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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23 19:47 수정 : 2008.11.23 19:47

장정수 편집인

장정수칼럼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말할 경우 미국인들은 대개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3인을 꼽는다. 조지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로,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분열을 막고 흑인노예 해방을 단행한 지도자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의 참화로부터 미국을 회생시키고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는 등 현대 미국의 뼈대를 구축한 대통령으로서, 각각 미국인들 사이에서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누가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냐고 물을 경우 미국인들은 링컨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링컨이 노예문제를 둘러싼 극한 대립 속에서 두 개의 국가로 찢어질 위기에 있었던 미국의 분열을 막았기 때문이다. 링컨이 없었다면 현재 미국은 한국처럼 남북의 두 나라로 분단됐을지도 모른다.

링컨은 노예문제를 이유로 미합중국에서 분리해나간 남부가 무력 도발을 일으키자 이에 대응해 전쟁에 돌입했다. 남북전쟁 초기에 북군은 패퇴를 거듭하면서 열세에 있었으나 결국 승리했다. 링컨의 승리는 전임자인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민주당)이 퇴임 전에 검찰총장에 임명한 에드워드 스탠튼을 전쟁장관(지금의 국방장관)에 임명한 데 힘입은 바 컸다. 스탠튼은 거물 변호사 출신으로 링컨이 오하이오주의 애송이 변호사 시절 ‘켄터키 촌놈’이라고 멸시한 바 있었다. 스탠튼은 검찰총장으로 있으면서도 링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개인적 앙금을 접고 검찰총장으로서 탁월한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을 과시한 스탠튼의 역량을 높이 샀다. 전쟁장관에 파격적으로 발탁된 스탠튼은 링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방만하게 운영되던 군부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군을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남북전쟁을 승리로 끝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에 앞서 링컨은 취임 초에도 186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직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윌리엄 슈어드, 새먼 체이스 등 정적들을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에 각각 임명했다.

버락 오바마 당선자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기용설이 나온 이후 링컨 대통령의 용인술이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오바마가 대선 경선 때 격렬하게 싸웠던 힐러리를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지휘하는 국무장관에 발탁하려는 모습이 링컨의 파격적인 용인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힐러리 국무장관 기용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링컨의 라이벌 내각은 부작용이 많았다. 국무회의에서 코드가 맞지 않는 이들은 충돌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힐러리 국무장관 카드에 대한 비판론이 만만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통합의 정치 구현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가 정권인수팀에 공화당 인사들을 중하위 정부직에도 폭넓게 기용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하고 있다. 오바마의 통합 정치가 순항할지 주목된다.

오바마의 파격적인 정적 중용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고·소·영’ 정치가 뇌리를 무겁게 억누른다. 현재 집권세력 내부에서는 대통령과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면, 같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또 같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결코 대통령과 국정을 같이 논할 수 없다는 자조가 만연돼 있다. 대선 후보 경선 때의 라이벌은 철저히 국정 운영에서 배제돼 있다. 또 전직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는 뒷조사가 집요하게 진행돼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고 있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도 오바마처럼 시원하고 통큰 통합의 정치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장정수 편집인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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