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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5 18:36 수정 : 2008.10.07 09:48

김용택의 강가에서 (21) 오른팔의 고통


오른팔이 아픈데 침은 왼쪽에
외곽을 쳐서 중심을 울린다나

나뭇잎들도 해갈이를 하는데
좌니, 우니…정말 식상하네요

오른팔 팔꿈치 바로 위 바깥쪽 근육이 어찌나 저리고 아리고 아프던지 자다가 깨어 고개를 방바닥에 처박고 파랗게 질려 으으으으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은데 또 어떻게 하면 눈앞이 캄캄하게 통증이 와서 입을 악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문득 ‘오른팔, 하면 우익이잖아’ 했습니다. 그러고는 혼자 ‘참 지독하다’ 했지요.

올해는 ‘우편향’ ‘우파’ ‘우익’ ‘보수’ ‘좌편향’ ‘좌파’ ‘좌익’ ‘진보’라는 말들이 유독 많이 회자되네요. 거기다가 또 ‘중도 우파’ ‘중도 좌파’라는 말까지 보태졌지요. 진즉 용도폐기되었어야 할 낡은 말들이 아직도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분단시대를 사는 아픔이 가슴을 쓰리게 합니다. 그런 말들이 귀신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면, 그러면 나는 무슨 ‘익·파·수·보’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무슨 ‘익’, 즉 무슨 ‘파’이기엔 너무 우유부단하고, 또 무책임하고, 무슨 ‘파’이기를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나는 생태적으로 비조직적인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작은 마을에 오래 사는 일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정말이지 ‘파’를 고집하기가 어렵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보아야 할 얼굴들인데 ‘척’을 지고 살기가 어렵거든요. ‘파’가 적이 될 때가 있잖아요.

아무튼, 나는 오른쪽 팔목이 너무나 아파서 며칠 침을 맞고 찜질을 하고, 부황을 뜨고, 전기와 물리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른쪽이 아픈데 이건 또 뭔 일이여! 침은 왼쪽에다가 놓더라고요. 아니, 오른쪽이 아프면 오른쪽에다가 침을 놓아야지 왜 왼쪽이냐고 의사에게 물었더니, 신체의 ‘조직’(또, 그 조직)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곽을 쳐서 중심을 울린다나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을 담당한 분들이 곁에 두고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국익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국익이란 말은 어쩐지 백성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자기들만의 이익’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그분들은 늘 나라가 어렵다고 하면서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듯 유난스럽게 국익을 찾아 쥐지요. 그러면서 늘 위기라고 말하였고, 난국이라고 말하지요. 제 나이 이순인데 여태까지 경제가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난국이 아닐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발 우리도 한번 난국 없이 편안한 나날을 ‘지내고’ 싶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도 아주 불안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합니다. 버리고 싶은 역사가 있겠지요. 그러나 버릴 역사는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가며 역사는 바로 세워지겠지요. 생각이 다르다고 제발 적군을 대하듯 그러지들 좀 마세요.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정권이 전 정권을 잃어버린 몇 년이라고 하며 역사 지우기에 열중하겠지요. 그러고는 또 그 몇 년을 벌충하기 위해 부산한 ‘난국’이 되겠지요. 제발 우리도 좀 살게요. 인간답게 생각하고 인간답게 행동하며 좀 살게요. 좀 그러게요.


아무튼, 나는 오른쪽 팔이 아파서 며칠 글도 일기도 안 쓰고 빈둥거렸지요. 메일을 볼 때도 왼손 손가락으로 클릭을 했습니다. 글도 쓸 수 없는 팔을 내려다보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주 소박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 그동안 내가 너무 오른쪽 손에 무리를 했구나. 그래서 오른쪽 손을 쉬게 하려고 이렇게 아픈 것이구나, 그냥 편히 놀게 해야겠구나, 했지요. 무리하면 늘 어딘가 고장이 나는 것이 몸입니다. 어디 몸만 그러겠습니까. 세상사가 다 그렇지요. 무리한다는 말은 지나치다는 말일 텐데, 모든 문제는 지나칠 때 발생합니다. 지나치다는 말은 자기만을, 또는 자기 ‘파’만을 생각한다는 이기적인 말이지요. 오른손을 쉬면서 왼손을 생각했습니다. 손이 두 갠 게 여간 다행이 아니고, 신체 조직의 각 부분들이 정말 절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너무 진부한가요?

