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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3 19:19 수정 : 2011.02.13 19:23

김형태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영화가 많은 이를 울렸다. 가난과 질병,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수단. 거기서 아이들 가르치고 아픈 사람 치료하던 이태석 신부가 암으로 세상을 떴다. 아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당신 종을 어찌 그리도 빨리 데려가셨나. 노인 신부는 하느님의 신비라 했지만 자신도 이해가 안 돼 그냥 한번 해본 소리지 싶다. 사실 그 답은 이미 이 신부가 부른 노래 속에 들어 있다. 그는 이 부조리하고 앞뒤 안 맞는 고통의 세상을 만드신 당신은 누구냐고 대들다가 그분은 바로 ‘사랑’이라며 스스로 답을 찾는다. 생각해보면 ‘신’이나 ‘하느님’처럼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말도 없다. ‘하느님’이라 부르는 순간 그 말 자체로 어떤 ‘사물’ 또는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한계 때문에 신을 인간의 특성을 가진 이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암에 걸린 이 신부를 살려달라 기도하면 살려주고, 내 자식 합격하게 해달라 빌면 합격시켜주고. 신이 우리 인간 같다면 왜 안 그러겠는가. 내 말 잘 듣고 충성을 바치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겠는가.

‘신’이란 말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도 무섭고 호시탐탐 잡아먹으려 노리는 맹수도 무섭던,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가던 저 먼 옛날, 우리를 구해주고 위로해줄 대상을 찾던 때의 산물이다. ‘존재’나 ‘인격’을 떠올리게 하는 ‘하느님’이란 용어 말고 차라리 노자처럼 ‘도’(道)라 부르면 어떨까, 아니면 이 신부의 깨달음처럼 ‘사랑’이라 부르면 어떨까. ‘하느님’ 하고 불러놓고 나면 “뭐 해주세요, 뭐 해주세요” 요구사항이 많겠다. 하지만 ‘사랑’이나 ‘도’를 향해서는 요구사항은 쏙 들어가고 그저 나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 하염없이 베풀게 될 터다. 그리되면 수백만마리의 소·돼지들을 생매장하는 패악도 차마 저지르기 어려울 게다.

지난 1월 대법원 제3부는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국가가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금 중 180억원을 다시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아무개는 1974년 5월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었다. 한 달 먼저 체포되었더라면 다른 8명과 마찬가지로 사형을 당했을 거였다. 한 달의 도피기간 동안 중정은 그의 처, 대학 다니던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잡아다가 그의 행방을 대라고 혹독한 고문을 했다. 아들과 딸은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학교도 못 다니고, 수시로 자해를 해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따라다녔다. 너무나 힘들어서 동네 파출소 유치장에 하루만 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애걸한 적도 있었다. 결국 아들은 행려병자로, 딸은 정신병원에서 고통스런 삶을 마쳤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9년여 만에 출소했으나 평생을 친지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았다. 지난해 민사 1·2심은 국가에 위자료 10억원과, 무기징역을 선고한 1975년부터 그 뒤 35년간 연 5푼의 이자 18억원, 도합 2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그중 18억원이 우선 지급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배상금이 많다며 1·2심 판결을 뒤엎고 이자를 2010년부터 주라고 했다. 그 결과 총 배상액은 10억원. 평생 못 번 돈만 해도 10억원은 더 됐을 거다. 만일 대법관 자신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땠을까? 혹독한 고문을 받고 동료들이 사형당하고 자신은 무기징역을 살다 9년 만에 풀려나 평생을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자식 둘은 20여년 세월 미쳐 다니다가 죽었다면 얼마를 배상하라고 요구했을까. 불법행위 시점부터 지연이자를 가산하는 것은 불변의 법원칙이다. 그는 선지급받은 돈으로 평생 도와준 은인들 신세도 갚고, 좋은 데 기부도 하고 평생 처음 집 한 채도 샀다. 그런데 국가는 스스로 준 배상금 중 8억원을 다시 토해 내란다. 대법원 판결에 의해 두 번 죽었다.

신은 그에게 평생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걸까. ‘신’이라 부르면 이런 절규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이태석 신부처럼 그저 ‘사랑’이라 부르면 이 절규는 사라지고 하냥 사랑을 베풀 일만 남는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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