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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닭도 큰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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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닭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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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자 : 닭고기
⊙ 혐의 : 튀김닭(치킨) 한 마리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소비자들의 궁금증과 의혹을 유발한 혐의.
⊙ 조사내용 : 튀김닭은 한국인의 대표 야식거리다. 이달 17일치 <한겨레> 기사(17면 참조)를 보면, 군소업체까지 포함해 240여 곳에 이르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경쟁 중이다. 이렇듯 사랑받는 닭고기지만, 그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인지수사(수사기관이 범죄의 단서를 직접 찾아 조사하는 일)는 튀김닭 한 마리 가격이 5000원부터 1만5000원까지 다양한 이유가 뭔지에 대한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이달 17일 오후 2시30분께 생산규모가 5위 안에 드는 한 닭고기 생산업체를 요리사 Z와 함께 탐방해 직접 설명을 듣고 공장을 둘러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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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 치킨값의 이유를 찾기 위해 찾아간 닭 도축공장,
유기농 닭은 실현 불가능할까?
고나무(이하 고) : 안녕하세요. 요리 기자로서 닭고기 생산과정이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담당자(이하 담) : 육용계(식용닭)와 산란계(알 낳는 닭)는 완전히 다릅니다. 육용계의 종자는 수입하는 겁니다. 원종계라고 하는데 ‘지피에스’, 그러니까 ‘그랜드 페어런츠 스톡’(grand parents stock)이라고 합니다. 할머니·할아버지 닭이죠. 얘네들을 비행기로 한국에 데리고 오면 2~3주 뒤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죠. 이렇게 태어난 닭을 ‘페어런츠 스톡’, 줄여서 ‘피에스’라고 부릅니다. 피에스가 낳은 자식들을 ‘커머셜 스톡’(commercial stock), 줄여서 ‘시에스’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먹는 치킨은 바로 이 시에스가 낳은 닭이죠.
식탁 위에 오르는 닭은 수입산 4세대
Z : 원종계를 수입해서 3세대가 지난 뒤에 먹는 거군요.
담 : 그렇죠. 지피에스·피에스·시에스는 1년 정도 알을 낳게 하고 버립니다. 1년이 지나면 열성 인자가 나타나거든요. 병 들고 허약한 병아리들이 나오는 거죠. 치킨 업체가 다 이렇게 지피에스를 수입하는 건 아닙니다. 지피에스를 들여와서 3세대를 거쳐 닭을 만드는 업체는 두 곳뿐이고 나머지는 중간 단계인 피에스나 시에스를 수입하죠. 저희가 원종계를 사오는 회사는 아비아젠(aviagen)인데요, 최근에 최대 산란계 업체를 인수해서 닭고기 관련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일 겁니다. 공장은 미국·유럽·남미 등 전세계에 흩어져 있죠. 위험 분산입니다. 한 나라에서 조류독감(AI)이 발생하면 바로 수출이 막히니까. 본사는 미국 앨라배마에 있습니다.
Z : 병아리를 사오고 로열티를 지급하는 거군요. 한국 업체에서 닭 종자를 만들면 굳이 로열티를 안 내도 될 텐데요?
담 : 닭 품종 하나 개량하는 데 평균 5년이 걸립니다. 온갖 실험을 다하면서 열성인자가 없는 육종을 만드는 거죠. 들어가는 돈과 인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지피에스 병아리 한 마리가 3만5000원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통틀어 지피에스를 만들어 파는 육종 회사는 서너 곳에 불과해요. 판매하는 육종은 세 가지쯤 되고요. 한국·브라질·중국 죄다 서너 회사가 파는 지피에스를 사다 먹는 거예요.
Z : 그럼 미국 닭, 브라질 닭, 한국 닭, 중국 닭이 크게 다를 게 없군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하는 세상. 핍진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충청도 시골 할머니가 아끼는 사위를 위해 뒷마당에서 잡는 닭도, 미국 닭이다. 기자는 ‘한국적으로 보이는’ 많은 것이 허상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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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오른쪽 사진 중앙에 보이는 갈고리에 걸려 도축·가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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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 원종계의 4세대를 먹는 건데, 먹지 말고 계속 알을 낳게 하면 굳이 다시 지피에스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담 : 3세대쯤 지나면 없던 열성 인자가 튀어나오거든요. 업체로선 경제적인 관점에서 딱 4세대에서 먹는 게 유리한 거죠.
Z : 원종계를 파는 회사에서 품종을 개발할 때 3세대 지나면 열성인자가 나오도록 조절해 놓는 건 아닐까요?(웃음) 그래야 병아리를 계속 팔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완전 추측입니다만.