손이 아픈 김에 오늘은 시골에서 전주엘 갔지요. 모악산이 있는 구이라는 곳을 지나면 전주의 신시가지가 보여요. 신시가지라는 게 모두 아파트 단지지요. 근데, 놀라운 것은 며칠 만에 전주를 가도 아파트 숲이 너무 낯선 것 있지요. 산보다 높은 아파트들이 솟아 있는 도시를 보면 정말 딴 세상처럼 느껴졌어요. 시골은 눈뜨면 푸른 산과 작은 들과 강이지요. 들리느니, 물소리 새소리입니다. 꽃이 피고 지고 그렇게 봄이 가고, 잠잠하고 조용한 것 같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자연의 변화에 몸을 실으면 정신없이 세월이 가지요. 계절의 진행은 가히 혁명적입니다. 순간순간 상황이 거듭 눈이 부시게 변해가요. 여기저기 이곳저곳 사방팔방 눈 가고 귀 여는 곳마다 ‘자연의 반성’은 숨이 막히게 변화와 자기 혁신을 불러옵니다. 모들이 자라는 봄, 그리고 털린 벼들이 널리는 가을까지, 늘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어 가며 또다른 생명의 질서를 탄생시킵니다. 자연만이 자연을 낳는 혁명의 혁혁함을 자랑하지요.

김용택의 강가에서
우리들은 지금 자연친화적이라는 말이나 생태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그냥 두면 저절로 그게 생태공원인데, 가만히 있는 자연을 돈을 들여 생태계를 파괴하여 공원으로 개발을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씁니다. 바다도 죽여서 생태공원을 만들고 강과 산과 들을 부수고 파괴해서 생태공원을 조성합니다. 전국을 돌아다녀 보면 전 국토가 지금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토는 지금 왼손 오른손이 아니라 온몸이 몸살이 나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죽이는 일은 동시에 자기를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삽니다. 살벌한 우리들의 일상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워졌는데요. 사람만이 희망이라고들 말하지 마세요. 이 땅은 사람만 사는 게 아니니까요. 나는 이따금 사람이 없는 지구를 상상하곤 합니다. 저 산의 나무 한 그루, 길가의 강아지 풀잎 하나, 창공을 나는 새 한 마리, 배춧잎에 붙은 벌레 한 마리가 다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닭이 울고,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농부들이 모를 내고 거두는 일이, 우리들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일이지요. 해가 질 때면 산그늘을 밟고 강길을 걷습니다. 서쪽 강 언덕에는 눈이 부신 억새들이 하얀 손이 되어 우릴 부릅니다. 샛노란 벼들이 익어가는 저문 들녘의 발광하는 가을 햇살을 봅니다. 오! 눈이 부신 빛이여! 눈을 감습니다. 온몸이 붕 떠오릅니다.

오늘은 새벽 논길 강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둘이 마주앉아 아침밥을 먹습니다. 어머니께서 손이 좀 우선하냐고 묻습니다. 뭐든 몰아붙이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쉬엄쉬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팔이 아플 때 왼팔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한 팔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아파버리면 다른 한 팔이 무사할 리 없지요. 두 팔이 다 아파 두 팔을 다 못 쓰면 그땐 어떡합니까. 좌니 우니 하는 말들이 정말 싫습니다. 정말 식상해요. 낡았어요. 좌우를 가를 것이 있고 온몸을 생각할 것이 우리에겐 왜 없습니까. 감도 해를 갈아가며 열고, 나뭇잎들도 해갈이를 합니다.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지요. 세상에는 늘 그때가 있음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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