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16 08:43
수정 : 2008.10.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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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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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경쟁력인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은 공동체 망쳐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에 교육은 계층 상승의 통로 구실을 하기도 했다. 교육 관련 예산이 부족했고 다들 가난했던 시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었다. 남보다 열심히 공부한 가난한 집 자식이 출세도 하고 돈도 벌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공교육 강화와 교육 기회 평등이 국가 정책 목표 중 첫번째로 꼽히게 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이른바 오늘의 양극화된 세상에서 교육은 어떤가.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나 사교육에 자리를 내주고 계층 세습의 역기능을 한다는 게 적절한 진단일 것이다. 공정한 경쟁은 애초부터 이뤄질 수가 없고 고학력의 돈 많은 부모를 둔 자녀가 학교 성적이 좋고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실제로 질 좋은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입시 성적이 잘 나오게 돼 있다. 내신 성적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충실한 학교생활을 권장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된 제도이지만, 알고 보면 ‘제2의 수능’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공정성 시비를 줄인다는 이유로 전부 수치로 매겨져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학습 참여도와 학우들과의 교유, 리더십, 책임감 등의 복잡한 추상적 성적이 산정의 어려움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다. 채점하기 편리하게 교과목별 성적을 수치화해 놓은 것이 내신 성적의 전부이다. 돈으로 산 질 높은 사교육으로 확실한 효과를 보는데 어느 부자가 이를 마다할까. 사교육이 판치는 서울 강남에서 수능 대비 학원뿐 아니라 내신 대비 학원이 성업하는 까닭이다.
이곳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선행학습을 시켜 내신 성적을 올리고 수능 성적을 함께 높이는 현재의 입시 경쟁은 결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입시 교육에 퍼붓는 돈과 정보의 양이 자녀의 대학 선택을 결정하고 나아가 학벌 중시의 우리 사회에서 인생과 운명까지 좌우하게 돼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쁜 집 자식은 제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한 뒤처지고 결국 진학에서 불리한 위치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교육이 형해화돼 있음은 방학 중 학생들의 생활 단면을 들여다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방학은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재능을 키우고 체력을 연마하거나 여행도 다니면서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할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 그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참 경쟁력을 연마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그저 학기의 연장일 뿐이고, 선행학습의 기회로 활용될 뿐이다.
정부가 경쟁력을 말하지만 나는 이 말처럼 허구적인 구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외국인들과 경쟁할 때 학업 성적 말고 여러 재능도 경쟁력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정부는 입시 경쟁력-이른바 스카이(SKY) 합격 성적-이 경쟁력의 전부인 양 학생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들었을 뿐, 음악과 미술 등 예능적 재능 배양에서부터 체육 활동과 리더십 키우기 등의 경쟁력 배양을 할 여력을 남겨두지 않는다. 언제 한가하게 친구들과 함께 캠프 여행을 떠날 것이며 음악적 재능이 실생활에 아무리 소중한들 시간을 내어 악기 연주를 배울 것인가. 오로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을 부추기고 그 싸움에서 이겨내는 힘만을 경쟁력처럼 여기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경쟁력은 아니지 않은가. 피사 기준으로 한국이 핀란드와 함께 학습능력 상위 국가로 꼽히면서도 학생들의 학습 동기와 열의 부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잘못된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제 나온 한 국정감사 자료는 전국 학령기 7~19살 학생 100명 가운데 평균 2.06명이 정신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준다. 농촌보다 도시, 특히 서울 강남구를 비롯한 수도권 10개 시·구 지역에서 무려 3.85명~2.76명에 이르는 학생이 스트레스로 정신질환 진료를 받았다는 것은 사교육이 얼마나 심각하게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하고 파괴해 정신질환으로까지 발전시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요즘 지나칠 정도로 경쟁 위주의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전형 요강 확정도 하기 전에 벌써 국제중 진학을 준비하는 사설 학원들은 크게 늘었고 코흘리개 초등학생들로 넘쳐난다. 정부 스스로 공교육에 시장 논리 도입을 공공연하게 밝혀 사교육을 부채질한 탓이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익 추구 욕구는 무한하고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최선의 이득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은 합리적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라고 말해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중시했다고 한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도 페어플레이를 할 때에 한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불공정한 경쟁이 판치는 사교육 위주 입시교육 풍토에서는 개인의 사익 추구는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사회의 공익을 늘리지 않고 각종 사회적 병폐만 키울 뿐이다. 이 정부가 이를 부추기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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