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4.29 12:01 수정 : 2009.06.29 10:28

<한겨레>와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가 ‘촛불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28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함께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시민 패널들 “나아진 것 없는데…
정부 탄압으로 촛불 커뮤니티 활동 위축
시민단체, 시민들과 고민·정보 나눴으면”

한겨레·참여사회연구소 공동토론회

신진욱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는 아카데미의 사회운동 전공자와 경제평론가, 시민단체 핵심간부 등 쟁쟁한 패널들이 참석했지만 방청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난해 촛불의 주역이었던 시민패널이었다. 지난 여름의 경험이 가져온 삶의 변화와 최근의 일상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이들의 발언에 방청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했고, 전문가 패널들은 시민단체와 촛불시민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 지난해 촛불시위는 시민단체와 시민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게 된 계기이면서 그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 기회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변화가 있었나.

시민 일루 오는 길에 난방공사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한 정당의 플래카드를 봤다. 1년 전 봤다면 ‘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구나’ 생각했을텐데, 지금은 다르다. 민영화가 되면 직원 가족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뿐 아니라 우리집 난방비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안다. 정치적 결정이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촛불을 통해 알게된 결과다.

사회 사회운동 전공자가 보는 시각은 어떤가.

조대엽 작년 촛불집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참여하면서 공론형성을 주도해온 ‘전자적 대중들’과 시민단체·노조 등 기존 운동조직과의 괴리가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중요하다.


사회 지난해 촛불이 광장의 촛불이었다면, 이후 촛불은 일상의 촛불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어려움은 광장에서 모였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시민 일루 우리가 처음 거리에 나섰을 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간판을 내리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예전에 사회적 이슈로 토론이 활발했던 커뮤니티들에 가보면 요즘은 주로 자녀공부나 친환경 등 일상의 소재들로 대화한다. 하지만 우리 촛불유모차는 오프라인 활동을 위해 결성된 모임이다. 요즘 날씨도 좋아 밖에서 모이고 싶지만, 뭔가 판을 벌여주는 신뢰할만한 단체가 없다.

시민 쥐니 노원지역에서 촛불모임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주거지를 근거로 활동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학생, 직장인, 시민단체 활동가, 정당원 등 다양하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번씩 촛불문화제를 주최하는데, 처음엔 쇠고기로 시작했다가 점차 대운하, 방송장악, 자유무역협정까지 시의적절하게 이슈를 바꿔가고 있다.

시민 최동식 참여할 광장이 사라지면서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커뮤니티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주도적 활동을 했던 분들 대부분이 가정과 직장이 있는 생활인들인데다 촛불시민에 대한 경찰조사와 사법처리가 이어지고 미네르바가 체포되면서 댓글도 함부로 못다는 분위기가 됐다. 의제 문제도 있다. 쇠고기로 시작했는데, 신자유주의 얘기하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에프티에이에 대해서도 잘하면 좋은 거 아니냐, 이런 분들이 많다.

사회 해결된 문제는 없음에도 운동의 동력은 사라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오건호 촛불의 역사적 잠재성은 매우 컸다. 그 잠재성을 동력으로 전환시키려면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제는 지난해 촛불의 성과를 계승한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촛불이 지역에서 씨앗을 뿌려온 것처럼, 시민단체와 대중조직들도 시민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자기혁신에 나서야 한다.

정태인 지난해 상황은 애초부터 목적을 달성하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4·19의 목표는 이승만 하야였다. 87년 6월항쟁은 직선제였다. 그게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촛불은 ‘이명박 퇴진’이었다. 임기 100일도 안 돼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든 4·19나 87년 6월항쟁 형태로 전환하게 된다. 지금 상황이 이명박 정부로선 민영화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주어져 핵이 만들어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시민단체와 시민의 불신 문제는 많이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시민 최동식 지난해 광우병 대책회의에 많은 기대를 했다. 힘있게 끌고 나가 뭔가 해결해주길 바랬지만 안 됐다. 물론 시민들 사이에는 대책회의를 주도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정부 보조금 받고 정치화된 단체란 인식 때문에 가까이 했다간 이용당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도 어느 정도 있었다.

박영선 촛불시위 초기에 ‘깃발 논쟁’이 있었다. 깃발을 갖고온 단체들에 대한 거부감이 깃발을 내리라는 요구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깃발에 대한 불신은 시민과 단체들 사이의 연대감이 확인되면서 사라졌다. 지난해 촛불을 경과하면서 시민들은 많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막연히 이들의 존재를 추상적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구체적 대상으로 만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의 전문성과 사회적 권위도 인정돼야 한다.

사회 촛불이 소강상태에 빠진 데는 경제위기의 여파도 컸다. 지속되는 위기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정태인 세계경제의 침체는 오래갈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수출신장률이 14%씩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투기정책을 통해 난국을 돌파하려고 할 것인데, 결국 거품을 키우고 종국에 가선 더 큰 파국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정책을 계속 쓰면 2~3년 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불법이라고 위협하고 탄압해도 촛불과 민중운동이 결합하는 사태가 올 것이다.

사회 촛불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했지만, 촛불 이후 민주주의가 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대엽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정부와 시민단체의 갈등형태를 분석해보니 대체로 큰 이념상의 충돌보다는 오히려 정치행태라든지, 정국 운영방식에 있어서의 충돌이 많았다. 앞으로 위기가 온다면 이 지점에서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경제와 정치가 어려워지고 시민생활이 궁핍해지더라도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고 개방적 모습을 보여준다면 함께해 나갈 여지가 있다. 그게 안 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지금으로선 안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한겨레 시민포럼] 촛불 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시민 포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