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4.14 10:50 수정 : 2011.04.14 10:50

어른 된 당신…자기연민 대신 행동할 때.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유독 내게만 엄했던 엄마, 트라우마로 남았네요

Q 명문대 법대에 다니는 23살 여자입니다. 3남매 중 장녀인 저는 어딜 가나 제 이름 석 자가 아니라 공부 잘하고 어른스러운 첫째 딸이었어요. 엄마는 힘들게 낳은 첫째 딸에게 최고의 삶만을 원했나 봐요. 제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정말 호되게 야단치고 때리셨거든요. 그러고 나니 제 맘속엔 공부 잘해야 사랑받는단 생각이 자리잡았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진솔한 고민을 털어놓거나 애교를 부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런 제 모습에 부모님은 “둘째, 셋째는 잔정이 많은데 첫째는 머리는 좋지만 냉철한 아이야. 정이 없는 거 같아”라고 했고 그때마다 제 맘속엔 피멍이 들었어요. 사실 눈물 많고 유약한 저는 항상 방문을 잠그고 소리 죽여 울곤 했죠. 지금 저는 여전히 부모님의 관심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고시 공부에 매달리고 있고 항상 마음속 깊이 부모님을 만족시켜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엄마께서 우시며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젊고 욕심이 많아서 너한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한 거 같다며, ‘합격 그거 안 해도 그만이야. 엄마는 네가 행복하면 돼’라고 말해주시지만 전 여전히 엄마를 원망하게 되네요. 저도 모르게 엄마한테 울면서 소리치고 싶어요. 하나도 극복이 안 되었나 봐요. 어떻게 하면 이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A 부모자식 사이니까 가족이니까 당연히 서로 무조건 받아들이고 품고 사랑해야 한다는 논리가 전 늘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이상화된 부모자식 간의 애틋한 모습을 확신하며 ‘난 당연한 걸 못 누렸다’고 부모에게 복수심과 울분을 품는 것도 자식이 부모에게 행사하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니깐요.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한가? 유년기 때는 물론 중요하다고들 하지요. 그럼 그다음엔? 내가 자식이었을 때, 그리고 장차 부모가 된 후, 우리 중에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주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저는 ‘부모 탓’과 ‘부모 덕’의 경계선은 참 애매한 지점에 있다고 봅니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결핍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가령 부모의 학대 때문에 난 도저히 타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그래서 미래의 내 가정을 가지는 것조차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면 이건 명백히 ‘부모 탓’이요, 국가제도나 치유전문가들이 개입해서 그 취약한 개인을 지원해야 하겠지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한 건 살아 있는 지옥이니깐요. 하지만 또 가령 자식 보기에 부모가 냉정한 방임주의라면, 아이는 인정욕구가 과다하고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클 수 있지만 대신 독립심을 가진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과거 부모의 방임은 나를 믿고 지켜봐 주었던 것이고 나의 자율성과 선택을 인정해주는 측면도 있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한때 지켜보며 울화가 치밀었던, 부모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앵기는 친구와, 자식이 예뻐 죽어 무한대로 자식 위해 물심양면 내놓는 친구 부모님이 용서가 되기도 하겠지요. 과거 질투하고 경멸했던 그 관계나 방식 역시도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여겨질 테니까.

그런데 어쩌죠? 부모 탓이든 덕이든 23살이면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을.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면 기본적으로 자기 좋을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관심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 지금 다 관둬도 되는 겁니다. 이제 그 누구도 당신에게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마도 다 때려치워도 된다고 하잖아요? 아니야, 나도 이게 싫지만 무의식중에 강요받고 있고 너무 습관이 들었기에 나 자신도 날 어쩔 수 없어, 라고 한다면 이건 대체 어디부터 ‘내 탓’이고 어디부터 ‘부모 탓’일까요?

그걸 정확히 알려면 한번 해보시란 말입니다. 엄마한테 울면서 소리치는 것. 진솔한 고민을 털어놓고 형제 중 가장 사랑받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것. 부모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준비하는 사법시험이 싫었다면 공부 멈추세요. 끄응, 그러기엔 좀 애매하다고요? 그랬다면 그 지점에서 잠시 머리 식히고 ‘탓’만 보지 말고 ‘덕’도 있지 않았나 사법시험 준비생답게 공정하게 의심도 해보시길.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전 지난 3년간 〈esc〉 상담 지면을 써오면서 단 한 번도 가족문제를 다뤄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가족문제에 대한 해결은 근본적으로 ‘견뎌내거나 아니면 벗어나거나’일 뿐이라고 정 없게 생각해왔기 때문이지요. 물론 개중에는 어떤 수를 쓰든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부모 품을 벗어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현실적인 ‘베스트’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괴롭게 견뎌내든, 혹은 다행히 벗어나든, 최소한 성인 나이를 넘긴 시점이 되면 자기 상황을 개선하거나 다른 시점에서 보려는 자발적인 행동과 노력을 유보한 채 섣부른 자기연민이나 동정으로 치닫는 것만은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설마 ‘나는 변하고 싶지만 부모가 내 자아를 애초에 이렇게 억눌러 놔버려서 자발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다’고라고라고요? 이렇게 도돌이표 되어 돌아올 거라면 결국 부모 탓 문제가 아닌 남 탓하는 습성의 문제로 변질할 수도 있겠네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