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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4 14:29 수정 : 2008.10.24 15:05

개그맨 백재현씨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 루나틱컴퍼니 연습실에서 뮤지컬 <루나틱> 출연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조소영 피디

[그 사람 그 후]④ ’개콘’ 원조 백재현
방송으로 번 돈 몽땅 말아먹고 ‘밑바닥’까지
특유의 유머와 공감 버무려 ‘루나틱’ 대박

개그맨 백재현(39). 정확히 9년 전인 1999년, 그는 거구(?)를 이끌고 안방을 종횡무진 누볐다. 지금은 장수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음악을 가미한 콘서트 형식에 1분30초를 넘지 않는 옴니버스와 앙코르 개그를 선보인 <개그콘서트>를 직접 기획한 원조멤버가 바로 백재현이다.

2001년, 그가 방송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개그맨이 아닌 뮤지컬 연출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였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개그맨 주제에 무슨…….” 역시나 <염라국의 크리스마스> <7템프테이션> 등 그가 선보인 작품들은 줄줄이 쪽박을 찼다. 2003년 뮤지컬 <따따붓따>를 기획했지만, 정작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다. 결국, 방송으로 번 돈만 몽땅 날렸다. 37평 아파트를 처분하고, 보증금 500만 원의 월셋방으로 옮겼다. 제작한 작품마다 족족 말아먹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가정에도 소홀해졌다. 자신의 팬과 2001년 결혼했던 그는 2년 만에 이혼했다.

한 때 난청에 안면마비…최근 선뵌 <패밀리> 영국서 수상

구설수까지 뒤따랐다. 그의 이름을 걸고 나온 다이어트 제품이 ‘허위광고’ 논란에 휩싸이면서 악플과 안티팬의 공격 대상이 됐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난청에다 안면마비 증상까지 덮쳤다.

그로부터 5년. 시련을 딛고 백재현이 돌아왔다. 그의 이름에는 개그맨이란 꼬리표 대신 뮤지컬 제작·연출가라는 명함이 걸렸다. 그야말로 화려한 부활이다. 2004년 1월 공연을 시작한 <루나틱>은 지금까지 60여만 명이 봤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 덕에 <페이스오프> <비애로> <스카이워크> 등을 후속작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최근 선보인 <패밀리>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USA스타어워드’ 상을 수상했고, 지난 17일과 19일 경복궁에서 초청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패밀리>는 태권도와 비보이를 결합한 일종의 마셜아트로, 한국 관객들에겐 내년 2월쯤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은 ‘백재현표’ 특유의 유머와 공감을 얻으며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후한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텔레비전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탓이다. 지난 7월 <개그콘서트> 400회 특집과 <폭소클럽2>에 잠시 얼굴을 드러냈을 뿐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백재현의 요즘

“돈 좀 버셨겠어요? 빚 청산하고, 집 장만하셨나요?”

“제가요? 창작뮤지컬이 아무리 잘 된다고 해도 마진(이익)은 상당히 낮아요. 빚은 지금도 갚고 있는 중이고, 아예 월셋방을 빼 극단 식구들하고 합숙하며 지내고 있어요.”

2003년 44kg까지 뺐던 몸무게가 다시 세자릿수. 바쁘고 불규칙한 생활 탓이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관리를 너무 하지 않았나?.

“애들 밥 해주고, 빨래하고…. 뮤지컬 연출 5년 만에 요리 솜씨와 더불어 체중만 늘었어요. 그래도 후배들이 나더러 가수 같대요. ‘영웅체중’ ‘윤호지방’ 하하.”

긴 소파, 널브러져 있는 이불들, 쌓여있는 담배꽁초 등 종로 루나틱컴퍼니 사무실에 딸린 방은 그의 요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 루나틱컴퍼니 연습실에서 뮤지컬 <루나틱> 출연배우들이 개그맨 백재현씨가 보는 앞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조소영 피디

월셋방 빼 사무실에 딸린 방에서 극단 식구들하고 합숙

유머는 그대로였다. “방송이 더 수입이 짭짤할 텐데.”

“집을 갖고자 한다면 어느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후배 개그맨들도 타워팰리스에 사는데…. 집은 행복의 척도가 아닌 것 같아요. 집과 돈은 앞으로도 없었으면 해요.”

“외롭지는 않으세요? 연애도 하셔야죠.”

“전혀. A형이라서 정말 외로워야 하잖아요. 이 순간에도 외롭지 않은 건 참 멋있게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개그맨일 때는 피디가 한없이 부러웠어요. 지금은 오히려 피디들이 ‘네 계획대로 사는 네가 너무 부럽다. 존경한다’고 해요. 결혼은……. 아직 제게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일이 너무 좋으니까. 결혼이라는 건 저한테는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건데, 아직은 일의 완성이 먼저예요. 사실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아직은 가정을 운영할 능력이 없어요.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생활의 완성을 위해 결혼은 해야 한다고 봐요.”

◇ 뮤지컬 연출가로서의 꿈과 좌절

어린 시절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학교 축제 사회를 도맡아 할 정도로 끼를 발휘했다. 그리고 뮤지컬 연출가가 되고자 서울예전 연극과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93년 특채로 KBS에 입사하긴 했지만, 항상 꿈은 뮤지컬에 있었다. 방송을 하면서도 대학로를 떠나지 않았다. 대학시절엔 <아가씨와 건달들>에 배우로 출연했고, 95년부터는 <멀쩡한 환자들> <염라국의 크리스마스> 등을 직접 제작했다. <가스펠> <캬바레> <건달놀음> <피터팬> <보병스토리>를 비롯해, 그가 제작한 <루나틱> <염라국의 크리스마스> <7템프테이션>에는 배우로도 참여했다. 뮤지컬을 기획·연출 하면서 배우 생활도 한 대학로가 사실상 그의 본 무대였던 셈이다.

