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 후] ⑤ ‘전과 2범’ 마광수 교수
“늙고 머리 빠지고…, 꾀는 여학생 하나 없네
사치, 쾌락, 음란, 퇴폐, 향락, 그게 왜 나빠?”
“난 왕따다. 독서와 창작만이 내 대리배설 창구다”
마광수(57·연세대학교·국문학)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자택 인터뷰를 제안했다. “왜 하필 집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이후 그는 자의반 타의반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강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없다. “사회에서 날 버렸는데, 어디 갈 데가 있겠어? 지금은 집이 더 편해. 사람이 싫어졌어. 너무 배신을 당해서.”
“외롭다”며 마 교수는 연신 줄담배를 피었다. 하루 3갑을 태운다. 이빨이 검게 썩고, 위장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담배는 지독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그의 유일한 벗이다. “약을 먹고 버티는 거지. 완치가 안 돼. 미치겠어. 몇 번 자살하려고도 했지. 난 ‘왕따’야. 독서와 창작이 내 대리배설 창구야.” 그는 하루 1권 꼴로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지독한 우울증에 “약 먹고 버텨. 완치가 안 돼. 미치겠어”
역설적이게도 ‘외로움’이 활발한 창작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지금껏 그는 해마다 평균 3~4권의 저서와 논문 냈다. 올해만 해도 단편소설집 <발랄한 라라>, 문화비평집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중편소설 <귀족> 등을 냈다. ‘손톱 페티시’와 성적 판타지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외설(?)스럽다. 변한 게 없다.
최근에야 블로그를 알게 된 그는, <인터넷한겨레>에 만든 자신의 블로그(
http://blog.hani.co.kr/makwangsoo)에 열성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다만, 마 교수는 늙었다. 24일 만났을 때, 그는 환갑을 앞둔 그 또래의 평범한 아저씨 자체였다. 하얗게 샌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고, 몸무게도 6kg(54kg 나간다)이나 줄어 왜소해진 그의 몸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그에게서 ‘섹스’나 ‘색욕’ 같은 건 묻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책 세 권 냈고, 연말에 연극에 대한 논문집이 나와. 출판하기가 너무 어려워. 읽어보지도 않고 막연히 소문만 듣고……. 서점에서는 진열도 안 해줘. 소설의 즐거움은 첫째 재미야. 소설의 기본은 허구고. 살인사건 쓰면 작가가 다 살인해 본 건가? 내 책은 팔리지도 않고, 잘못하면 걸리고. 난 우리나라의 이중성을 이해할 수 없어.”
편견 1. “마광수의 삶은 행복하다?”
10여 년이 지나도 분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사실 <즐거운 사라>의 외설 논란 이후 그의 삶은 굴곡 그 자체였다. 교수 신분임에도 사전 구속영장 없이 법정구속된데다 교수직을 잃었다. 95년 대법원은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확정 판결했다.
이후 그에게는 ‘변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세상은 그를 “음탕하다”며 손가락질 했다.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 연세대에서 해직된 뒤 98년 사면·복권돼 복직됐으나, 2000년 국문과 동료 교수들이 재임용 탈락을 건의하는 소동을 겪으며 자진 휴직을 신청했다. 그는 “나를 몰아내려고 했던 이들이 다 내 후배이거나 제자여서 배신감이 더 컸다”며 “나만큼 논문이나 저작활동을 하는 교수가 누가 있나. 그러나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날 살렸다”고 말했다.
검열기관은 그의 작품마다 날선 ‘음란’의 잣대를 들이댔다. 2006년 <야하디 얄라숑> <유혹>, 2007년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가 ‘19살 이상’ 꼬리를 달고 출간됐다. 2006년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의 본문과 남녀의 나체 사진 등을 올린 혐의로 또다시 입건됐다. 전과 2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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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연세대 교수 / 사진 이규호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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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 재밌게 놀던 30대가 그립다. 몸 약해도 성욕 여전”
4년 동안의 휴직과 두문불출 끝에 2004년 강단에 복귀했으나 다시 2006년엔 제자 시 도작사건이 터졌다. 연세대 징계위에서 정직처분을 받고 전공 강의권을 박탈 당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할 말 없어. 핑계를 대자면 조울증 현상인데, 나도 이해가 안가.” 그 뒤 올해 정직처분 시한이 만료돼 교양강좌로 1학기엔 <연극의 이해>를, 2학기엔 <문학과 성> 과목을 가르쳤을 뿐이다. 그러나 국문과 교수들의 반대로 전공 강의는 맡지 못하고 있다. 내년에는 그의 에세이 <성애론> <인간>을 텍스트 삼아 ‘삶의 기획(안)’ 과목을 개설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 불행하다. 제자들과 재밌게 놀던 30대가 그립다. 새빨간 양복을 입고, 스카프를 두르며 한껏 멋을 부렸던 40대가 그립다. 나이를 먹는 게 안타깝다. 잔병 치레도 늘었다. “오히려 섹스에 대한 이론이 확고해졌어. 몸이 약해도 성욕은 여전해. 인생의 목적은 섹스야. 식욕이 먼저라고 하는데, 식품도 섹스의 결과물이야. 소가 섹스하고, 벼가 섹스해야 우리가 쇠고기와 쌀을 먹을 수 있어.”
