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긴 마블스’ 중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박공 군상, 기원전 447~432년 무렵, 대리석, 영국박물관.
기원전 5세기 그리스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체를 실제와 똑같은 형태로 재현해낸다. 그 성과물 가운데서도 최고의 성취를 보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게 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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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23] 엘긴 마블스와 미술품 약탈
당시 튀르크 대사 엘긴이 뜯어내화려한 변명으로 아직 반환 안해
나폴레옹·히틀러 땐 체계적 약탈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서양미술사의 걸작이다. 이 작품의 높은 위상은 소장처인 영국박물관이 따로 널찍한 공간(더빈 갤러리)을 배정해 잘 모셔 놓은 데서 알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와 고전적인 규범미가 돋보여 서양미술의 핵심적인 특징을 완벽하게 드러낸 고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명작이 지금껏 소란스런 약탈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이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1799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영국 대사로 부임한 제7대 엘긴 백작 토머스 브루스는 당시 튀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의 파르테논 조각상들에 대해 조사했다. 엘긴은 튀르크 당국의 허가를 얻어 신전을 스케치하고 실측했는데, 엘긴에 따르면 이 허가에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을 일부 떼어 영국으로 가져가도 좋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이런 공문을 철저히 보관하는 튀르크의 관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해당 문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의회가 영국박물관을 위해 이 작품을 구입할지 논의를 시작했을 때 엘긴은 의회에 이 문서의 영역본을 제출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원문이 없는 상태여서 번역본의 신빙성은 아직도 안갯속이다.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1634, 유화, 158×117cm, 에르미타슈 박물관.
명암 대비의 극적인 표현이 예수의 희생에 숭고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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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논란이 있었음에도 영국박물관은 1816년 3만5천파운드에 이 작품을 구입했다. 엘긴의 이름을 따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로 불리는 이 조각들은 모두 17개의 환조와 15개의 메토프(사각형의 부조 장식), 75m 길이의 프리즈(띠 부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가 이 조각들에 대한 환수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아크로폴리스 유적을 대대적으로 복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튀르크의 압제 시절 그리스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약탈된 예술품이니 본디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게 당연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호소에 부응해 바티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박물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는 소장하고 있던 관련 유물들을 모두 그리스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영국박물관은 핵심 미술품인 ‘엘긴 마블스’를 반환하지 않고 있다. 박물관 쪽에서 내세우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영국박물관법’이 후손을 위해 소장품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약탈 문화재의 반환과 같은 ‘도덕적 의무’로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조항이다. 그리고 본디 있던 파르테논 조각의 절반 이상이 다 망실된 마당에 ‘엘긴 마블스’를 돌려준다 해도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또 아테네의 공해 등으로 인해 신전에 설치하는 것이 무망해 결국 인근 박물관에 수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면 런던에서 아테네로 수장처를 옮기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 일이 중요한 전례가 되어 전세계의 주요 박물관에서 소장품을 다 출신 국가로 반환하게 된다면 이 박물관들은 텅 비어 버릴 것이다. 이는 이들이 현재 세계의 문화유산 센터로 기능하는 것을 고려할 때 관리와 연구, 교육, 전시 모든 분야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라파엘로, <시스틴 마돈나>, 1513년께, 유화, 265×196cm, 드레스덴 회화 미술관.
천진난만한 아기 천사상으로 유명한 작품. 2차대전 때 러시아에 의해 약탈되었다가 1955년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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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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