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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1 17:27 수정 : 2019.07.22 13:00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이라는 말의 인기가 높다. 장강명 작가는 “나는 앞으로도 이 표현이 애용(?)되며 결국엔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리라 예상한다”고 했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이 말을 특정 세력에게만 적용하는 건 옳지 않다. 김승현 <중앙일보> 기자가 잘 지적했듯이, “내로남불은 나의 인식이자 우리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내로남불이 “민심과 국론을 갈가리 찢는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지만 정치권은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 같다. 극소수 정치인들만 부끄러워할 뿐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치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정치 불신과 관련해 “내로남불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며 “국회의원이 가장 괴로운 순간도 내로남불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느낄 때”라고 말했다.

내로남불의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100여년 전 프로이트가 제시한 ‘사소한 차이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라는 개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이는 서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격렬하고 화해가 불가능한 다툼이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호 동질성이 비교적 높은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에서 증오와 파괴가 심하게 일어난 것이나, 동족상잔의 전쟁이 이민족 간의 전쟁보다 더 잔인하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개인들 간 관계에서도 가족이나 친족 내에서 큰 갈등이 일어나면 그 싸움의 치열함은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이런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은 정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 사회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처드 세넷은 영국의 여야 정당들이 주요 정책에서 내용이 대단히 유사한 표준 플랫폼을 공유하는 ‘플랫폼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런 상황에선 필연적으로 서로의 차이를 부각할 수 있는 수사법을 구사하는 ‘상징 부풀리기’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정치는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정치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상황에선 큰 이슈를 놓고 싸울 일이 없어진다. 하지만 ‘싸움 없는 정치’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여야 정당들은 사소한 차이를 큰 것인 양 부풀리는 싸움을 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선 정책의 틀을 전환하는 게 어려우므로 정당들 간 차이는 더욱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싸움은 더 격렬해지고 증오는 더 깊어진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존재 근거와 존재감을 확인하고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로남불의 이중성은 사소한 문제가 되고 만다.

세넷이 빠트린 더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승자독식’ 체제하에서의 ‘이익 투쟁’이다. 물질적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과 투쟁은 서로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재산 분배, 승진, 권력 장악은 가족, 조직,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정권을 잡는 데에 경쟁자는 상대 정당일 뿐 다른 나라의 정권이나 정당이 아니다. 따라서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선 설사 국익을 훼손하는 일이라도 망설임 없이 내지르고 본다. 이런 사생결단식 이익투쟁을 하는 상황에서 내로남불 비판은 신경쓸 게 전혀 못 된다.

너무 비관적인 그림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내로남불에 한국 정치의 희망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로남불의 원인을 바꾸는 건 ‘정치혁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개혁인데, 내로남불에 대한 반감이 그런 개혁의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완고한 이념이나 비전의 큰 차이를 갖고 있는 정당들 사이에선 그 어떤 타협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당들이 이익 때문에 노선과 정책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융통성’을 갖고 있다면 타협은 이익 분배 방식의 변화로 비교적 쉽게 이룰 수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종교 다원주의’ 국가라는 건 한국인들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삶의 방식에 매우 익숙하다는 걸 말해준다. 이 좋은 자질을 왜 사장시켜야 한단 말인가?

정권의 이익 분배는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과 직간접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수백만 인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정권, 어떤 지방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정치적 가치와는 무관한 곳에서까지 인적 물갈이가 이뤄지는 ‘정치 만능’의 상황을 바꿔야 한다. 시민사회의 역량을 믿고 정치적 ‘지대 추구’를 차단하는 ‘중립 영역’을 늘려 나가야 한다. 내로남불을 그런 희망의 기회로 활용하는 국민적 합의와 압력이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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