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주목받고 싶은 욕심이 들 때마다 나를 벼리게 했던 사랑하는 이들의 질책과 격려. 그들의 지원이 정대세를 좋은 선수로 키워나간다. 사진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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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흔들릴 때마다 나를 떠받쳐준 말들…그 힘으로 오늘도 한 걸음 전진한다
안녕하세요. 기온이 많이 올라 여름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들 지내시는지요? 서울은 30도를 넘긴 날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환절기에 건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마침내 이 글이 마지막 칼럼입니다. 오늘은 지난 1년을 나름대로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2008년 6월19일 첫 칼럼이 나가면서 연재가 시작됐습니다. 제가 처음 원고를 쓴 것은 평양의 어느 호텔 방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투르크메니스탄, 요르단과의 연속시합 때문에 평양에 가 있었던 겁니다. 어쨌거나 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 작문 숙제를 해본 이후 처음 써보는 글이어서 무얼 써야 될지도 모르고 제 플레이 스타일처럼 그냥 무턱대고 조선 대표가 된 일에 대해 썼던 게 지금도 생각납니다.
축구를 잘하는 것과 훌륭한 축구선수는 달라
그로부터 1년,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세월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너무 축구 얘기만 쓴 것 같습니다. 축구 얘기만 써서는 독자 여러분을 따분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 음악, 환경보호 활동, 대학시절 추억, 여행기 등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헤아려 보니 20회에 걸친 연재 가운데 축구 얘기를 하지 않은 적이 없고, 축구를 주제로 삼은 게 절반 이상이군요. 독자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며 제 글을 읽어주실지 몹시 궁금했습니다만, 저로서는 정말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조금이나마 문장력도 늘지 않았겠습니까?! 20회의 칼럼에는 저의 고뇌와 성장 과정이 모두 반영돼 있습니다. 그때그때 써두었던 제 감정을 지면을 통해 담아둘 수 있게 돼 정말 좋았습니다. 지금에야 깨닫고 있습니다만,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1년이 제 축구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1년이기 때문에 그 시절의 감정 하나하나가 아로새겨진 이 칼럼을 읽어보면 다시 초심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를 1년간 떠받쳐준 말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지난해 6월22일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한국전(1 대 1 무승부, 서울) 뒤 마음먹은 대로 플레이가 되질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팀에선 홍영조 선수가 부동의 왕자로 군림하며 신뢰를 받고 있었고 저는 패스도 받지 못하고 수비하기에만 분주했을 뿐입니다. 득점을 올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축구를 즐길 수도 없었고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좋을지도 몰라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일본에 돌아와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선 벤치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게 엉망이야….” 저 자신한테 원인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비극의 주인공인 양 그저 고뇌했던 나날들.
이대로 가선 안 된다며 나고야에서 가와사키로 제일 먼저 달려와주신 어머니의 말씀. “대세는 그저 축구를 잘하려고만 하고 있어.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고 하지 않고.” 2008년 동아시아 선수권전에서 일약 유명해진 저는, 더욱더 유명해지고 싶다, 골을 넣어 각광을 받고 싶다, 그런 생각에 집착해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번쩍 정신이 들게 만든 말이었습니다. 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조언은 언제나 적절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저의 언동에 화가 난 고교시절 감독님이 나고야에서 달려오셨습니다. 일단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제 얘기를 끝까지 들은 뒤 감독님은 “자기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대세가 프로선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열심히 악조건들을 극복해왔기 때문 아니냐. 고교시절을 생각해봐라”라고 일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머니와 은사의 질타와 격려로 원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서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에 새겨지는 얘기들이 있는 거지요. “겸허하라”는 은사와 어머니의 조언을 들은 뒤 저와 조선 대표팀은 호조를 보이게 됐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습니다. 주변 동료들을 살려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뛸 것. 프론탈레 스타일을 대표팀에서도 해내겠다는 식으로. 