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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31 18:32 수정 : 2016.02.01 00:16

카를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지만, 정작 아편 같은 종교는 공산주의였던 게 아닐까? 세계 곳곳에서 공산주의 혁명과 집권의 와중에서 벌어진 잔혹한 인명 살상과 인권 유린은 그 어떤 종교적 신념에 중독되지 않고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반대편에선 ‘공산주의 공포’로 인해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이 또한 종교적 확신에 따른 것이었다.

이념의 종교화는 정치의 종교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종교화된 정치 역시 광신으로 빠져들기 십상이지만, 그렇게 어두운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놀라운 헌신과 연대와 결집을 이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의 민주화 투쟁이 바로 그런 경우다. 반독재 투쟁에서 민주화 인사들이 보여준 자기희생과 헌신은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정도나마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정치의 종교화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게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절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절박한 열정이나 광신을 갖고 선악 이분법으로 임하다 보면 상대편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주요 문제는 바로 이런 소통 불능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현재 새누리당 내부에 울려 퍼지는 ‘박 타령’은 민주주의 원리에 근거한 정치적 행위라기보다는 지도자를 교주로 모시는 종교적 행위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기준으로 처음엔 ‘친박’과 ‘비박’이 나오더니, ‘원박(원조 친박), 종박(추종하는 친박), 홀박(홀대받은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 짤박(짤린 친박), 탈박(탈출한 친박)’ 등으로 분화되었다가, 이젠 ‘진실한 사람’과 ‘친박’을 합쳤다는 ‘진박 타령’이 난무한다. 이른바 ‘진박 감별사’까지 나타나 이단을 단속하겠다고 외치는가 하면, ‘진박 인증 샷’까지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은 “없던 인연까지 만들어 자꾸 대통령을 판다”며 “너도나도 진박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진진(眞眞)박이 누군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너무 슬픈 이야기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한국은 ‘정당 민주주의’ 국가라기보다는 ‘지도자 민주주의’ 국가라는 걸 의미한다. 상호 소통이 안 되는 보수와 진보가 이 점에 있어선 다를 게 전혀 없다. 선거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이 어느 날 갑자기 외부 거물 인사를 영입해 당의 전권을 맡겼더니 지지율이 오르는 기현상 역시 정당 민주주의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걸 말해준다.

나는 소통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매일 두세 시간씩 인터넷 사이트의 정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 댓글 공간의 세계는 ‘배설 공간’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배우고 얻을 것도 많다. 내가 수개월간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그곳은 열정과 분노와 저주가 넘치는 정치 전쟁, 아니 종교 전쟁의 공간이었다. 우리 사회에 분노할 일이 좀 많은가. 그런 이슈들을 정치와 연계시켜 분노를 표현할 법도 한데, 그런 글은 거의 없고 주로 자신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찬양 아니면 비난 일색이었다.

정치 신도들은 끼리끼리 모인다. 조금 다른 견해가 등장하면 ‘댓글알바’라고 공격하면서 유일신앙의 존엄을 재확인한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그런 ‘정치 종교’를 외면하거나 혐오하는 무신론자들이지만, 이들 역시 선거라고 하는 스펙터클 부흥회만 다가오면 큰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구경꾼일 뿐이며, ‘정치 종교’의 주역은 소수의 사제들과 열성 신도들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바로 이런 참여의 불균형에서 정치 혐오와 저주가 비롯되건만, 우리는 그건 주어진 숙명으로 간주한 채 ‘부흥회 쇼’를 벌이는 걸 정치의 본령인 양 착각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부흥회에 모든 것을 거는 ‘선거 근본주의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선거라고 하는 대목을 놓칠 수 없는 언론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보도와 논평 시 ‘인물 중심’에서 ‘이슈 중심’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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