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 챔피언스리그(AFC) 결승 2차전.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 성남 일화와의 경기. 이정아 기자
|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반칙과 야유로 난장판된 ACL 톈진전…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한 대세의 고민
이제 이번 칼럼을 쓸 기회가 두 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칼럼이라는 걸 난생처음, 그것도 1년이나 계속 쓸 수 있었던 건 주변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덕택에 저도 한국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제일 뿌듯한 건 바쁜 스케줄에도 짬을 내서 착실히 연습해온 댄스를 완성한 것입니다! 무슨 댄스냐 하면 한국 아티스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원더걸스의 ‘텔 미’ 댄스 안무를 완벽하게 익힌 겁니다! 정대세의 원더걸스라니, 심사 불편하십니까? 언젠가 보여드릴 기회가 올까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하하) 운동장에 날아온 빵, 라이터, 휴지, 페트병…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3~5월은 엄청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제이(J)리그에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그리고 월드컵 예선. 하루를 통째로 쉬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로, 그야말로 피로가 쌓였습니다. 하지만 강한 팀은 빡빡한 스케줄 소화를 피할 수 없다고 프론탈레 감독이 말씀하셨듯이, 그건 대단한 영광이기도 합니다. 시합이 많은 만큼 경험도 풍부해지고 배울 것도 많아지지요. 이런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여러 나라에 시합을 하러 갔습니다. 주로 아시아 지역인데, 가까운 나라들을 들자면 조선(북한)에 두 번, 한국에 두 번, 중국에 한 번, 그리고 가장 먼 곳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한 번. 여권 페이지들도 출입국 스탬프로 메워져 하나둘 빈 공간이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6월에는 또 월드컵 예선전을 위해 조선,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갑니다. 지난 5일에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때문에 중국 톈진에 다녀왔습니다. 아시아 축구도 참으로 다양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잠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최하는 대회입니다. 서아시아 지역에서 16개 팀을 4개 그룹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16개 팀을 4개 그룹으로 각각 엮어서 A~H그룹이 리그전을 펼칩니다. 그룹 리그에서는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풀리그전을 펼쳐 그룹 2위 이상이 16라운드라고 해서 베스트16 카테고리에 진출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승 팀은 아시아의 넘버원 그룹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합니다. 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에 출전한다는 건 유럽이나 남미 클럽챔피언과 대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고, 전세계가 주목하는 시합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정말 값진 것입니다. 세계 정상 수준의 클럽 팀과 자신이 어느 정도로 대적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늘 텔레비전으로 보던 유명한 선수들과 대전할 수 있는 기회는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올해는 어떻게 해서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컵을 손에 넣고 싶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H그룹에서는 우리 프론탈레와 케이리그의 포항 스틸러스가 16라운드에 진출하는 걸로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톈진과 시합을 벌였습니다. 프론탈레가 이기면 그룹리그 1위 통과를 목전에 둔 시합이었습니다. 시합 결과는, 예선리그 탈락이 확정된 톈진을 상대로 1 대 3 패, 한마디로 한심한 경기였습니다. 내용도 경기 초반에 당한 슈퍼골 2점의 무게에 짓눌려 최후까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5월19일 일본에서 열리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시합 승자가 그룹 1위가 됩니다. 그러나 이번 시합은 그 결과보다는 아시아 축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시아라고 간단히 얘기하지만 서쪽으로는 중동 방면에서 동쪽으로 일본까지, 북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동남열도의 나라들까지 너무나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물론 나라마다 언어도 다르고 빈부격차도 있으며, 축구 수준도 다른데다 인기도 차이가 납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체험을 통해 아시아 축구의 격차를 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일 톈진 시합은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도 텔레비전이나 뉴스를 통해 접해보셨는지요? 통상적인 축구시합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과열된 중국 팀과 서포터의 열기. 축구 특유의 환호성이 아닌 분노와 야유의 외침. 