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21 18:14
수정 : 2014.09.2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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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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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회를 바꾸는 데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폭로(revelation)일 뿐 혁명(revolution)이 아니다.”
미국의 도시 빈민 운동가인 사울 알린스키가 1960년대의 신좌파 운동권 대학생들을 두고 한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맞춰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기준으로 당위 일변도로만 나가면서 오히려 운동을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신좌파 학생들의 과격성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방불케 하는 혼돈의 아수라장’으로 진단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내가 떠올린 건 알린스키의 위와 같은 따끔한 충고였다. 왜 그런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인정을 옳지 않은 타협으로 간주한다.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국민 여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의 반토막 수준에 머무르는 현실이 지속되는데도 천하태평이다.
현실 세계에서의 승리와 성공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소신을 널리 알리고 밝히는 일에만 주력하는 그들의 의연함이 존경스럽긴 하다. 그들이 운동단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타협을 기본적인 행동 양식으로 삼아야 할 정당의 주체다. 설사 상대 정당이 ‘패륜집단’이라 하더라도 그 집단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자기 집단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면, 그들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한다.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서지 않겠다면 말이다.
<조선일보>의 어느 논객은 “야권이 ‘세월호의 진실’을 부르짖는 진짜 속내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청와대 쪽으로 돌려 박근혜 대통령을 흔들고 싶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한겨레>는 이런 주장을 비판했지만 우리 자신도 돌아보자. 여권이 그런 의심을 하기에 족할 만큼 야권은 박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행을 보이지 않았던가?
김종구 논설위원은 “‘7시간 미스터리’ 풀 열쇠는 세월호법”(8월28일)이라는 제목의 <한겨레> 칼럼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7시간 미스터리’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고 했고,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야당이 7시간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는 야권이 ‘7시간 미스터리’에 집착하는 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야권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문제는 ‘7시간 미스터리’의 중요성이다. 그것이 유족들이 간절히 바라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면 그건 양보할 수 없는 의제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김 논설위원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특별법에 따라 진행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초점은 결국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초기 대응 부실 문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밖의 것들은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밝혀낼 수 있고 이미 얼추 드러난 상태이기도 하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야권은 결코 이길 수 없는, ‘7시간 미스터리’를 밝히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7시간 미스터리’를 양보하는 대신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고 진보적 민생 의제로 옮겨가는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을 더 위하는 길일까?
여우와 같은 지혜로 사회를 실질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자신의 존재 증명에 급급한 진보는 ‘싸가지 없는 진보’로 비치기 십상이다. 출구 없는 극단적 대결로 인해 정치 자체가 국민적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될 때 이익을 보는 건 보수지 진보가 아니다. 진보한테 필요한 건 정의감과 도덕적 우월감의 과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건 세상을 바꾸려는 꿈과 실천에 대한 갈증과 허기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 대통령의 강공 선회, 그 내막은? [정치토크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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