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18 21:19
수정 : 2008.05.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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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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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칼럼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임기 말이 되면 예외 없이 민심 이반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집권 기간 동안 누적된 국민적 불만이 임기 말의 권력 누수와 맞물려 터져나와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집권 초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취임 석 달도 안 돼 20%대로 곤두박질친 이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가 장기화할 경우 정상적인 국정수행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기는 복합적인 배경을 갖고 있지만 일차적으로 신뢰의 위기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자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이 대통령을 선택했던 유권자들은 인수위 시절의 설익은 정책 남발과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 등으로 야유되는 이 대통령의 각료 인선을 보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청계천 촛불시위는 바로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폭발이다. 국민들은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안중에 없고 미국 축산업자만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이 대통령의 ‘사대주의적 실용주의’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당의 고위 인사들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의 측근들로 분류되는 인물들까지 그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시한다. 총선 공천이 끝난 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공개적으로 배신감을 토로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 구성 문제에서도 이 대통령은 당내 인사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말 바꾸기가 계속될 경우 이 대통령은 여권 내부에서조차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신뢰 상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잘못된 진단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이 대통령이 15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현재의 위기를 소통의 문제로 파악한 것은 민심 이반의 진단과 처방에서 여전히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국민과의 소통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입장을 강요하는 일방적 소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성이 결여된 일방적 소통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고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현 위기는 본질적으로 이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국정 난맥의 저변에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 부재는 청와대 보좌진 및 내각 인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청와대와 내각에는 실무 경험이 부족한 학자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 보니 작은 문제를 키워서 위기로 확대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대통령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한-미 쇠고기 협상 파동 등 일련의 국정 난맥상에 책임이 있는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져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진영의 정치적 주술에서 자신을 해방하는 인식의 대전환도 시급하다. 이 대통령이 되돌아갈 수 없는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려고 할 경우 청계천 촛불시위와 같은 거센 국민적 저항을 부를 것이다. 국민적 신뢰의 회복은 이런 허위의식의 청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도자가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장정수 편집인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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