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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1 14:55 수정 : 2009.01.21 14:59

취재 현장에 오래 있다 보면 으레 첫 발생 기사를 흥분하지 않고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될 때가 적지 않다. 노동쟁의와 철거민 투쟁 등 생존권을 둘러싼 숱한 싸움에서 냉철하게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기란 정말 어렵다. 세상이 복잡하다 보니 사건 성격이 단순하게 규정될 수 없는 경우도 많아서다.

인간이 만든 법 규정 역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해서 이해의 충돌은 인간 사회에서 어쩌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갈등이 생기는 법이고, 그래서 또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면 갈등은 잘못되면 충돌을 거쳐 파국으로 가기도 하지만, 잘되면 협상을 거쳐 타결로 문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재개발 현장에서 이런 이익 충돌은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줄이기 위해 몇 해 전 일정한 절대다수의 동의만 얻으면 재개발 추진 주체가 사업을 주도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이 개정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종종 이해 조정을 거치지 않을 사안조차 조합과 시공사인 건설업체가 법 규정을 내세워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붙이다가 조합원들과 거친 마찰을 빚기도 한다. 지주든 아니든 거주자의 경우는 보통 조정이 잘 이뤄지지만 상가는 사정이 매우 복잡하다. 유형의 건축물에 대한 감정평가를 기준으로 보상이 이뤄지다 보니 주인 또는 세입자 모두 불만을 품기 일쑤다. 특히 상가 세입자들은 법적 미비점 때문에 종종 개발이익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전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애초 상가를 임차할 때 지급한 권리금과 상점 개조에 들어간 투자비용의 상당 부분을 자칫 회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 서울 용산 재개발 현장 참사의 희생자 한 분도 갈빗집을 운영해서 크게 번 돈으로 지난해 식당을 호프집으로 개조했는데, 갑자기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권리금은커녕 인테리어 장식 비용 수억원을 건지지 못하게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를 항의하려고 건물 옥탑 망루 농성에 합세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개발이익은 온전히 지주와 시공 건설사의 몫으로 돌아가고 기껏 이주비 석 달치와 이사 비용 몇 푼의 보상비를 받고 이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겨울 빈 건물 옥상 망루에서 물대포를 맞을 각오로 농성을 벌인 것은 이처럼 절박한 생존권 때문이었으니 이들의 죽음은 누가 봐도 억울할 수밖에 없다.

상가 세입자들은 재개발 지분을 갖고 있는 지주나 상점 주인에 비해 애초부터 교섭력이 매우 취약한데다가 이처럼 관련 보상 법규도 미비하다 보니 자신들의 이익이 제대로 보전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재개발 현장이 늘 분쟁의 소지로 끓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이주 비용이 주인 몫으로 나와도 세입자에게 넘기는 것이 재개발 현장의 오랜 관행이라고 한다.

현정부 사람들이 사태 직후 “희생자가 나와 안타깝지만 불법 농성은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억울한 사람의 불만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반감되는 법이다. 역지사지의 덕목은 이를 두고 이름이다. 이들이 망루를 짓고 시너를 준비해 점거농성을 벌이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킬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지 누구를 살상할 의도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초기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철거반들의 강제철거에 맞서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공사와 조합, 그리고 행정당국과의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도가 누그러지는데, 이때 조합이나 당국이 나서 이해 조정에 나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 경찰도 초기에 개입하지 않고 정보 활동을 강화하다가 양쪽을 오가며 흥정을 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처럼 점거농성 하룻만에 전격적으로 경찰 최고의 무력이라는 대테러 특공대를 투입해 사태를 최악의 참사로 만든 수뇌부의 판단 미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대화 시도도 없이 ‘불법 필벌’을 외치며 속도전으로 사태를 강제 진압한 결과는 최악의 참사만 남겼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조금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신중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속도전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의 ‘올드 보이들’은 한결같이 뭔가 조급증에 시달리는 정서 불안증 환자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속도를 내야 마땅할 때 내야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적지 않은 사람이 들어 있는 이른바 ‘현주 건조물’인 옥상 위 망루를 기중기로 끌어올린 컨테이너로 충돌시키고 시너통에 물을 뿌려대는 이런 기본이 안 된 ‘얼토당토 않은 판단’을 할 수 있는가. 국민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그런 수준 이하의 미숙한 판단을 밀어붙인 김석기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는 과연 올바른 정신 상태의 소유자인가. 희생자 중의 한 분은 칠순 노인이었는데, 경찰 특공대가 강제 진압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 공권력이 할 짓인가.

국가는 압제자도 될 수 있고, 조정자도 될 수 있다. 그것은 애초 전적으로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에 달린 것이었다. 엊그제 일어난 참극은 이 평범한 진리를 이 시대 사람들에게 새삼스레 일깨우고 있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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