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7 16:11
수정 : 2008.09.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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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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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칼럼]
공교육 무력화로 학교까지 정글로 만들 셈인가
막 출범하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대대적으로 탄압받은 적이 있었다. 1989년 5월 어느 날 오후 연세대에서 있었던 전교조 창립대회는 전국 시·도교육청의 전 장학사들이 총출동해 벌인 봉쇄에도 1만2천여 교사들의 솟구치는 힘과 열기 속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후 전교조는 60여명이 구속 수배되고 1500여명이 해직과 파면 조처를 받았어도 궤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몇 해 뒤 합법화를 쟁취했다. 참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교사들은 비록 교육현장에서 쫓겨났어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당시 교육부는 갖은 수를 써서라도 전교조 결성만은 막아보려 했다. 지금도 우스꽝스럽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당국의 유치했던 대응방식이다. 이런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시·도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전교조 가입 교사 색출 지침이라는 것을 교육부가 내려보냈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조잡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예컨대 학부모에게 보낸 신고 지침 가운데 전교조 교사를 식별하는 요령으로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생과 학부모에게 친절한 교사” 등을 꼽았다. 이런 교사면 틀림없이 전교조에 가입했을 것이니 신고하라는 것이었는데, 일반 학부모들은 이따위 지침을 받아 들고 오히려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이 촌지도 안 받는 참교사라고 신뢰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 교사들도 분노하게 했는데, 그 반응은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은 우리는 모두 촌지를 받는 교사라는 말이냐” “학부모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이냐”였다고 한다. 마치 반공을 국시로 삼던 시절, 아침에 흙 묻은 구두를 신고 산에서 내려온 듯한 사람이야말로 틀림없는 간첩이니 신고하라는 낡은 방첩 지침과도 비슷해 쓴웃음을 자아냈다. 지금에 와서야 웃어넘길 수 있지, 그 시절은 이따위 말도 안 되는 반교육적 지침이 횡행했던 ‘정말 위험했던 시절’이었다.
19년이 흐른 지금 옛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과거 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전교조 가입 교사 색출 소동과 비슷한 움직임이 21세기 선진화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에서 버젓이 자행될 조짐이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엊그제 입법 예고를 한 교육정보공개법 시행령에 느닷없이 학교별 교원단체 또는 교원노조 가입 교사 수를 공개하는 지침이 포함된 것이다. 뉴라이트 출신의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교과부를 압박해 받아낸 교원단체와 교원노조 가입 교원 수 공개 관련 항목은 애초 정부가 만든 시행령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제정된 이 법은 그 취지가 학교별 학업성취도를 측정해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쓸 목적으로 만든 것이므로 특정 정치적 의도와 이념의 색안경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데 입법 취지와도 맞지 않고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기는커녕 논의조차 되지 않은 항목을 특정 단체가 압력을 가해 끼워넣었으니 그 의도가 참으로 불순하다. 뉴라이트 사람들이 제기한 것을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이 살을 붙인 뒤 조 의원이 국회에서 몇 차례 질의를 거쳐 추가 항목으로 포함시켰던 만큼 국회나 행정부의 정상적 입법행위로 봐줄 수가 없다. <전교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는 책을 내 뉴라이트의 인정을 받았다는 조 의원은 지난 4월 총선거에서 자신과 가족을 자신의 지역구에 위장전입시킨 죄로 벌금형을 받은 교육 관련 상임위 소속답지 않은 전력의 소유자다. 요즘은 잘돼 가는 학교 직영 급식 사업을, 식중독의 위험성이 큰 위탁 급식으로 되돌리는 위험한 입법 활동에 열심이다.
겉으로는 학부모를 내세우지만 모두 뉴라이트 쪽인 이들의 공공연한 목표는 교육현장에서 전교조 세력을 색출해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빨갱이 사냥을 하듯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적시해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한판 붙겠다는 결의도 불태운다는데, 한심스럽게도 교과부가 이에 장단을 맞추고 있으니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벌어질 갈등과 대립이 걱정이다.
교육 문제에 관한 이명박 정부의 도발은 두 방면의 공격 형태를 띤다. 한 방향은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적인 이념 공세이며, 다른 한쪽은 경쟁이란 미명 아래 약육강식의 시장주의를 교육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붙잡고 있는 전교조를 정책 파트너 또는 선의의 경쟁자로 인식하기는커녕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은 언제나 기득권 세력에 유리한 것인 만큼 이들의 전략은 일관되고 확고하다. 지난 촛불집회 때는 전교조를 배후로 지목해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는 이념 논쟁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도 그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교육의 세 주체 가운데 학생과 학부모는 이미 점수 경쟁의 노예로 전락하고 사교육에 휘둘려 힘을 잃었다. 그나마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려는 최후의 보루인 전교조마저 힘을 잃게 된다면 반교육적인 시장주의가 교육을 집어삼킬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교육은 부와 신분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중 인가와 고교 선택제 도입 방침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의 도입을 넘어 초등학생들의 사교육 올인과 학교의 전인적 교육 파탄 우려 때문이다. 전교조 교사 수의 학교별 발표는 학교에 남아 있는 교육의 공공성 논리를 완전히 몰아내려 한다는 의혹 때문에 참으로 우려스럽다. 그런 사태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교육의 앞날은 더욱 암담해질 것이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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