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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5 20:54 수정 : 2009.03.01 14:57

혹한에 열렸던 월드컵 예선 북한 대 사우디전. 북한은 1:0의 승리로 본선 진출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연합뉴스 제공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평양의 얼음판 운동장에서 승리의 감격 맛봤던 월드컵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북한)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만, 기후 차이로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요즘 겨울이어서 나름 춥습니다마는, 그래도 남쪽에 있어서 비교적 기온이 높은 규슈의 미야자키현 캠프에 있다가 월드컵 예선전 때문에 직접 평양에 갔습니다. 모두 아시는 대로 평양에서는 (대동)강이 꽁꽁 얼어 있었는데, 극한의 추위 속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추위 단속을 단단히 하고 그날 일본에 돌아오니 기온이 24.5도여서 단 하루 만에 기온차가 무려 25도 이상. 중요한 시합에서 이겼기에 대만족이었던 마음과는 정반대로 몸은 상상 이상으로 피로했습니다. 그 온도차가 한층 더 피로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꽝꽝 언 그라운드에서 밀려온 통증

오늘은 2월11일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제4차전인 대사우디아라비아전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올해 초 월드컵 예선을 위해 대표팀이 소집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약간 망설였습니다. 2월11일 경기에 출장하려면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제1차 캠프를 도중에 빠져나와야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럼에서도 몇 번이나 썼습니다만, 지난해 이즈음에는 캠프에 참가해서 제대로 체력단련을 할 짬도 없이 월드컵 3차 예선과 동아시아선수권에 참가했습니다. 아주 좋은 경험을 했으나 1년간 견뎌낼 수 있는 체력단련을 하지 못해 J리그와 대표팀 하드 스케줄로 고생했습니다. 물론 월드컵 예선은 나라를 등에 업고 싸우는 것이어서 제 개인적인 이유보다는 소집당한 것 자체가 영광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몸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습니다. 올해는 리그전에다 월드컵 예선,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ACL)에 컵(Cup)전 등 지난해보다 확실히 빡빡한 스케줄이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캠프에 차질없이 참가함으로써 제대로 체력 기반을 만든 뒤 긴 1년을 버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재일조선인축구협회 분들과 상의해서 평양행 출발을 캠프가 끝나는 6일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 놓고 7일 대표팀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조선 대표는 1개월에 걸친 캠프로 컨디션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저도 빨리 합류할 수 있도록 먼저 기온 변화에 몹시 신경을 썼습니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갈 때보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추운 곳으로 가는 게 몸이 적응하는 데 더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겨울에 평양에 가본 적이 없는 저는 그곳이 도대체 얼마나 추울지 걱정하면서 운동할 때, 조깅할 때, 그리고 그밖의 경우들에 대비해 방한구들을 완벽하게 챙겨 갔습니다.


그러나 실제 평양에 들어가 보니 코트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쯤이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틀째 오후 처음으로 트레이닝 장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들어가 기온을 확인했지만 역시 그다지 춥지는 않았습니다. 스트레칭을 조금 한 뒤 조깅을 하면 몸도 더워지겠거니 생각하고 모두가 그라운드에 나오기 전에 혼자 조깅하면서 그라운드 상태를 점검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잔디 밑 지면이 꽝꽝 얼어 있는 겁니다! 엄청 딱딱해서 흡사 스케이트 링크 위에 잔디가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워밍업을 시작하고는 굴러 넘어졌습니다. 지면이 너무 딱딱해서 하반신 근육에 부담이 오고, 무릎이 아프고, 발목에도 위화감이 생기고, 고관절통이 재발해 내 몸이 딱딱한 그라운드를 견뎌내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7만 관중 가운데 반소매는 나 하나뿐이네

