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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3 14:03 수정 : 2008.10.23 14:27

김형배 칼럼

은행·건설 도덕적 해이 여전…달라진 게 뭔가

과연 강부자 정권답게 과감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뒤 부자들의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혀 비판을 받더니 이제 천문학적 액수의 건설업자 빚까지 탕감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주택·건설경기 부양을 겨냥한 이런 ‘통 큰’ 조처들은 이 정부 출범하고 벌써 다섯 번째다. 그런데, 이번 조처는 몰염치한 도덕적 해이 부채질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몇 해 고분양가 밀어내기식 분양을 통해 사상 최대 매출과 폭리를 취한 건설업자들의 행태는 투기꾼과 닮은꼴이었다. 이들이 팔다가 남은 값비싼 미분양 주택과 비업무용 토지까지 정부가 사주거나 담보채권 발행을 도와 자금난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불과 11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를 한나라당은 잊었는가. ‘돈은 벌면 전부 내것이고 빚을 지면 나라가 대신 갚아주는’ 방식의 도덕적 해이를 규제하지 못한 것이 자신들을 권력에서 밀어내고 나라까지 거덜냈던 기억 말이다. 글로벌 위기가 겹쳤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부채질하는 이런 모양새는 기업들로 하여금 나쁜 버릇만 들게 할 뿐이다. 더구나 당시 자금난에 몰린 한보와 동아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이 줄줄이 도산했던 데 비하면 지금의 건설업 지원책은 업자들의 투기 이익을 사후적으로 보장해 주는 후안무치한 것이다.

무려 9조2000억원을 지원하면서도 업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엄격한 책임 추궁이나 재발 방지책 마련, 강도높은 구조조정 약속 등 정부가 마땅히 받아내야 할 대목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정부의 조처를 보면 일부 퇴출 업체를 10% 미만으로 한다는 구절을 제외하고 모두 지원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국토지공사 돈이니 실상 국민 혈세나 다름 없을 터인데, 아무런 채무 이행각서도 받지 않고 빚을 보전해 주는 것은 자본주의 계약사회의 관행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떼돈을 벌 때는 언제고 이제 무분별한 투기로 일확천금에 실패하자 서민들의 고혈을 짜 이들의 적자를 메워주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해괴하다. 주택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투기업자들을 돕는 꼴이다.

은행들은 또 어떤가. 서민을 상대로 고리의 신용대출과 부동산 담보대출로 재미를 보던 은행들이 더 큰 돈을 벌어보겠다고 외국에서 단기 차입금을 들여다 국내 투기성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마구 뛰어들었다가 건설경기 침체와 미국발 금융위기로 큰 실패를 봤다. 분별없이 투기적 베팅을 한 결과였다. 그에 따른 신용도 하락은 외환 유동성 위기로 이어져 아이엠에프를 맞은 지 11년 만에 또다시 은행은 해외부문 차입이 막혔다. 한 달짜리 단기자금도 못 빌려 1주일짜리 비싼 리보 금리를 줘가며 외환 빚 상환 연기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아이엠에프 이후 아무런 금융기법도 개발하지 못한 자업자득이란 비난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외신들의 잇따른 경고에도 아랑곳 않던 정부가 은행 부실에 대해 역시 1000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서고 은행채 25조원 매입을 통해 털어주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은행의 자구책도 받아내기 전에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중소기업과 서민생계가 무너져 내리는 등 모든 부문이 다 어려운데 유독 건설과 금융에 대해 엄청난 특혜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취지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보통 문제는 아니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이며 도덕적 해이 조장이란 점에서 부적절한 조처라는 항변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도덕적 해이를 되풀이하는 은행의 못된 버릇을 끊어내지 못한 금융감독 당국에 비판의 화살이 쏠린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정부의 잦은 단기 재정 투입은 상대적으로 복지와 교육, 지방재정 부문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여 앞으로 사회적 취약 계층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내수와 고용의 90% 이상을 감당하는 중소기업의 형편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들이 더 가난해지는 것만으로 유지된 적이 없다. 1930년대 미국은 뉴딜 정책과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뤄냈고, 또한 그 단합된 국민적 힘으로 대공황도 극복했다. 우리도 지난 아이엠에프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 통합이 깨질 때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절감한 바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그 빈곤층은 다시 노숙자로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계속되는 오늘의 현실은 공동체 평화를 위협한다. 나라 경제를 말아먹는 투기꾼들의 탐욕을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는 제2의 아이엠에프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블로그 http://blog.hani.co.kr/hb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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