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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6 17:47 수정 : 2008.09.08 15:54

김형배 기획위원

‘물질적 욕망의 투표’로 대의제 실패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대 최다 금메달을 따내면서 우리는 몸속에 뛰어난 운동 유전자(DNA)를 지니고 있음을 자랑스레 확인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도 한번 신바람이 나면 ‘큰일을 내고 마는’ 괴력을 지닌 민족임을 세계에 알렸다. 식민시대와 분단,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3위의 경제를 건설한 것도 그렇고, 거기다 모범적인 민주화 모델까지 일궈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이제 스포츠에서까지 발군의 역량을 보여줬으니 과연 ‘우수한 다중지능을 지닌 만능 민족’임을 유감없이 입증한 셈이다. 우리의 다중지능은 한류에서 첨단 아이티(IT) 산업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경쟁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이런 즐거운 자위 뒤에 가려진 현실은 어떤가. 과연 내실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유전적 특질 말고 내세울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공동체 삶의 메커니즘은 특히 좋지 않아 보인다. 우선 삶의 현실, 즉 민주주의와 경제의 내용이 전혀 올림픽 7위국답지 않게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흘렀다. 대선에서 역대 최저 투표율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총선 역시 저조한 투표율 속에 한나라당과 범여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앞으로 5년간 우리 미래를 한나라당에 맡긴 결과는 총선 직후 곧바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이 서둘러 찾아간 미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대통령은 외교와 안보에서 한-미 동맹의 강화를, 경제와 통상 부문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속 인준과 미국산 쇠고기의 월령 제한을 철폐한 개방을 섣불리 약속하고 말았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이에는 지난 10여년간의 화해와 협력 무드가 사라지고 갈등과 대립의 냉기류가 뚜렷하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 부실 협상으로 정부가 미국에 대한 퍼주기 자세로 일관하다가 성급하게 검역주권마저 내주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었다. 졸속협상의 과정상의 불가피성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쏟아진 거짓말들도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부실한 정부와 의회 대표자를 선출한 것은 국민들이므로 대의제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 될 것이다. 우선 두 차례의 선거 결과에 대한 유권자들의 책임은 크다. 상당수 유권자는 기권했고 그나마 참여한 사람들도 적잖은 사람들이 이른바 ‘물질적 욕망의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이 쓰는 이 용어는 유권자들이 공동체의 이해관계보다 사적 이익을 앞세우는 투표 행태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 행태가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것이 지난 대선과 총선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만은 확실히 챙기겠다”고 유권자들의 이런 물질적 욕망을 100% 자극해 대량 득표로 연결했다.

 제대로 된 주권자라면 의사 결정의 마지막 순간만은 적어도 조세 정책의 방향과 복지, 자녀 교육과 주거 문제, 고용, 양극화 해소 등 국가 현안에 관심을 두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금을 계층별로 어떻게 나눠 거둘 것인지에 관해 각 당이 내놓은 정책에도, 아이들 교육 문제와 복지, 물가와 실업 문제에도 무책임하게 나몰라라로 일관했다.

 물론 이러한 유권자들의 투표행태가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살기 어려우면 집값이 갑자기 몇 배로 뛰어주고 로또가 터지는 요행을 바랄까. 남편의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로는 자칫 아이들 학원비와 자식들 시집·장가 보낼 돈 마련은커녕 자신들의 노후생활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삶의 조건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주위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 투기 광풍을 타고 남편 연봉의 몇 배를 벌었다는 소문들도 돌았던 터였다. 이 시기는 주민들이 짜고 아파트값을 올렸던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나만 헛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엄습해 올 때마다 어떡하면 나도 집값이 크게 뛰어 강남 사는 사람들처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헛된 꿈을 꾸는 것을 책망만 할 수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 누가 당선이 되어야 우리 동네가 부자 동네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아무렴 집권당 후보가 실행능력이 낫겠지 하며 내리는 유권자의 선택은 투기 심리 같은 것이다. 부동산 관련 구호가 선거판을 완전히 흔들어놓고 괜찮은 후보들을 모조리 떨어뜨린 사례는 근래 100년간 동서고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뤘다는 대한민국 땅에서 선거라는 합법적이고 정통성 있는 절차를 부동산 투기판이 뒤집어버린 역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물질적 가치는 우리 삶에서 도구적 가치에 불과하지 중심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성 선거판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제구실을 하기 어렵다. 대통령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이나 국회의원의 자질과 경륜 논쟁 따위가 사치스런 논쟁으로 치부될 뿐이다. 허울뿐인 대의제 아래서 대통령직과 국회 의석들은 대운하와 뉴타운 개발을 외쳤던 건설족들의 독차지가 되고 만 것이다.


 무릇 국정을 심판할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선거제도로 꼽히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가 이런 허술한 대의제도를 갖고 제 기능을 못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균형 잡힌 의회와 강력한 야당, 건강한 시민사회가 함께 중심을 잡아 나갈 때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중산층의 몰락으로 민주적 기반이 총체적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민생경제의 위기는 물질을 향한 부질없는 욕망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 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견실한 민생경제도, 민주주의도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치즘이 등장하기 전 민생이 붕괴하고 의회가 무너졌던 독일 바이마르 시대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를 정신 바짝 차리게 한다.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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