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말하자
|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소설가 공지영의 ‘자기 인터뷰’,연일 무거운 일들 사이로 가벼운 이야기를 하느라 무진장 힘들었다오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는 작가의 한 사람인 공지영씨께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수락했거나 거절했거나 답변하다가 답답증을 느꼈을 다른 이의 질문이 아닌 작가 자신의 물음과 대답을 요청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인터뷰!’ 작가의 얼굴을 새로운 방향에서 볼 수 있는 이 이색 인터뷰를 독자뿐 아니라 공지영씨도 즐기셨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공: 이렇게 인터뷰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지영: 담당기자인 김은형씨가 제의했다. 그동안 워낙 마감에 촉박해서야 주는 원고에 그가 고생이 심했으므로 보은 차원에서 그 제의에 응하기로 했다. 이런 건 생전 처음 해 보는데 이 나이에 처음 해 보는 건 마약이나 범죄가 아니면 웬만하면 다 해 보자는 평소의 지론이 나로 하여금 선뜻 응하게 했다. 가볍자 선언하니 미국산 쇠고기에, 촛불 정국에
공: 막상 하니까 어떤가? 지영: 인터뷰를 당할 때(?)면 가끔은 좀 지겨워서 뭐 저런 걸 묻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하면 신선한 걸로 잘할 것 같았는데 나 역시 내 자신에게 진부한 질문밖에 할 게 없다. 역시 인터뷰어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진부한 것 같다. 공:그렇다니 다행이다. 부담이 없다. 가장 진부한 것으로 시작하자. 요즘 근황은? 지영: 아시다시피 거의 죽어가고 있다. <한겨레> 원고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포털 사이트 다음에 소설 연재까지 시작한데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나를 못살게 군다. 지난주말에는 마감을 앞두고 눈 딱 감고 사흘을 펑펑 앓아누웠다. 누워서 앓으면서 평생 처음 이제 다이어트고 뭐고 그저 건강을 위해서 잘먹고 운동을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운동하자는 결론은 이십대부터 수차 내린 것이긴 하다. 처음 했다는 생각이란 앞에 붙는 조건절이다. 공: 나중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별로 물어볼 말도 없으니 한겨레 원고를 끝내는 소감을 들어 보자! 지영: 처음에 ‘아주 가벼운 깃털’이라고 의기양양 시작했는데 재수가 없는지 내가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촛불시위 과격 진압에, 대운하 …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신문이 무겁게 도배되었다. 이 장면에서 하고 싶은 무거운 말을 꾹 참고 가벼운 이야기를 하느라 자신과 싸우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격려하는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 분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중간에 어떤 선배가 전화를 해서 “네가 언제까지 가볍게 쓰나 보자 했는데 장하다”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때 내가 나 자신과 싸운 것이 헛되지 않구나 생각했다. 12월에 이사도 했고(그는 12년 만에 고향 서울로 돌아왔다), 연재소설도 시작했고, 한겨레 연재까지 있어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나, 회의하는 나날이 많았다. 안도현씨가 무슨 편집부에 뇌물을 주었는지 나하고 상의도 안 하고 먼저 연재를 끝내는 것을 보고 화를 벌컥 내니까 친구들이 묻더라. 같은 돈 받고 안도현씨가 먼저 연재를 끝내는 것이냐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화를 풀었다. 아무튼 어서 끝내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막상 끝내려니까 왜 이렇게 못한 말이 많은지. 한겨레출판에서 펴낼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에 보충을 할 생각이다. 기대는 하시지 말기 바란다. 항상 글을 끝낼 때 드는 생각인데 참 즐거웠다. 왜 글을 쓸 당시에는 괴롭다가 끝날 때가 되면 즐거웠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공: 무엇을 물어주었으면 하나? 지영:왜 내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보지 않는지 궁금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종대왕과 119 대원을 쭉 존경해 왔고, 요새는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사회복지사들이다. 이유는 너무 기니까 다음에 말하기로 하자. 특히 멀리서만 존경하던 119 대원님 중 지난여름 제주도에서 우리 막내와 나를 서귀포 병원에 데려다 주고 주스 한 병 안 받으신 그분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공: 그럼 싫어하는 사람은? 