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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3 18:08 수정 : 2019.03.04 09:22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종교적 열정으로 뭉친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바치는 ‘순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이라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 공격성을 보인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1% 안팎의 극소수임에도 지배력을 행사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 법칙’이라는 게 있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법칙이다. 처음엔 웹사이트의 콘텐츠 창출자는 전체 이용자의 1%라는 사실에서 출발했지만, 이젠 어느 분야에서건 꼭 1%가 아니더라도 극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걸 가리켜 ‘1% 법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 법칙’은 한국에서도 입증됐다. 2018년 네이버에서 댓글을 작성한 회원은 전체 회원의 0.8%에 불과했다. 6개월간 네이버 뉴스에 한 건이라도 댓글을 단 사용자는 175만여명이었지만, 1000개 이상의 댓글을 단 아이디는 약 3500여개였다. 전체 인터넷 사용자 인구 대비 0.008%에 해당하는 사람이 전체 댓글 여론에 영향을 미친 셈인데, 이게 바로 댓글 조작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다.(, 2018년 4월24일)

시민의 참여는 민주주의와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이지만, ‘1% 법칙’은 ‘참여의 딜레마’를 말해준다. 누구나 절감하겠지만, 참여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리자면, 참여는 “자유로운 저녁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다”. 노력도 요구한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시간과 노력은 곧 돈인데, 그들에게 참여를 하라는 건 목돈 내놓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일지라도 정열이 없으면 참여를 너무 성가시고 힘든 일로 여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종교적 열정으로 뭉친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바치는 ‘순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이라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 공격성을 보인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1% 안팎의 극소수임에도 지배력을 행사한다. 뜨거운 정열로 똘똘 뭉친 그들은 참여를 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비해 ‘1당 100’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준 게 2009년부터 수년간 미국 정치를 뒤흔들었던 우익 포퓰리즘 운동단체인 ‘티파티’다. 당시 공화당 의원들은 티파티에 찍힐까봐 벌벌 떨곤 했다. 공화당 내부에선 “티파티에게 더 이상 휘둘려선 안 된다”는 불만이 들끓었지만,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나서진 못했다. 그래서 미국 언론은 “누가 공화당을 대표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의문은 오늘날 한국의 일부 정당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언론은 자유한국당이 ‘2% 태극기부대’에 휘둘린 현실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개탄했지만, 이건 ‘태극기부대’를 폄하하거나 그들의 자제를 요청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간 수많은 학자들이 이 ‘참여격차’의 문제를 연구했지만, ‘딜레마’라는 진단을 넘어선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언론인들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론적으론 다양성이 살아 있는 광범위한 참여가 답이지만, 아직까진 이론일 뿐이다. 사실상 기존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인 청년들이 정당을 향해 침만 뱉지 말고 정당으로 쳐들어가 당원의 자격으로 정당을 개혁하자는 주장이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이라면 대안이었다. 이 대안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그런 주장과 실천 시도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영향력하에 있는 사람들을 당원으로 끌어들이는 데엔 적극적이지만, 자기 패거리가 아닌 사람이 당원이 되는 데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아니 오히려 방해물로 간주한다. 이를 잘 아는 시민들은 정당원을 좋게 보지 않는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이사가 청년의 정치참여와 관련해 지적했듯이, “당에서 오래 활동한 친구들은 ‘정치낭인’, ‘구태정치꾼’으로 낙인찍”히는 일이 벌어지고, “정치인이 되려는 인재들은 로스쿨에 가거나 ‘알아서’ 당이 영입하고 싶은 인재가 돼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종교적 순수주의자가 되거나.

정당들이 낮은 자세로 “제발 우리를 바꿔달라”고 호소하면서 당원 가입을 요청하는 캠페인을 벌인 걸 본 적이 있는가? 이걸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거니와 정치를 독식하기 위한 음모의 냄새가 농후한데도 광범위한 참여를 실현되기 어려운 꿈으로만 봐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정치의 ‘1% 법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는 정당이 스스로 애써 만들어낸 게 아닌가? 태극기부대는 우리의 민주주의 운영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변화를 촉구한 공로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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