오랜 무명생활을 벗게 해준 <개그콘서트> 역시 방송 3년 전부터 그가 기획해 후배 개그맨들과 대학로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김미화 선배의 권유로 작품을 본 피디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개콘>을 기획했죠. 시청률 10.2%. 고정편성된 뒤 7주 만에 시청률 1위 했으니, 인기가 대단했죠. 부담스럽기도 하고, 행복했었죠. 김미화, 전유성 선배가 없었으면 성공이 힘들었죠.”

그만큼 <개콘>에 대한 그의 애착은 크다. 뮤지컬 제작을 하면서도 <개콘>과의 끊을 놓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그는 2001년 돌연 정든 <개콘> 무대를 떠났다. “기획단계부터 제 의도는 조명과 밴드 등의 도움을 받아 1분30초를 넘지 않는 옴니버스들이 쉴 새 없이 웃겨주고, 앙코르 공연이 있는 것이었어요. 담당 피디가 바뀌면서 스피디함 대신 십분 넘는 봉숭아학당이 들어오고, 앙코르가 빠지고, 방송에 대한 회의도 있었고, 공연에 올인해 보고 싶어 그만뒀죠. 아쉬움이요? 후배들이 잘하니까……. 그리고 저도 지금 행복하니까.”

개그맨 백재현씨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 루나틱컴퍼니 연습실에서 뮤지컬 <루나틱> 출연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조소영 피디

1년이 10년같은 최악…죽으면 죽고 살면 살자고 소주 7병 마셔

<개콘>은 물론 지금껏 그가 선보인 작품들의 성공비결은 그가 느끼는 것을 작품 속에 녹인다는 데 있다. 소신과 명분, 그리고 진실이 있다. <페이스오프>는 거짓이 판치는 세상의 부조리와 추태를 꼬집고, <비애로>는 한 무명 개그맨을 통해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음을 보여준다. <루나틱>은 정신병원 환자들이 각자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의 삶도 고스란히 담겼다. 이혼, 다이어트 제품 허위광고 파문, 뮤지컬 흥행 실패와 경제 위기 등. 그를 향한 공연계와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살은 3개월 동안 운동하고, 야채와 물만 먹고 뺐는데, 건당 3천 원을 주겠다는 말에 모델료도 안 받고 한 거예요. <루나틱> 하기 전에. 돈만 입금되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지만, 결국 입금은 하나도 안 되고. 저만 나쁜 놈 된 거죠.”

2004년은 그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1년이 10년 같았다.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소주 7병을 마시고, 죽으면 죽고 살면 살자 했죠. 하늘이 날 살게 했을 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건데, 열심히 해보자고. 눈을 뜬 뒤 한참을 울었죠. 그게 그해 여름이에요.”

◇ <루나틱>의 성공과 화려한 재기

다행히(?) 죽지 않았다. 살고 나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1월부터 선보인 <루나틱>에 관객이 들기 시작했다.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이벤트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2005년부터는 만원사례를 이어갔다. 이후 예매순위에서 <맘마미아>를 여러 차례 누르기도 했다. 그를 바라보는 공연계와 관객의 시선도 달라졌다. 여전히 비주류이긴 하지만, 적어도 뮤지컬계에선 백재현을 개그맨이 아닌 ‘연출가’로 봐준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

코미디 관련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영화, 연극, 뮤지컬, 방송,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한 코미디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방송대상, 토니상, 아카데미상을 타고도 싶다. ‘태양의서커스’처럼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하고픈 욕심도 있다.

“방송으로의 복귀 또는 무대에서 개그맨 백재현을 볼 수 있다는 뜻인가요?”

“글쎄요. 문법이 같아야 할 것 같아요. 개그맨보다는 방송 개그를 기획해서 만드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제작사도 만들어보고 싶고. 개그맨 백재현이라, 제가 방송을 제작해서 납품을 한다면 출연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개그맨은…….”

<맘마미아> 누르기도…“방송 복귀? 글쎄, 문법이 같아야……”

“그 시기가 언제쯤일까요? 방송을 하면 돈도 금방 벌 수 있을 텐데.”

“……. 근데, 그것은 같은 언어, 같은 문법이 아니잖아요. 박진영씨가 그런 말을 했어요. ‘돈이 좋다’고. 저도 동의해요. 돈의 액면가가 좋은 게 아니라, 돈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 때문에. 돈이 없으면 기획안이 컴퓨터에만 있잖아요. 돈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돈으로 아파트 사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고요.”

최근 그는 부디즘(Buddhism) 뮤지컬을 기획했고, 대본까지 나왔지만, 언제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는 가늠이 잘 안된다. 투자금 마련이 쉽지 않다. 뮤지컬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창작뮤지컬 제작환경은 여전히 척박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당분간, 아니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 기회가 오지 않는 한 개그맨으로의 복귀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다.

“제 팬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하하하. 진짜 그리우면 싸이월드 제 홈피 방문자 수나 높여주세요. 하루 방문자 수가 10명밖에 없어요. 그래도 스타의 홈페이지인데, 일반인만도 못해요.”

인터뷰를 하기 전 배우들의 <루나틱> 공연 연습을 진두지휘했던 연출가 백재현. 인터뷰에 앞서 “얼마나 걸릴까요?”라고 물었던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손까지 돌리지 말고, 머리만 돌려!” “동선이 여기까지 와야지!” 연기지도를 할 때만큼은 냉정하다. 연방 담배를 피워댔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프로의식. 그를 여기까지 있게 한 원동력이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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