 달랐던 것이죠. 또 일본이 상대적으로 대만에 대해 유화 정책을 쓴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은 좌파빨갱이들만 과거 청산을 원하는 것처럼 몰고 가는데, 그게 그들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들이 먼저 나서서 과거 청산 문제를 처리하면 국민화합차원에서도 좋을 텐데요. 무엇보다 과거 청산이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21세기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남미나 동구, 스페인 등에서 과거 청산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보다 훨씬 강도가 셉니다. 우리는 정말 얌전하게 과거 청산하자고 하는 겁니다.
Q. 일제 징병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오신 저희 부친께서는 “그래도 조선 사람은 내선일체라고 대우를 받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A. 일제 식민지 시절 ‘대일본제국’은 일본인, 조선인, 만주인, 몽골인, 중국인, 백계러시아인 등으로 구성된 복합민족국가였습니다. 일본은 오족 혁파라고 해서 제국 내 민족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공언했지만 실질적으로 인종적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그중 조선인은 ‘이등 신민’으로 취급되었지요.
그렇다면 중국인들보다 나은 ‘이등 신민’으로 대접 받았다고 좋아할 일이냐, 그게 절대 아닙니다. 전체 위안부 중에서 조선인 출신 위안부가 80퍼센트 이상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선인이 ‘이등 신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등 신민 여성들을 전쟁에 끌어낼 수는 없고, 삼등, 사등 신민 여성을 위대한 황군 병사에게 바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일제 시절 이런 식의 인종적 위계 질서가 있었고, 그걸 우리가 어느 정도 내면화했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인들에게 내면화된 백인보다 못하지만 흑인들보다는 낫다는 의식, 중국인이나 베트남인에 대한 우월 의식이 있잖아요. 그게 ‘이등 신민 의식’의 흔적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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