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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0 11:20 수정 : 2011.03.10 11:20

자유의지까지 갖추면 행복한 엘리트

Q 사교육으로 커진 우월감 깰 수 있을까요?

고3 여학생입니다. 저는 중산층 고학력자 부모님을 만나 어릴 적부터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이며 커왔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바람에 맞춰, 현재 저는 결코 낮지 않은 상위 한자릿수 백분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달리면 원하던 곳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엔 그렇게 대학이 전부라고 믿으면서 시작했지만, 막상 세상을 둘러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서울의 명문대 출신 아니어도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거나, 성실하거나 착한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렇게 학교 성적과 사람 됨됨이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거 ‘머리로는’ 알게 됐지만, 제 무의식에서는 나보다 공부 못하는 애 앞에선 왠지 우월감을 느끼고 당당해지는데,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 앞에선 왠지 모를 열등감이 듭니다. 어른들도 학벌이 낮으면 왠지 게으르거나 한심해 보입니다. 그렇게 치면 세상의 90%가 넘는 사람들이 다 한심해지는 건데, 말이 안 되잖아요. 이런 가치관을 계속 가지고 성장했다가는 ‘이기적인 엘리트’밖에 안 될 것 같아요. 이건 결코 되고 싶지 않던 어른의 모습인데 왜 저는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 걸까요. 이 모든 것을 닦달하신 부모님과 경쟁을 부추기는 이 세상 탓만 하기엔 제가 무책임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비열한 무의식을 깰 수 있을까요?

A 과다한 사교육이나 학벌만능주의의 구조적 문제, 이런 거시적인 것은 잠시 놔두고 미시적인 개인 차원에서 기본 명제 몇 가지만 생각을 짚어 보겠습니다. 아마도 부모님들로부터 귀따갑게 들어왔던 그 지겨운 소리들일 겁니다.

첫째, 어른이 되기 전 성장기 학생에게 주어진 주 일과는 ‘공부’입니다. 어른들의 회사일이나 가사일처럼. 그러니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서 잘하는 것이니 그에 대한 자긍심과 다소의 우월감을 속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에 대해선 죄책감이나 비굴함 없이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부모님 매니징 아래 이루어진 업적이라 하더라도 머릿속에 집어넣는 건 나니까.

둘째, 좋은 대학을 나오면 사회에 나왔을 때 안 좋은 대학을 나온 것보다 사실 유리합니다. 그게 뭐 대수야 싶어도 주변의 대우·차별은 마냥 피해갈 순 없습니다. 서울 명문대 출신 아니어도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며 인간성도 훨씬 나은 사람들을 대거 목격했다고 하지만 학벌이 낮은데도 성공한 사람들은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공부에 투자했을 그 노력을 다른 부문에 효과적으로 쏟아부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대박을 친 학벌 낮은 사람과 극단적으로 참 안 풀린 학벌 좋은 사람을 비교한들 더더욱 헷갈리고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경험하기 전에 판단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좋은 대학 나와도 별 볼일 없더라’라고 가보기도 전에 생각한다면 그건 현실도피. 만약 난 애초에 공부가 적성에 안 맞고 따로 하고 싶은 일은 전문학교에 가야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인생의 선택이죠. 하지만 그런 확신을 가진 학생들은 아직 소수이고 그런 확고한 생각들이 아직 설정이 덜 된 상태에서 좋은 학벌이 기회와 가능성을 높여주는 그 유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거니와 그리 뭐 대단히 양심적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귀가 따가운가요? 다시 정리하자면 학력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문제도 아닙니다. 좋은 학벌은 유리하고, 그에 투입되는 노력은 정당하게 칭찬받아야 합니다. 자, 그런데 딱 거기까지! 종종 부모님들이 말하듯 좋은 학벌이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인생은 그 이전의 시간들보다 훠얼씬 깁니다. 좋은 학부 이름 하나만으로 담보받을 수 있는 시간들이 아니라고.


좋은 학벌이 분명 속세적 의미의 성공을 향한 기회를 얻는 데에 ‘유리’하긴 합니다만 그걸로는 역부족입니다. 그 유리함을 활용해 성공으로 연결시키려면 인간에겐 필사적이고 절실한 ‘자유의지’가 필요합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라고 해서 애초에 대학부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 너머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의식하고 준비를 하려는 자발적인 동기부여 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교육과 공부의 방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공부했냐에 따라 저 자유의지가 도중에 거세되기도 하고, 혹은 그 사람이 품은 불꽃을 거세게 지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하니깐요. 내가 아무리 지금 성적이 좋아 봤자 결국 잘난 매니저 부모님이 공들여 키워낸 상품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고 앞으로 더 많은 세상공부를 하게 해줄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스스로를 격려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이윽고 당신은 이기적인 엘리트가 아닌 독립적이고 행복하고 인간성 좋은 엘리트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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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엘리트, 그거 나쁜 것 아니에요. 지금 그 ‘이기적인 엘리트’의 관념 속엔 ‘사회적 성공보다 행복·인간성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흔들림이 깔려 있는데 그건 전제부터가 잘못되어 있답니다.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저울에 올라가야 하고요,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뭔가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생각도 선입견이지요.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 인간으로선 저질인 어른들이 매체에 하도 많이 등장해서일까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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