처음엔 제가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했지만 이젠 오로지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플레이를 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조명을 받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 따위는 이젠 집어치워. 월드컵에 가보자고!” 그리고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도전, 10월15일 대이란전에서 첫 골!! 팀의 성장을 실감했습니다. 비록 졌지만 이 팀은 정말 훌륭하다, 정신력도 엄청 강해졌고, 졌다고 해서 애를 태우거나 분통을 터뜨리기보다는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모두가 총알처럼 상대 골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가 정말 아까운 찬스도 만들었고, 어쨌든 멋졌다, 수비도 몸을 던져 해냈고. 나는 아직 멀었어. 정신상태가 달라졌다. 함께 월드컵에 나가보자.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합이었습니다. 나의 좌우명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지난해 말 제이(J)리그 수상식에서 분루를 삼킨 저에게 어느 기자분이 해준 한마디. “팀플레이에 투철할 때 정대세는 빛나요.” 그것은 프론탈레에서도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활약을 보여주겠다, 제일 눈에 띄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을 너무 앞세울 때마다 제 플레이는 매번 신통찮았습니다. 물론 팀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플레이했을 때 비로소 좋은 결과가 나오고 아울러 평가도 좋아집니다. 따라서 올해의 목표는 팀의 우승. 그리고 더불어 득점왕까지!! 제가 아는 사장님이 자주 입에 올리는 얘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사람은 돈만 좀 있으면 누구라도 사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수만명의 대관중 앞에서 그들을 감동시키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타디움에 설 때는 언제나 이 말을 기억합니다. 응원해주신 여러분의 꿈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자주 가는 레코드가게 주인의 얘기입니다. “역시 엘리트로 자라면 나약하다. 무슨 일을 하든 헝그리 정신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감독은 시합할 때 젊은 층의 헝그리 정신에서 나온 기세와 베테랑들의 경험을 잘 융합해야 하는 거라고.” 마음에 와닿는 말입니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아니 당연한 얘기이기 때문에 와닿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프로 시합에 나갔을 때 필사적이었던 정신상태를 지금도 항상 간직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하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그때와 같은 기세는 그때에 어울리는 것이었고 지금이야 그때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제게 필사적인 열정이 없어진다면 뭐가 남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한 말씀. “네 시합 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옛날 것부터 전부 봤는데, 2006년의 움직임이 정말 좋았어. 그다음 해도 좋았지만 점점 퍼포먼스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다시 재출발했습니다. 초심을 잊지 말고 헝그리 정신으로 돌진하라!! 진짜 마지막으로 저의 좌우명.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축구선수로서의 제 원점은 바로 여깁니다. 가족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 프로에 입문한 애초부터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왔습니다. 겸허함을 변함없이 유지해가는 일은 참으로 힘들어서 때로 잊어버린 듯한 상태가 되면 많은 분들의 조언을 통해 다시 그걸 떠올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크든 작든 고뇌와 성장을 거듭해가는 존재가 바로 정대세입니다. 지난 1년이 있었기에 올해도 제가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심 없이 겸허하게 해온 덕분에 사람들의 은혜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축구든 인생이든 앞으로도 좌우명대로 겸허하게 노력을 아끼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최근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도 소개했습니다만 대학 시절 동급생으로 지금도 축구를 계속하고 있는 친구 3명이 있습니다. 한국 엔(N)리그 노원 험멜의 고상도도 그중 한 사람인데, 그들은 사회인리그에서 만족스런 대우도 받지 못하고 축구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가장 친했던 친구가 최근 결국 현역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했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지니고 있는 잠재력은 굉장한데 일본실업축구(JFL)에서도 결국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꿈을 접고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런 그의 몫까지 해내야지. 지난 1년간 외견상 바뀐 건 없겠지만 제 속에서 뭔가가 한층 더 크게 자란 느낌이 듭니다. 상쾌한 기분이 용솟음칩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어 온갖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만 그건 또 다음 기회로 미뤄두겠습니다.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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