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부 무신경’엔 특별한 치료대책 있어야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은 학원의 수강료가 너무 비싸다며 이를 낮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곧 교육과학기술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라는 것을 급조하게 했고, 그 대책이란 것이 며칠 전에 얼굴을 드러냈다. 내용이 궁금해 뒤져 보았더니 학원비의 인터넷 공개가 전부여서 보는이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수강료 과다 징수 학원들을 찾아내 탈루 세액을 중과세하고 이들 학원 명단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앞으로 지나치게 많은 학원비를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대책이란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발표 주체는 분명 교과부인데, 내용은 온통 세무당국의 것처럼 부당 수강료에 대한 단속과 세금 추징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이것이 정말 사교육을 줄이는 대책이라고 내놓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수준도 너무 떨어지는데다 내용 또한 이처럼 터무니없는 것들투성이여서 쓴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적어도 사교육비 경감이란 말을 붙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대책이 고작 교육청에 신고한 수강료 외에 보충 수업비와 교재비 등 추가 요금을 받지 못하게 한다며 학원들의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가맹률을 높이겠다는 것 정도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다. 국세청의 세원 추가 확보 대책이라면 모르되, 적어도 미래 세대를 위해 국가 백년의 설계를 책임진다는 교육 당국의 정책 방안으로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추진 방안도 교과부 고유 업무라고 볼 수 없는 것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내년 2월까지 민간 조사전문기관을 동원해 서울과 광역시, 수도권 새도시 등에 있는 500여 학원을 상대로 조사와 단속을 병행하고, 이후에는 검찰과 경찰·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이들 수강료 부당·과다 징수 학원를 고소득 자영업자로 분류해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정도다. 무슨 부동산 투기를 단속하는 것인가. 교육부 공무원들이 이런 일에 나설 정도로 한가한가. 교과부 스스로도 이 대책이 시행되어 실제로 학원비 부당 징수 사례가 크게 줄어들고 학부모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교과부가 허둥지둥 내놓은 부실 대책의 한 표본일 뿐이다. 적어도 사교육 경감 방안의 요건을 갖추려면 학교 현장에서 지나친 경쟁 위주 교육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대책에 대한 진단과 함께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명문대학 출신을 우선 채용하는 학벌 위주의 줄세우기 기업문화와 학력별로 지나친 임금격차 해소 등의 구체적 방안이 시행될 수 있도록 범정부적인 정책 전환책을 강구해야 한다. 수능시험 점수 몇 점 차가 아니라 다중지능과 개성·취향 등 창의력 중심으로 학생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교육 아닌가. 또한 대학이 멋대로 중등교육 과정을 무시하고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입시관리가 따라야 한다. 이번에 올해 고려대 수시입학 시험에서 드러났듯이 대학들이 노골적으로 고교 등급제를 적용하는 행태를 더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학원비뿐만 아니라 전체 사교육비가 크게 늘어나는 원인이 단지 학원의 수강료 변칙 인상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교과부가 부끄럽게도 사교육 광풍의 원인조차 제대로 못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영어몰입 교육에 대한 연구가 지금도 정부 차원에서 은밀하게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럴수록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이것은 사교육비 폭증을 불러오는 법이다. 따라서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은커녕 촉발 요인을 만들어내는데, 이것부터 막는 것이 순서 아닐까. 교육 당국은 기껏 국세청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마치 무슨 대단한 독자 대책인 양 내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 또는 주변의 사교육 유발 요인을 제거하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다 아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간단하다. 당장 국제중학교 설립계획부터 백지화하는 것이다. 모국어를 배워 우리말과 문화를 사랑하게 하고 조화로운 지·덕·체 교육의 진미를 맛봐야 할 초등학생들을 국제중 대비 사설학원으로 달려가게 하는 사교육 유발 정책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엊그제 광주의 한 초등학생이 자신의 성적이 떨어진 것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또한 대학입시 전문학원으로 전락한 특수목적 고교의 변칙적 운영을 애초 설립취지에 맞게 정상화하는 것도 시급한 대책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교육 당국의 무신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관료들은 학부모들이 당신들을 교육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꼽고 있음을 아는가. 어쭙잖은 대책을 내놓은 교과부의 무책임과 ‘개념 없음’을 보면서 개탄한 학부모가 나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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