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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8 19:34 수정 : 2008.06.16 16:03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칼럼

촛불시위와 관련해 ‘10대 예찬론’이 쏟아져 나오는 걸 지켜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하다. 부모가 했어야 할 일, 해야 할 일을, 10대 자녀들이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 잘한다고 칭찬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사회적으로 각자 맡은 일들이 있을 텐데, 그들이 촛불시위를 하게 만든 일은 기성세대의 책임이 아닌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일까? 보수신문들조차 이명박 대통령 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점에선 만장일치를 본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반쪽짜리 답이다. 왜 이 대통령이 그런 최악의 결정을 밀어붙였을까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은 내각과 참모의 보좌를 받는다. 이론은 그렇다. 그런데 정말 받는가? 받지 않는다! 주요 결정은 혼자 내린다. 이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렇게 했다. 우리는 ‘고독한 결단’을 지도자의 최고 자질로 여기는 문화에 익숙한 유권자들이다. ‘고독한 결단’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만 문제를 삼을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직에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과부하를 걸어놓고 대통령들이 망가지는 모습에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내각과 참모는 대통령의 최악의 결정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이론은 그렇다. 대통령은 신(神)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 ‘영혼 없는 공직자’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이명박 정부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역대 모든 정권은 물론 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관철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간 우리는 그 문제를 지도자 탓으로만 돌리는 오류를 반복해 왔다. 이번 사태의 원인도 이 대통령에게서만 찾으면 마음은 편해질지 몰라도, ‘영혼 없는 공직자’라고 하는 사실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일찍이 현진건은 일제 강점기의 한국을 ‘술 권하는 사회’라고 했지만, 오늘의 한국은 ‘아첨 권하는 사회’다. 현진건은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라며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고 했다. 지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첨을 거부할 정도로 정신이 바로 박힌 공직자는 살아남을 순 있을망정 공직 서열의 높은 곳에 오르긴 어렵다.

이걸 드라마틱하게 입증해 보이고 있는 것이 최근 현 정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물갈이 독재’와 ‘공직의 이권화’다. “당신 노무현 때 임명됐지? 무조건 옷 벗어! 당신은 지난 대선 때 무슨 일 했지? 그 정도면 이거 먹어!” 줄서기와 줄대기의 기본 정신이라 할 아첨을 창궐케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 정권이 정도가 심할 뿐, 이건 역대 정권이 모두 해온 일이다. 그간 우리는 각자의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반응함으로써 이런 관행과 풍토를 지속시키는 데 일조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아첨’을 ‘코드’로 착각하거나 정당화해 온 것이다.

헌법 이전에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을 숙성시키는 기존 관행과 풍토가 문제다. 줄서기와 줄대기로 고위 공직을 차지한 사람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대통령은 인사권으로 대통령 권력의 위대함을 만끽하지만, 바로 그게 자해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공직자들에게 영혼을 돌려주지 않으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늘 필패할 수밖에 없다. ‘영혼 있는 공직자’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은 많다. 이걸 실현하기 위해 애를 써보자. 이게 촛불시위의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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