그리고 경기 전날, 실제로 경기를 치를 경기장 전체를 뛰어다니며 전술훈련을 할 때 헤딩 점프를 한 순간 고관절에서 격심한 통증을 느낀 저는 그대로 퇴장했습니다. 우연히 그 플레이로 연습이 끝났기 때문에 운 좋게 감독한테 부상당한 사실을 들키지 않고 호텔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전날 그런 정도의 통증이 생겼다면 틀림없이 그 다음날 경기에서 좋은 퍼포먼스는커녕 팀에 부담만 지우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호텔에 돌아온 뒤 계속 얼음찜질을 하면서 호텔에 대기하던 의사선생한테서 한 시간 가까이 세심하게 고관절 주위의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더니 좀 나아지진 했습니다만 역시 환부에서 잔뜩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감독과 팀 동료들에게 얘기하면 걱정만 끼치게 될 테니 부담 주지 않으려고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의사한테만 사정 얘기를 해서 통증완화 조처를 한 뒤 경기에 임했습니다.

우리가 그 경기에서 이기고 이란이 한국과 비기는 바람에 조선이 2위로 뛰어오르는 엄청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제 마음을 아는 듯 관중도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꽉 채웠는데, 모두가 이 경기의 중요성을 일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쪽 서포터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적도 가까운 따뜻한 중동에서 왔기 때문에 추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 듯 움직임이 무거웠고 기운을 관중에게 흡수당한 듯했습니다. 개중에는 코르셋 같은 거친 목 보온띠(넥 워머·neck warmer)를 두른 선수도 있었고 롱 타이츠는 당연한 듯 모두 입고 나와 정말 추위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 대표 선수들도 넥 워머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 긴소매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습니다만, 저는 그런 추위에 지기 싫어서 반소매 유니폼을 착용했습니다!! 그날 스타디움에 모인 6만~7만 관중 가운데서 반소매는 오직 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하하) 일본에서도 봄에 리그전이 개막되고 리그전이 끝나는 12월이 가까워지면 긴소매 선수들이 늘어갑니다만 저는 언제나 ‘건강표’ 반소매로 플레이를 합니다.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면 더워지고, 제 나름의 감각입니다만, 긴소매는 아무래도 어깨의 자유를 앗아가는 것 같고 반소매가 훨씬 움직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극한의 평양에서도 매번 반소매로 출장했습니다.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스타디움 분위기 덕도 있어서 결과는 모두 아시는 대로 1 대 0 승리!! 전반 30분에 제가 상대 선수와 헤딩 싸움을 하던 중 흘러나간 공을 홍영조 선수가 받아 솜씨 좋게 스루패스하자 우리의 ‘작아도 고추알’인 문인국 선수가 대망의 선제골로 연결해 결승골!! 월드컵 예선전은 1점이 정말 무서운 것이어서 거의 모든 경기가 1점 차로 승부가 갈립니다. 이번에도 홈에서 ‘대세 골’은 보여줄 수 없었으나 찬스는 여러번 있었습니다. 포워드로서의 제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만 무엇보다 우리 팀의 승리는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월드컵 예선 장정도 어느덧 중간 지점에 당도했고, 조선은 수위 한국과의 승점차 ‘1’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2위라는 결과는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고도 남습니다.

예전부터 막연히 동경해온 월드컵.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분하는, 4년마다 열리는 엄청난 대회. 이제까지는 그저 텔레비전 화면으로 구경하기만 했던 월드컵. 일개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을 관전하면서 이게 픽션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플레이를 보고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출전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월드컵을 향해 지금 저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착실하게 한 계단 한 계단 월드컵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직 절반 지점에 지나지 않고 절대 나갈 수 있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으며, 거의 나갈 수 있겠다는 확증도 없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시합 결과를 예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고 얘기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꿈속의 월드컵에 한 걸음 다가가다

우리는 아시아의 강호 한국과 이란, 그리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아직 안정된 팀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아래에서 밀고 올라가려는 불타는 듯 뜨거운 투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때야말로 모두 마음을 합해 일전 일전 최선을 다해 싸워 승리해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자이니치(재일) 여러분을 위해, 언제나 음지에서 뒷받침해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조금은 자신을 위해….(하하)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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