어웨이 게임에서는 뱀의 시선에 사로잡힌 개구리처럼 움츠러들었다가 홈에 돌아가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투지와 운동량을 발휘하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이번 시합에서 우리도 압도당한 채 실점을 거듭했습니다만 시합이 진행되면서 명백히 상궤를 벗어난 파울의 연속. 서포터들이 던진 빵, 라이터, 휴짓조각(티슈 페이퍼), 물이 든 페트병과 동전.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따뜻한 서포터들에 둘러싸여 시합을 해온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열기였습니다. 그런 서포터들로 인해 선수들도 점점 흥분해 심판이 보지 않는 곳에선 상대를 때리고 차는 장면들의 연속. 급기야 다친 선수를 치료하러 온 상대 팀 트레이너까지 잠자코 있던 나카무라 노리오카 선수를 걷어차는 믿기 어려운 행동을 했습니다. 참으로 쿵후 축구라고나 해야 할 시합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축구시합이 반일감정의 배설구처럼 돼버린 면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라마다 축구문화의 차이가 있지만 그런 상황엔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지면 억울, 이겨도 찜찜 지난해 동아시아선수권 때 한 번 조선대표로서 중국과 대전했기 때문에 그때 거친 플레이를 이미 경험해봤으나 그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가대표와 클럽 팀이라는 품격상의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선대표로 한국 팀과 대전할 때나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일원으로 케이리그 클럽 팀과 대전할 때 투쟁심을 분출하는 한국선수들의 플레이는 제가 보더라도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공을 둘러싼 격렬한 몸싸움, 감정을 쏟아내는 축구. 그것은 스포츠를 통해 나라를 표현하고, 국가 클럽 팀 대표의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시합입니다. 하지만 이번 톈진 팀은 달랐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축구라는 스포츠로 겨루는 것이 아니라 기술 외의 힘을 그라운드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축구가 격투기라는 걸 보여준 시합이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본래 스포츠란 그것을 통해 우호를 다져가야 하는 법인데 유감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축구라는 경기를 통해 서로 감정을 드러내고 라이벌로서 격렬한 시합을 펼치면서 경기에 졌을 때의 애통함을 다음 경기를 위한 능력, 기술 향상을 위한 재료로 삼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축구가 스포츠의 영역을 뛰어넘는 하나의 멋진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수준 낮은 축구를 해서는 시합에서 지면 애통함밖에 남는 것이 없고, 거꾸로 이겼다 해도 뭔가 좋지 않은 뒷맛만 남기는 시합이 되고 맙니다. 이런 축구든 저런 축구든, 또 플레이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르든 저로서는 항상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편으로,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가교 구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맥 빠지는 시합이었습니다. 축구만이 아니라 스포츠라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고, 나라와 나라가 우호를 가장 빨리 쌓는 가교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는 걸 저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시합에서 진 애통함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 축구에 비해 뒤떨어진 아시아 축구의 낙후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곱씹으면서 돌아오는 비행기의 창밖을 멍하니 내다봤습니다. 제가 읽은 책 가운데, 아시아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U-17이나 U-20의 젊은 세대부터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의 세계대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축구 강국의 대표선수, 예컨대 잉글랜드의 루니 선수는 월드유스에는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토록 축구를 잘 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유럽이라는 지역이 축구가 매우 발전해 있고 인기도 높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경우 유럽 선수권이나 챔피언스리그가 막강합니다. 클럽 가운데는 A대표(국가대표)보다 강한 팀도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랑스 대표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길지 알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플레이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유럽은 확실히 아시아와는 환경이 다릅니다. 유감스럽게도 아시아는 그런 환경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세계를 알기 위해 젊은 세대가 세계대회에 출전해보는 게 아시아 축구의 발전에 지름길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예컨대 한국이 세계 으뜸이 되고 일본이 그와 비등한 수준이 되고 조선이나 중국이 거기에 육박하는 그런 환경을 갖춘다면 아시아의 젊은 세대가 세계대회에 나갈 필요도 없고, 유럽처럼 아시아 나라들끼리의 대전이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