지영:누구라고 꼭 집어 예를 들면 좀 너무하니까 부류를 들어 설명을 하면 이렇다. 아무것도 안 하고 푸념만 하고 있는 사람, 멋 안 내는 사람, 위선이 뭔지도 몰라 못 떠는 사람, 공손하게 존댓말하는 나에게 불친절하고 반말 찍찍 하는 아저씨들에게 굽실거리는 종업원들, 요즘엔 특히나 제가 해야 하는 말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 예를 들면, 일전에 우리 애가 학교에서 다른 애에게 맞아서 병원에 갔는데 그 애 엄마가 왔다. 우리 아이가 검사를 받는 동안 그 엄마가 내게 와서 하는 말이 “남자 애들 크다 보면 싸울 수도 있으니 너무 맘 상하지 마세요!” 이러는 거다. 맞다. 하지만 그건 그 자리에서 내가 하면 멋있는 말이지만 자기가 할 말은 아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어려울 때 실직한 가장을 위로해 주는 가족이 중요하다. 그러면 그 가장은 다시 일어난다” 뭐 이런 말을 하더라. 맞다. 그런데 그건 이웃이 해 줄 말이지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선거에서 당선되고 나서 일자리 없앤 그 장본인이 할 말이 아닌 거다.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결국 이 이야기다. 그것이 결국 악의 본질과도 상통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보면 내가 운동을 못한다. 먹기는 한다. 그리고 마시는 것도 많이 하게 된다. 돈 많이 들고 건강은 더 나빠진다. 에잇!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안 궁금해? 공: 너무 흥분하는 것 같다. <한겨레>의 이 에세이를 보고 공지영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한 열 명?) 어떻게 생각하나? 지영: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평생 많이 듣는다. 실은 나는 술자리나 차를 마실 때나 사람들을 많이 웃기기 잘하는 사람인데(음~~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나를 너무 근엄하게 본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 부작용인지 술을 마시자는 사람이 너무 많다. 혼자 마시기도 바쁘고, 딸하고도 가끔 마셔줘야 하는데 힘이 든다. 게다가 생신을 앞둔 우리 아버지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 아버지는 내게 중학교 때부터 술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니 어쩔 수도 없다. 이 기회를 빌려 말씀드리는데 나보고 자꾸 술 한번 마시자고 하시지 말기 바란다. 물론 조용히 택배로 술을 보내주시는 분은 고맙겠다. 꼭 곁에 두고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공: 공지영씨의 친구들 이야기를 보고 부럽다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 복이 많은가? 지영: 나는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했고 (나는 내가 69명을 왕따시켰다고 주장한다) 친구래야 한둘밖에 없어서 친구 복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시절에는 내게 조금이라도 수상한(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고 갸륵한) 행동을 하는 남자들은 친구에서 제외시키고 나니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친구가 불어나기 시작해서 드디어 친구 복이 많은 사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남자친구들의 수가 많아진 때문이고,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내 여성성이 현저히 사라진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지리산의 두 친구는 언제나 내 맘속의 화로처럼 따뜻한 이들이다. 그리고 28년째 된 남자 친구들, 20년 된 친구들, 15년쯤 된 친구들 … ‘소중한 존재들’ … 여자친구들은 오래된 사인데 요즘은 나를 피한다. 유명해지고 나니까 피곤하단다. 약속시간 나 때문에 맞추기 힘들다고 말이다. 그래도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받은 것이 훨씬 많았다. 정말 인생에서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도 과분하다. 공:더 할 말이 많겠지만 다행히도 지면이 모자란다. 마지막으로 한겨레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영: 약간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에세이 연재는 나로서는 처음이었고 또 정말 많은 분들의 격려를 받았다. 이 시대의 작가로서 나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마감 다 되어서 준 원고 재밌게 그림 그려준 이민혜씨, 제시간에 오지 않는 내 원고 기다리느라 데이트 약속도 많이 어겼을 텐데, 그 남자친구에게도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