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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8 21:17 수정 : 2008.07.08 16:02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칼럼

독자의 충성도가 높은 신문일수록 ‘포로 저널리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포로 저널리즘’이란 신문이 독자의 포로가 되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지 못한 채 그간 해온 대로 ‘관성’에 끌려다니는 저널리즘을 말한다. ‘포로 저널리즘’에 빠진 신문의 특성은 모든 기사·논평의 방향·논조가 예측 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해 ‘뻔하다’는 것이다.

특정 당파성을 갖고 있는 신문의 경우 ‘내부 성찰’이 쉽지 않다. 우리 편에 큰 문제가 있어서 반대편이 재미를 보더라도, 우리 편을 건드리는 건 금기다. 열성 독자들이 “나쁜 놈들 놔두고 왜 우리 편만 건드려 분란을 조장하느냐”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편은 못 건드리고, 반대편에 대해서만 비판을 집중한다. 우리 편은 계속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더라도 반대편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면 되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 효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나라가 잘되긴 어렵다.

나는 그간, <한겨레>에 불만을 토로하며 “신문 끊겠다”고 말하거나 실제로 그 말을 이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죄송하지만, 내가 한심하다고 비웃는 분들이다. 불만의 이유가 각기 다르거니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어떤 분들은 한겨레가 노 정권을 비판한다고 욕하고, 또 어떤 분들은 한겨레가 ‘노빠 신문’이라고 욕했다. 어쩌란 말인가? 한겨레로선 죽을 맛이겠지만, 뾰족한 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어정쩡하게 중간에 서는 수밖에.

오랜만에 한겨레 지면에서 뻔하지 않은 기사 하나를 발견해 반가웠다. 지난 13일치에 실린 영어 공교육에 관한 기사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이범 <교육방송> 강사가 충돌했다. 두 분의 말씀을 발췌·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호기: “지난 총선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진보신당의 영어교육 공약이었다. 어떻게 보면, 세계화시대에 진보세력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에서 반갑기도 하지만, 굉장히 서글픈 측면도 있다. 얼마나 우리 사회가 영어에 열광하면 진보신당조차도 이런 정책을 만들까. 다른 정당하고 큰 차이도 없는 정책들이라서.”

이범: “나는 서글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몇십년이 지나도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의 틀은 크게 안 바뀐다. 내수시장은 작고, 대외의존도는 높은 경제구조에서 결국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나가려면 영어 안 하면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진보진영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호기: “내가 서글프다는 것은 일종의 모방 정책이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으로서 확고한 자기 철학에 근거해서 제시한 게 아니지 않나.”

이범: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값비싼 영어 사교육을 하자는 게 아니다.”

영어 공교육 문제를 논하기 위해 소개한 게 아니다. 이런 종류의 논쟁이 수백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도, 그간 한겨레는 ‘창간 20돌 기념’이라든가 하는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그런 문제들을 상례적으로 다루진 않았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다. ‘창간 20돌’은 이젠 한겨레가 뻔한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걸 경고하는 시점이다.

위 논쟁에서 김 교수가 말한 ‘서글픔’의 정체는 그간 개혁·진보진영이 ‘장기 의제’와 ‘단기 의제’를 구분하고 조정하는 일을 해왔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단기 의제’에선 보수·진보의 차이가 무의미한데도, ‘단기 의제’마저 ‘장기 의제’에 종속시키는 과오를 범해온 건 아닌가? 한겨레가 이런 문제에 적극 답하는 시도를 하면서 ‘포로 저널리즘’의 틀을 슬기롭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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