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양인들이 많다. 이와 관련해 영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브린은 <한국인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서양인들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 대표적 예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를 든다. 서양인들은 물적 조건을 우선시하는 한국인의 중매결혼 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집안의 사회경제적 존재 증명과 과시에 치중하는 한국 특유의 결혼식 문화를 보더라도 그런 주장을 반박하긴 쉽지 않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목숨 거는 사랑을 노래한 가요가 많은 것은 조건 중심으로 하는 결혼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수 임재범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애태우는 ‘전쟁 같은 사랑’을 절규하고, 백지영은 이별 통보가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다고 흐느낀다. 모두가 결혼을 합리적·계산적으로 한다면, 삶은 그만큼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이른바 ‘구성의 오류’ 때문이다. 구성의 오류는 각 개인의 합리적 행동의 총합이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불황에 저축을 늘리면 개인은 안전감을 느끼겠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하면 소비가 줄어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합리적·계산적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면, 사회는 과잉 경쟁의 늪에 빠져들어 필요 이상으로 각박하고 살벌해질 수 있다. 우리의 대학입시 전쟁이 그 생생한 증거다. ‘전쟁 같은 사랑’으로부터의 도피를 꾀한 우리는 ‘전쟁 같은 삶’에 빠져든다. 물질적 서열의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 다양한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에 만족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한사코 모든 사람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서열을 매겨야만 직성이 풀린다. 삶의 만족과 보람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사회경제적 비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은 끝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속 전시 상태로 살아가야만 한다. 한국인들의 ‘전쟁 같은 삶’은 각종 통계로도 입증된다. 수많은 통계가 있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만으로도 그 전쟁의 참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갑을관계에서 나타나는 비열한 갑질은 많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건 다단계 먹이사슬 구조로 돼 있어 전 국민의 머리와 가슴속에 내면화돼 있는 삶의 기본 양식이다. 그런 ‘전쟁 같은 삶’의 기원은 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최고조에 이른 건 6·25 전쟁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 아직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어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규제하는 생활 문법이다. 과거 고성장은 그런 ‘전쟁 같은 삶’을 역동성과 활력으로 여길 수도 있는 여유를 제공했지만, 이제 저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불러올 빈부 양극화는 전쟁의 내용과 방식마저 더욱 잔인하고 추악하게 만들 것이다. 어느 시인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지만, 이젠 사회경제적 약자들 사이의 전쟁만 더욱 격화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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