편견 2. “지금도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한다?”
20대 그는 ‘천재’로 통했다. 연세대에서 77년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딴 그는 28살 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정식 교수로 임용됐다.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다.
“성문학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책을 무지 봤어. 체육시간에는 구경만 할 정도로 허약했어. 삼국지도 보고, 금병매도 봤지.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아갔어. <발랄한 라라>에 수록된 ‘손톱’은 고 2때 쓴 거야.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도 <보그> 같은 외국잡지를 보며, 손톱 타령을 하고 있었던 거지. 당시엔 네일아트란 것도 모를 때인데.”
“‘손톱 페티시’, ‘하이힐’과 ‘미니스커트’에 집착하는 이유는요?”
“글쎄…. 타고난 상상력 같아. 굳이 설명하면 나르시즘(자기우월주의). 내가 손과 손톱이 길어. 이외수씨는 수필집에서 ‘어린 시절 가난했는데, 지금 성공했다’고만 쓰데. 난 가난했어도 귀족만 그렸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쓰이는 말이 사치, 쾌락, 음란, 퇴폐, 향락인데, 그게 왜 나빠? 즐거움을 누린다는 거고, 행복이라는 건데.”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도 했지만 6개월만 재밌었다”
그는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아니다’. 요즘 세상에 그만한 ‘금욕주의자’도 없을 것이다. 연애는 물론 인터넷에서 떠도는 흔한 포르노도 보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의 방에 붙어있는 길고 화려한 손톱사진이나 누드화 등을 보는 게 전부다. 요즘 그의 낙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전부다. “‘사라’ 사건 전까지 행복했지. 사회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여자들이 나랑 다니는 걸 창피해하고. 게다가 늙고 머리 빠지고. 요샌 뭐 (날) 꾀는 여학생 하나 없네. 옛날에는 무지 많았거든. 연애한 지가 10년이 훨씬 넘었어. 2년 전에 누굴 꾀어 보려고 했지만 안 됐어.”
그는 자유주의자이자, 자유연애주의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생식기능에 초점을 둔 우리나라의 보편적 성 관념인 ‘삽입성교’를 지양한다. 그의 담론의 중심은 비생식적 성교다. 성기만 성감대가 아니라, 온몸이 성감대이고, 서로 합의하면 변태도 취향으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가 한창 잘 나갈 때 제자들과의 연애도 즐겼지만, 단 한번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건 철저하게 ‘합의’에 의한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그의 소설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셈이다. 즉, 자유가 방종을 낳는 게 아니라 자유가 있어야 자율이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마광수는 독신주의자다? 그렇다. 하지만 그도 한때 결혼을 했었다. 1년 동안 별거를 거쳐 1990년 결혼 4년 만에 이혼했다.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했음에도 6개월만 재밌었다”며 “인위적으로 만든 결혼, 구속이 싫다. 만약 한다면 계약동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편견 3. “유일한 성문학 작가임을 후회한다?”
마광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성문학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싸늘하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D.H 로렌스, 새디즘의 원조 M. de 사드의 작품과 인생을 보는 시각과 사뭇 다르다. “외국의 성문화 이론서는 칭찬하며 번역해 들여오면서 정작 국내 저작물은 없다”며 “처음에는 관심에서 시작했지만, 자꾸 왕따를 당하니까 이제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비판에 앞서 “제발 내 책을 다 읽어봐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쯤 되면 제2의 마광수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는 매우 안타까워했다. 외롭게 ‘왕따’가 되어 성문화 해방, 성 표현의 해방을 주장하는 이유다. 후회는 없을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투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새는 자비 출판을 할까 고민도 하지만 내 책이 많이 팔리는 것에 대한 욕심을 접었다”며 “당대의 인기작가가 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후대에 독창적인 성문학 작가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로렌스나 사드처럼.
“박경리씨 <토지> 잘 썼다고 생각 안 해…세 권 읽다 말아”
“박경리씨는 살아있을 때부터 대가 취급을 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난 <토지>도 잘 썼다고 생각 안해. 문장도 100% 일어 문장이야. 세 권 읽다 말았어. 애들한테 물어봐도 20권 다 읽은 경우 못봤어. 눈치보기야. 독자들도 <토지> 안 읽어놓고, 왕따 당할까봐 그 말을 못해. 통탄할 일이지.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후대가 하는 거야.”
