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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11 14:28 수정 : 2008.09.11 17:45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

[그 사람, 그 후] ① ‘촛불 수배자’ 미친소닷넷 운영자 백성균씨
“힘 약해졌지만 국민이 대통령 용서한 것 아니다
시민단체, 계몽 싫어하는 누리꾼 특성 이해 부족
나가면 갈비탕 먹고 영화 보고 온천 여행 하고파”


‘그 사람, 그 후’를 시작하며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바삐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반면 다른 사람은 뉴스의 주인공이 돼 수시로 언론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이 미디어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면 사람들도 잊어버린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언론은 경쟁적으로 뉴스 인물을 보도하지만, 한때 뉴스의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그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어주지 않는다.

‘그 사람, 그 후’는 이처럼 한때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뒤안길을 따라가는 인터뷰 연재다. 올해 봄과 여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의 주인공중 한 명인 백성균(31) 미친소닷넷 대표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10여 차례 뉴스 뒤 인물들을 만나볼 생각이다. 편집자주


[그 사람 그후 ①] ‘촛불 수배자’ 백성균

무더위가 한풀 꺾여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한 여름 맹렬하게 타올랐던 촛불은 힘을 잃었다. 그러나, 조계사에서 68일 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촛불 수배자’들은 여전히 조계사의 밤을 밝히고 있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졸지에 수배자가 된 백성균(31)씨도 지난 5월부터 하루도 촛불을 놓지 않았다.

가을 문턱에서 일부 언론은 촛불이 사그러든데다 이곳 저곳의 ‘퇴거 압력’으로 수배자들이 진퇴양난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잊고 있던 수배자들의 생활이 궁금했다. 어떤 모습일까? 의욕이 꺾이지는 않았을까?

조계사를 찾던 날, 경내엔 목탁소리와 스님들의 염불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수배자들은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몇몇은 면회 온 손님들을 맞느라 바빴다. 백성균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1 안부
답답하고 괴로워…집안도 뒤숭숭한데 송구스럽다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답답하죠.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던 사람으로서 지켜만 보는 게 괴롭죠. ‘나는 정당하다. 내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는 일은 없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 정당함을 끝까지 알리고 싶어요.”

“곧 추석인데, 가족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집안이 뒤숭숭해서 죄송하고 송구스럽죠. 큰아버지께서 폐암 말기고,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요양원에 계세요. 남동생이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데, 장남이 여기에 갇혀 있잖아요.”

또박또박 가족들 안부를 전하는 백씨. 의외로 담담하다. 그리고, 건강해 보였다. 블로그(blog.daum.net/sube2008)에 수배자 근황을 전하는 게 그의 주요 임무다. 틈틈이 <노자와 21세기>를 읽고 있다고 했다. 그는 “촛불의 힘이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며 “지금은 다만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 다양한 방법으로 촛불의 정신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2 회상
중고생들 ‘미친소 수입반대’ 외치던 날 못잊어

“…5월3일 처음으로 집회의 사회를 보았을 때 이미 저는 알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저에게 닥칠 것이라는 예감. 10일까지 집회 사회를 보는 과정에서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한나라당과 싸우고 있다. 나는 지금 조중동과 싸우고 있다. 나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싸우고 있다. 왠지 내 주제에 너무 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 올 수 있었던 것은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어머님의 마음과, 야자를 빼고 나왔던 청소년들의 함성과, 자신이 키우던 소를 팔고 무대에 섰던 농민의 눈물과, 비가 와도 항상 자리를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들의 절규 때문입니다. …” (7월4일 백성균씨가 ‘미친소닷넷’에 올린 글에서 발췌)

촛불문화제 100일. 긴 여름, 그는 촛불과 보냈다. 수많은 거리의 밤, 그 중에서도 그가 잊지 못하는 날은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촛불을 밝혔던 청계광장의 5월2일. 청소년들이 어른보다 더 먼저, 더 크게 ‘미친소 수입 반대’를 외쳤다. 다음날, 자그마한 키에 뿔테 안경을 쓴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백성균이었다. 미친소닷넷(www.michincow.net) 대표다.

“첫 사회를 본 5월3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무아지경, 멋모르고 사회자로 나섰다가 끝난 뒤 기력을 잃고 쓰러질 정도였습니다.”

