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7 19:21
수정 : 2012.08.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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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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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자행된 일제의 독도 침탈은 식민지 시기의 도래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제정러시아와 마지막 혈전을 치렀다. 일제는 군사상의 편익 추구와 자원 약탈이라는 이중 목적을 가지고 독도를 점령했다. 저들의 탐욕을 부추긴 것은 강치, 즉 바다사자였다.
독도를 중심으로 동해에는 3만~5만마리의 강치가 서식했다. 그 가죽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차지할 정도로 명품이었다. 강치 한 마리가 황소 10마리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돈에 눈이 먼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들쑤시고 다녔다. 그 수가 어로기에는 550명을 넘었다(1901). 한해 강치의 반출량도 가죽은 1275관, 기름은 411두나 되었다(1905). 그리하여 진귀한 우리 강치는 일제 시기를 거치면서 멸종되다시피 하였다. 강치의 수난은 곧 일제에 의해 온갖 수모를 강요당한 우리들 한국인의 운명이었다.
독도는 명명백백한 우리 땅이다. 근세 이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제국 때도 칙령 41호를 통해 ‘석도’(石島), 즉 독도의 영유권을 각국 공사관에 고시하였다(1900). 그리하여 강치를 반출하는 일본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었다(1904). 독도가 저들의 땅이라면 그게 어디 될 일이었겠나. 생각할수록 우스운 것이 ‘다케시마’란 일본말이다. 이것은 본래 저들이 울릉도를 부르는 명칭이었다(1894, 山陰新聞). 감히 울릉도까지는 말도 못 꺼내는 저들의 꼬락서니는 어떠한가. 저들 스스로도 독도를 감싸 안은 푸른 바다를 “조선해”라고 했었다. 그것을 ‘한국의 바다’라고 표기한 각국의 고지도 역시 수십 점이다.
아직도 독도 문제로 낯을 붉혀야 하다니 참 답답하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짓이다.’(노무현) 독도야 우리가 미안하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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