담 : 글쎄요. 재밌는 게 미국·일본과 한국이 닭고기를 섭취하는 행태가 많이 달라요. 미국·일본은 3㎏까지 키워 먹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2㎏도 안 돼서 잡아먹어요. 부화한 지 5주 만에 먹는 거죠. 더 키워서 골격이 잡혔을 때 먹는 게 좋지만 워낙 소비자들이 영계를 좋아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거죠.
고 : 토종닭은 치킨집 닭이랑 다른가요?
담 : 토종닭이란 게 딱히 없어요. 농림부에 토종닭 두 가지가 종계(씨닭) 등록이 돼 있지만 진짜 토종닭은 아니에요. 현대의 닭을 품종 개량해서 옛날 문헌에 나온 토종닭 특징을 되살린 거죠.
고 : 존재하지 않는 토종닭을 만들어낸 셈이네요?
담 : 그렇죠. 옛날에 다들 바빠서 토종닭 품종 개량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놔두니 계속 열성인자가 나오고 그러다 퇴화돼 없어졌죠. 지금 ‘토종닭’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 털과 다리에 색이 있는 ‘유색계’가 대부분이죠.
Z : 삼계탕 닭 종자도 미국에서 수입하나요?
담 : 아닙니다. 삼계탕 닭은 육용계 수컷과 산란계 암컷을 교미해서 낳은 것입니다. 크기는 병아리만큼 작은데 특징이 육질이 아주 단단하죠.
Z : 어쩐지! 그래서 푹 고아도 닭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거였네요.
담 : 이런 식으로 삼계탕용 닭을 만든 게 20여 년쯤 된 것 같아요.
Z : 마트에 가면 포장된 닭고기가 1㎏에 2500~3000원쯤 하는데, 중저가 치킨 한 마리에 5000원에도 팔잖아요? 그걸 보면 대체 마진이 남을까 의문이에요.
담 : 중저가 치킨은 삼계탕용 닭이라고 보면 돼요. 삼계탕용 닭이 보통 육용계보다 싸거든요. 어떤 치킨 프랜차이즈는 삼계닭이랑 육용계를 섞어 쓰기도 하죠.
Z : 마트 닭고기랑 재래시장 닭이랑 다른건가요?
담 : 저희 닭고기는 급식업체·마트·재래시장으로 다 나갑니다. 똑같은 닭이 다른 운반차만 타는 셈이죠.
영계 밝히는 한국인들, 다 자라기 전에 도축하는 이유
직접 도계장(닭 도축장)을 둘러봤다. 닭고기 생산과정은 다음과 같다. 흐르는 물 위에 닭을 세워두고 고압전기를 흘려 기절시킨다 → 쓰러진 닭을 사람 손으로 컨베이어 벨트에 건다 → 경동맥을 잘라 피를 뽑는다 → 뜨거운 물속을 통과시킨다 → 탈모 기계로 털을 뽑는다 → 흡입기계로 내장을 빨아들여 제거한다 → 찬 공기나 물로 냉각시켜 변패를 막는다. 공장 내부는 위생복과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10%쯤 된다. 업장 내부를 차갑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감기에 잘 걸린다고 담당자는 말했다.
Z : 오리는 어떤가요?
담 : 영국 오리 지피에스를 수입해오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터진 뒤 프랑스 오리 회사에서 수입하고 있죠. 근데 제가 알기로 오리의 경우 시에스 밑세대로 계속 알을 부화시켜서 열성인자가 더 많고 아직 산업화가 덜 됐다고 들었어요.
Z : 놓아 기르기(프리 레인지)는 안 하시나요?
담 : 시도했는데 포기했어요.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도로 양계장으로 밀어 넣었죠.
두 시간 동안의 공장 견학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Z에게 ‘놓아 기르기’에 대해 조금 더 물었다. 유기농 닭고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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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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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 제가 프랑스에 있었던 2000년대 초 프리 레인지가 유행이었어요. 말 그대로 닭들이 농장을 돌아다니도록 풀어놓고 기르는 거죠. 근데 사료가 아니라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게 위험하다는 반론이 나와서 유럽에서 잠깐 논란이 됐죠.
고 : 재밌군요. 풀어놓고 기르면 좋을 줄 알았는데, 환경이 오염돼서 문제가 될 수 있다니. 전 지피에스와 삼계탕용 닭의 실체를 듣고 놀랐습니다.
⊙ 송치의견 : ‘놓아 기르기’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수사는 미제사건(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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