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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0 17:57 수정 : 2019.11.11 19:25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한겨레>의 ‘조국, 그 이후’ 기획 연재 기사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다시 문제는 불평등이다’ 편에 실린 이재훈·오연서 기자의 기사(‘조국대전’에 낄 자리조차 없던 이들의 분노)가 감명 깊었다. 불평등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준 두 기자께 감사를 드리면서 내 생각을 조금 더 보태고 싶다.

불평등 담론엔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1% 대 99%’ 담론과 ‘20% 대 80%’ 담론이다. 그 중간에 ‘10% 대 90%’ 담론이 있는데, 이는 ‘20 대 80’ 담론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게 좋겠다. 아직까지 주류 담론은 ‘1 대 99’ 담론이기에, 아무래도 약한 쪽이 서로 힘을 합해 주류 담론의 문제를 폭로하고 교정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불평등 완화를 위해 상위 1%를 문제삼을 것인가, 아니면 상위 20%를 문제삼을 것인가? 우리는 어느 쪽이건 별 상관 없지 않으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선 99%가 힘을 합해 1%의 몫을 줄인 뒤에 20%의 몫도 줄여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다. 20%는 자신의 몫을 줄일 뜻이 없다. 그들의 1% 비판은 자신의 몫에 대한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안전판의 성격이 농후하기에 정책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불평등 완화는 경제의 영역인 동시에 소통과 설득의 영역이다.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나도 양보했는데, 왜 당신들은 양보하지 않으려는가?”라는 당당하고 공평무사한 자세를 가질 때에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해진다. 20%에 속하는 정책결정자와 전문가 집단이 자기 몫을 조금 양보하는 아픔을 느낄 때에 비로소 추상적 구호가 아닌, 정교한 정책 수단으로 ‘1%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대 99’ 담론은 일반 대중의 폭넓은 호응을 얻기도 어렵다. 대기업 노동자냐 중소기업 노동자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임금격차가 거의 두 배 또는 세 배나 되는 불공정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1% 개혁’은 아무런 감흥이 없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악착같이 이 모델을 고수하면서 ‘자본 대 노동’이라는 이분법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이 보수적인 대통령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 대 99’에서 ‘20 대 80’ 모델로 이동한다는 건 개혁 방법론의 차원을 넘어서 진보가 기존 사고의 틀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지만 진보는 여전히 사회개혁을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습속을 갖고 있다. 민주화 투쟁은 거대한 적을 무너뜨려야 하는 투쟁이었기에, 진보는 거대담론과 총론엔 능하고 강하지만 민생과 각론엔 무능하고 약하다. 이는 ‘1 대 99’ 모델의 정치적 버전으로, 오늘날엔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 ‘20 대 80’ 모델로 이동하면 진보에겐 전혀 다른 자질이 요구된다.

민주화 투쟁가들은 민주화의 은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습속과 자질은 민주화 이후의 정치엔 맞지 않는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게 세상사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는 자식이 잘되는 걸 바랄 뿐 성인이 된 자식의 판단을 존중한다. 세상이 달라진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화 투쟁가들에겐 부모의 그런 마음이 없다. 이들은 보수를 거대한 적으로 내세워 시효가 끝난 민주화 투쟁 모델을 연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이는 보수의 한심한 수준과 행태에도 책임이 있지만, 그게 진보의 면책 사유는 될 수 없다. 민생을 소홀히 한 채 기득권과 정의를 동시에 독점하려는 이런 정치적 자질은 이젠 정말 곤란하다.

‘20 대 80’ 모델은 ‘자본 대 노동’이라는 1980년대식 사고를 넘어 노동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눈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대기업 노동자의 상당수가 20%에 속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들과 맺은 동맹을 넘어 “우리 모두 80%를 생각하자”고 설득하는 정책 전환을 요구한다. 자신들이 20%에 속하는 계급편향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최우선 정책 의제가 80%의 민생과는 무관한 자신들만의 습속에서 비롯된 아집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보수와의 비교를 통해 자기 정당성을 강변하는 ‘적대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80%의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자세 전환을 요구한다. 민생을 돌보는 데엔 분노와 증오보다는 문자 그대로의 ‘피, 땀, 눈물’이 요구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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