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31 20:12
수정 : 2008.08.3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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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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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칼럼
미국과 러시아의 정면 대립을 초래한 그루지야 전쟁은 외형적으로는 친미 국가인 그루지야가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를 무력침공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네오콘이 개입한 흔적이 엿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그루지야의 침공 계획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반면, 네오콘과 그루지야 정부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의 미국인 친구이자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수석 외교고문인 랜디 슈너먼은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주장했던 호전적 네오콘으로서 그루지야 정부의 공식 로비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푸틴 러시아 총리가 주장했듯이 네오콘은 미국 대선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매케인 후보가 판세를 반전시킬 환경을 조성하고자 그루지야 전쟁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동기는 미국 군산복합체제의 유지에 필요한 새로운 무기시장의 창출에 있다. 냉전 종식 이후 급격한 첨단무기 매출 감소로 경영 압박에 직면한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새로운 적을 찾아내 무기 수요를 만들고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이후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한 네오콘은 처음에는 중국을 새로운 적으로 설정했다. 다음에 찾아낸 적은 북한이었다. 북핵 문제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네오콘과 군산복합체는 네오콘이 전쟁위험을 부추겨 무기 수요를 만들어내고 군산복합체는 네오콘들에게 일자리와 거액의 프로젝트를 공급하는 먹이사슬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이라크 전쟁의 특수가 시들해지면서 네오콘은 동유럽 국가의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사일 방어체제는 지금까지 1천억 달러 이상의 개발비용이 투자됐으며 앞으로도 수천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예상되는 등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폴란드와 체코가 목표물이었다. 하지만 명분이 약했다. 이란으로부터 미사일 공격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이라는 명분은 이란이 그러한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무색해졌다. 러시아가 자신들에 대한 공격용 미사일 배치라고 강력히 반발하자 폴란드가 망설였다. 그러나 그루지야 전쟁은 명분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함으로써 러시아의 위협이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요격용 미사일 10기의 배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헤게모니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됐다. 미국은 앞으로 세계질서의 유지에서 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영향력을 분점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적대관계에 따라 이란의 핵개발 문제와 같은 중동 문제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이란의 핵개발 저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는 중동 정세가 앞으로 극도로 불안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도 한층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영향력 퇴조는 중국·일본·러시아·북한 등 동북아 지역에서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국들의 각개약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의 경우 러시아 봉쇄에 몰두하는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심각한 안보 딜레마를 제기할 것이다. 특히 한-미 동맹 강화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은 다극 체제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재편에 신속하게 적응하지 않을 경우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장정수 편집인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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