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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21:25 수정 : 2008.10.23 14:42

씨닭도 큰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제품’이다.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닭고기

⊙ 피의자 : 닭고기

⊙ 혐의 : 튀김닭(치킨) 한 마리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소비자들의 궁금증과 의혹을 유발한 혐의.

⊙ 조사내용 : 튀김닭은 한국인의 대표 야식거리다. 이달 17일치 <한겨레> 기사(17면 참조)를 보면, 군소업체까지 포함해 240여 곳에 이르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경쟁 중이다. 이렇듯 사랑받는 닭고기지만, 그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인지수사(수사기관이 범죄의 단서를 직접 찾아 조사하는 일)는 튀김닭 한 마리 가격이 5000원부터 1만5000원까지 다양한 이유가 뭔지에 대한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이달 17일 오후 2시30분께 생산규모가 5위 안에 드는 한 닭고기 생산업체를 요리사 Z와 함께 탐방해 직접 설명을 듣고 공장을 둘러봤다.

천차만별 치킨값의 이유를 찾기 위해 찾아간 닭 도축공장,
유기농 닭은 실현 불가능할까?

고나무(이하 고) : 안녕하세요. 요리 기자로서 닭고기 생산과정이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담당자(이하 담) : 육용계(식용닭)와 산란계(알 낳는 닭)는 완전히 다릅니다. 육용계의 종자는 수입하는 겁니다. 원종계라고 하는데 ‘지피에스’, 그러니까 ‘그랜드 페어런츠 스톡’(grand parents stock)이라고 합니다. 할머니·할아버지 닭이죠. 얘네들을 비행기로 한국에 데리고 오면 2~3주 뒤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죠. 이렇게 태어난 닭을 ‘페어런츠 스톡’, 줄여서 ‘피에스’라고 부릅니다. 피에스가 낳은 자식들을 ‘커머셜 스톡’(commercial stock), 줄여서 ‘시에스’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먹는 치킨은 바로 이 시에스가 낳은 닭이죠.

식탁 위에 오르는 닭은 수입산 4세대

Z : 원종계를 수입해서 3세대가 지난 뒤에 먹는 거군요.

: 그렇죠. 지피에스·피에스·시에스는 1년 정도 알을 낳게 하고 버립니다. 1년이 지나면 열성 인자가 나타나거든요. 병 들고 허약한 병아리들이 나오는 거죠. 치킨 업체가 다 이렇게 지피에스를 수입하는 건 아닙니다. 지피에스를 들여와서 3세대를 거쳐 닭을 만드는 업체는 두 곳뿐이고 나머지는 중간 단계인 피에스나 시에스를 수입하죠. 저희가 원종계를 사오는 회사는 아비아젠(aviagen)인데요, 최근에 최대 산란계 업체를 인수해서 닭고기 관련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일 겁니다. 공장은 미국·유럽·남미 등 전세계에 흩어져 있죠. 위험 분산입니다. 한 나라에서 조류독감(AI)이 발생하면 바로 수출이 막히니까. 본사는 미국 앨라배마에 있습니다.

Z : 병아리를 사오고 로열티를 지급하는 거군요. 한국 업체에서 닭 종자를 만들면 굳이 로열티를 안 내도 될 텐데요?

: 닭 품종 하나 개량하는 데 평균 5년이 걸립니다. 온갖 실험을 다하면서 열성인자가 없는 육종을 만드는 거죠. 들어가는 돈과 인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지피에스 병아리 한 마리가 3만5000원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통틀어 지피에스를 만들어 파는 육종 회사는 서너 곳에 불과해요. 판매하는 육종은 세 가지쯤 되고요. 한국·브라질·중국 죄다 서너 회사가 파는 지피에스를 사다 먹는 거예요.

Z : 그럼 미국 닭, 브라질 닭, 한국 닭, 중국 닭이 크게 다를 게 없군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하는 세상. 핍진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충청도 시골 할머니가 아끼는 사위를 위해 뒷마당에서 잡는 닭도, 미국 닭이다. 기자는 ‘한국적으로 보이는’ 많은 것이 허상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닭은 오른쪽 사진 중앙에 보이는 갈고리에 걸려 도축·가공된다.
Z : 원종계의 4세대를 먹는 건데, 먹지 말고 계속 알을 낳게 하면 굳이 다시 지피에스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 3세대쯤 지나면 없던 열성 인자가 튀어나오거든요. 업체로선 경제적인 관점에서 딱 4세대에서 먹는 게 유리한 거죠.

