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4 19:17
수정 : 2012.12.24 19:17
|
백승종 역사가
|
고대 유대인들에게는 한 가지 부러운 풍습이 있었다. 희년(禧年)이다. “너희는 50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해 전국 각지의 모든 인간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중략) 이 해는 너희가 유산으로 받은 그 땅으로 돌아가는 해, 저마다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해이다.”(레위기)
가난한 유대인들도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땅과 집을 되찾았다. 그들은 채무를 면제받았고 심지어 종살이에서도 풀려났다. 고대 근동에서는 그와 비슷한 사회개혁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이를 제도화해 주기적으로 실천하는 경우는 없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유대의 신 야훼는 지파마다 가나안 땅을 골고루 나눠주어 기업(基業)으로 삼게 했다. 그것은 타인에게 절대 양도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다. 처지가 곤궁해져 땅을 넘겨주더라도 다음 희년이 돌아오면 그 소유권은 자동으로 되살아났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자자손손 생업의 토대를 완전히 박탈당하는 법이 없었다. 유대 사회는 가난의 세습을 원천적으로 배제하였다.
이 좋은 풍속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켰는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초기 유대 사회가 희년 제도를 통해 사회악의 근원인 빈익빈 부익부의 수렁을 멀리했다는 점이다. 유대 사회의 평화, 정의 및 견고한 공동체 의식은 이처럼 훌륭한 사회제도의 선물이었다. 후대의 유대인들도 희년의 풍습을 못내 그리워했다.
아기 예수는 희년 전통의 온전한 회복을 추구하였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며,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중략) 슬퍼하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게 하셨다.”(누가복음) 희년 정신에 예수의 참모습이 있다. 이를 확신한 영국의 신학자 존 웨슬리는 “만약 교회가 부자가 된다면 성령은 교회를 떠날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쌍용차도 고공농성도 희년 정신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백승종 역사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