순간 그의 표정에 그 때의 감격이 스친다. 평범한 누리꾼이 촛불 주동자(?)로 얼굴을 알린 날이다. 130여일이 흐른 지금, 그는 수배자로 두 달 넘게 조계사에 머물고 있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떠 대웅전 주변 청소와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예상했을까. “10일까지 다섯 번 무대에 섰어요. 언제부턴가 경찰이 ‘불법이다. 해산하라’고 방송을 해요. 처음에는 겁주려고 그럴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단번에 끝날 일이 아니라고 깨닫게 됐어요.”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

#3 촛불
촛불이 인생 180도 바꿨지만 절망하지 않아

촛불문화제는 평범한 시민을 수배자 신분으로 바꿔놓았다. 촛불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그의 글처럼, 어쩌면 결말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열정과 역동성을 갖고 있는 누리꾼의 장점을 십분 살려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됐다. “광우병이 불을 지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청소년과 이야기하는 것과 흡사한 것이었어요. 이런 경험이 값지죠. 문제 해결을 위해 용기를 낸다는 것이, 도망가지 않고 해결한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큰 경험과 교훈을 얻고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용기내고 실천하게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이전까지 그도, 조계사의 다른 수배자들과 성격이 달랐다. 현재 그는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동규 진보연대 정책국장, 한용진 진보연대 대외협력위원장, 김광일 다함께 운영위원 등과 함께 있다. 모두 잔뼈가 굵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때 풍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인연을 맺었고, 대학 때부터는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활동했을 뿐이었다. ‘급’이 다르다. 현재 공식적인 그의 직함은 이 단체의 사무국장이지만, 스스로 누리꾼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경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희망’은 청소년의 자치, 교육, 인권이라는 큰 주제를 농활이나 문화 봉사활동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 곳”이라며 “전교조 등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4 참여
“학교 급식에 미 쇠고기… 안되겠더라고요”

그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청소년단체에서 활동하는 탓에 그들이 즐겨찾는 다음카페 ‘엽기혹은진실’ 등을 자주 찾았다. 쌩뚱맞게 4월 이후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거부 움직임이 이들 카페에서 나타났다. 기사 댓글, 카페 게시글, 아고라 글을 따라가 보니, ‘미친소닷컴’(미친소닷넷 전신)까지 오게 됐다. 2006년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만들어졌지만, 이후 활동이 부진했던 사이트다. 그는 전 운영자에게 양해를 얻어 4월28일 새로운 운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미친소닷넷’을 띄웠다.

“학교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안되겠더라고요.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어요. 운영자가 된 뒤 5월2일 청계광장에 나왔어요. 학생들이 지도부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저라도 진행을 해야했어요.”

그 뒤 그가 무대에 선 횟수는 총 5회.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출범하면서 그는 5월10일 이후 더 이상 사회자로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대책회의에 진보세력이 다 망라됐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대책회의에 참여하긴 했지만, 촛불의 역동성을 살리려는 방법이 서로 달랐던 것 같아요. 대책회의는 경직된 사고에 갇혀 ‘누리꾼’이라는 새로운 운동세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촛불문화제 과정에서 대책회의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대책회의와 코드를 맞추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대책회의는 집회에서 전문가가 사회를 보지 않으면 내용이 없어 불안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사회자를 바꿨는데 새로운 운동세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거죠. 누리꾼들은 계몽을 싫어해요. 시민사회단체가 누리꾼들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5 누리꾼
“인터넷하고 책 읽으며 108배…1인 미디어 강자 되고파”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
조계사 생활 두 달, 불편하지 않을까?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의료보험 민영화, 대운하의 허와실, 방송장악 음모 등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며 “막내라서 그런지 형님들이 잘 챙겨준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어리버리 시위꾼이라 경찰에 체포되고 난 뒤, 재판에 임하는 자세 같은 것도 물어보곤 하는데 경험이 있어서인지 다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준다”며 “오히려 이 곳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고, 용기를 얻게 되면서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다시하게 됐다”며 귀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학생(아주대 인문학부 4학년)이다. 그러나 그가 보통의 대학생들처럼 복학-졸업-취직을 통해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갈 것 같지 않다. 누리꾼으로서 의미있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의 강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어요. 누리꾼을 동력으로 촛불을 지키는 역할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누리꾼과 시민사회 활동가의 경계에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물었다. 다시 5월3일로 되돌아가도 사회자로 촛불문화제 무대에 서겠냐고. “당연하죠.”

조계사를 나가면, “가장 먼저 갈비탕을 먹고 영화를 본 뒤 온천 여행을 떠나겠다”는 그. 그는 오늘도 지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매일 아침 조계사에서 108배를 올리고 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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