Z : 원종계를 파는 회사에서 품종을 개발할 때 3세대 지나면 열성인자가 나오도록 조절해 놓는 건 아닐까요?(웃음) 그래야 병아리를 계속 팔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완전 추측입니다만.

: 글쎄요. 재밌는 게 미국·일본과 한국이 닭고기를 섭취하는 행태가 많이 달라요. 미국·일본은 3㎏까지 키워 먹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2㎏도 안 돼서 잡아먹어요. 부화한 지 5주 만에 먹는 거죠. 더 키워서 골격이 잡혔을 때 먹는 게 좋지만 워낙 소비자들이 영계를 좋아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거죠.

: 토종닭은 치킨집 닭이랑 다른가요?

: 토종닭이란 게 딱히 없어요. 농림부에 토종닭 두 가지가 종계(씨닭) 등록이 돼 있지만 진짜 토종닭은 아니에요. 현대의 닭을 품종 개량해서 옛날 문헌에 나온 토종닭 특징을 되살린 거죠.

: 존재하지 않는 토종닭을 만들어낸 셈이네요?

: 그렇죠. 옛날에 다들 바빠서 토종닭 품종 개량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놔두니 계속 열성인자가 나오고 그러다 퇴화돼 없어졌죠. 지금 ‘토종닭’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 털과 다리에 색이 있는 ‘유색계’가 대부분이죠.

Z : 삼계탕 닭 종자도 미국에서 수입하나요?

: 아닙니다. 삼계탕 닭은 육용계 수컷과 산란계 암컷을 교미해서 낳은 것입니다. 크기는 병아리만큼 작은데 특징이 육질이 아주 단단하죠.

Z : 어쩐지! 그래서 푹 고아도 닭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거였네요.

: 이런 식으로 삼계탕용 닭을 만든 게 20여 년쯤 된 것 같아요.

Z : 마트에 가면 포장된 닭고기가 1㎏에 2500~3000원쯤 하는데, 중저가 치킨 한 마리에 5000원에도 팔잖아요? 그걸 보면 대체 마진이 남을까 의문이에요.

: 중저가 치킨은 삼계탕용 닭이라고 보면 돼요. 삼계탕용 닭이 보통 육용계보다 싸거든요. 어떤 치킨 프랜차이즈는 삼계닭이랑 육용계를 섞어 쓰기도 하죠.

Z : 마트 닭고기랑 재래시장 닭이랑 다른건가요?

: 저희 닭고기는 급식업체·마트·재래시장으로 다 나갑니다. 똑같은 닭이 다른 운반차만 타는 셈이죠.

영계 밝히는 한국인들, 다 자라기 전에 도축하는 이유

직접 도계장(닭 도축장)을 둘러봤다. 닭고기 생산과정은 다음과 같다. 흐르는 물 위에 닭을 세워두고 고압전기를 흘려 기절시킨다 → 쓰러진 닭을 사람 손으로 컨베이어 벨트에 건다 → 경동맥을 잘라 피를 뽑는다 → 뜨거운 물속을 통과시킨다 → 탈모 기계로 털을 뽑는다 → 흡입기계로 내장을 빨아들여 제거한다 → 찬 공기나 물로 냉각시켜 변패를 막는다. 공장 내부는 위생복과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10%쯤 된다. 업장 내부를 차갑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감기에 잘 걸린다고 담당자는 말했다.

Z : 오리는 어떤가요?

: 영국 오리 지피에스를 수입해오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터진 뒤 프랑스 오리 회사에서 수입하고 있죠. 근데 제가 알기로 오리의 경우 시에스 밑세대로 계속 알을 부화시켜서 열성인자가 더 많고 아직 산업화가 덜 됐다고 들었어요.

Z : 놓아 기르기(프리 레인지)는 안 하시나요?

: 시도했는데 포기했어요.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도로 양계장으로 밀어 넣었죠.

두 시간 동안의 공장 견학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Z에게 ‘놓아 기르기’에 대해 조금 더 물었다. 유기농 닭고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Z : 제가 프랑스에 있었던 2000년대 초 프리 레인지가 유행이었어요. 말 그대로 닭들이 농장을 돌아다니도록 풀어놓고 기르는 거죠. 근데 사료가 아니라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게 위험하다는 반론이 나와서 유럽에서 잠깐 논란이 됐죠.

: 재밌군요. 풀어놓고 기르면 좋을 줄 알았는데, 환경이 오염돼서 문제가 될 수 있다니. 전 지피에스와 삼계탕용 닭의 실체를 듣고 놀랐습니다.

⊙ 송치의견 : ‘놓아 기르기’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수사는 미제사건(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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