그는 성문화에 대한 싸늘한 시각의 원인을 문단 전체에 퍼져 있는 ‘교양주의’ 때문으로 본다. 소설을 읽는 목적은 교양 습득이 아닌 즐거움과 재미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단은 교훈이 있어야 ‘좋은 소설’로 친다. 소설가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역사·대하 소설을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비슷한 곤욕을 치른 장정일도 이제는 침묵한다. 절대 야한 거 안쓴다. 고생한 다음에 쓴 게 <삼국지>다. 몇 년 전에 한번 만났더니, ‘그런 거 쓰지 마시라’고 당부를 해 내가 쇼크를 먹었어. 그러니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쓰겠어? 톡 까놓고 말해서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봐도 재미난 거 하나도 못봤어. 전부 설교야.”
편견 4. “마광수는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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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연세대 교수 / 사진 이규호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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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마광수는 문학계의 ‘왕따’다. 정확히 말하면 ‘스따(스스로 따돌림)’다. 그는 기존 문단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열기관을 없애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당당히 저항하라”고.
특히 그는 박정희 정권 때 세워진 간행물윤리위원회가 버젓이 현존해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영화는 영상물 등급만 판정하지 음란물로 고발하거나 판매금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건 문학가들이 가만히 있는 거다. 공지영, 이외수는 나보다 젊은데 안 야하다. 그래서 싫다. 젊은 작가들이 소위 검열기관에 대한 반감이 없다는 건 정말 이상하다.”
그는 ‘성해방자’가 아니다. 단지 ‘성에 대한 표현의 해방’을 주장한다. 집창촌, 룸싸롱, 안마방 등 성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포르노가 인터넷에서 활개치고 실제 성문화에 대해선 너그러운 대한민국이, 상상의 성에 대해 냉철하리만큼 가혹한 게 모순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68혁명, 미국의 70년대 히피운동과 반전운동처럼 그 안에서 성 표현의 해방이 이뤄지면 민주화가 되고, 자연스럽게 정치 민주화로 간다는 게 마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고은씨 시 누가 읽나? 그러면서도 엄청난 권력 누려”
“우리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보나요?”
“그렇지. 소위 성의 선택권조차 없잖아. 내가 조금만 이상한 거 쓰면 변태라고 하는데, 그건 소설의 묘사일 뿐이야. 손봉호 총장은 나 때문에 에이즈가 늘어났다고 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는 도덕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백낙청, 고은 이런 사람들도 싫어. 예전에는 존경했는데,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들이야. 부르주아나 퇴폐는 안 된다는 건데. 그게 무슨 민주주의야. 노벨상 수상 때마다 후보로 오르는 고은씨의 시를 누가 아나? 그의 시를 음미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애송시 하나 없는데. 하나도 좋은 시가 없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지. 그래서 문단정치, 문단권력이 나오는 거지. 후배들이야 출세하려면 이들 눈치 볼 수밖에 없는 거고.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 허용되어야 해.”
편견 5. “마광수는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마 교수는 촛불정국 때 6월11일 시국선언에 참여한 156명의 연세대 교수 가운데 한 명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권유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관심이 ‘성’ 문제에 치우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문제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엔 삼선개헌 반대와 유신반대 데모에 참여 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모금운동에도 동참했다.
“이명박 정부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유야무야 하고 있는 건 잘못이야. 우리나라 역사는 지금껏 다 친일파가 득세했어. 아버지가 친일파면, 아들은 친이승만파, 또 그 아들은 친박정희파. 그래서 난 뉴라이트도 이해 못해. 이승만을 우상화하고, 백범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데, 안되는 거야. 이승만이 친일파를 업고 들어와 그때부터 역사가 망한 거야. 뉴라이트가 교과서를 바꾼다고 하는데, 말이 안돼.”
“시국선언, 당연히 해야지…우리 사회가 수구로 가고 있어”
“시국선언 당연히 해야지. 난 옛날에도 데모는 다 했어. 주도한 건 아니지만. 박정희를 싫어했으니까. 난 촛불시위도 엄청 찬성했어. 우리 사회가 수구로 가고 있어. 이러다간 문화탄압도 할 것 같아. 이런 수구들은 반드시 도덕주의를 들고 나와. 국방부에서 금서 목록을 만들지 않나……. 우리나라는 도덕 독재국가야. 도덕을 갖다대면 안 통하는 게 없어. 이러다가 박정희 때처럼 장발 단속도 하지 않을까 몰라. 그래서 요즘 내가 더 불안해.”
그의 작업실 책상 위에는 그동안 그가 원고지에 펜으로 정성스레 빼곡히 써내려간 작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올해 말 연극에 대한 논문집이 하나 나오고, 내년 초 사제간의 사랑을 다룬 중편소설 <사랑의 학교>가 출간될 예정이다. 쌓여 있는 원고지 맨 앞장에 씌여진 문구는 이렇다. ‘작가는 속이는 즐거움, 독자는 속아 넘어가는 즐거움, 마광수 문학이 주는 서늘한 카타르시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영상 이규호 피디
pd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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