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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4 21:38 수정 : 2010.10.28 14:56

김형태 변호사

추석 전날,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수락산에 올랐다. 중턱에 김시습 시비가 있었다. 그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는 걸 보고 중이 되어 산천을 떠돌다 수락에도 머물렀다. 그의 시를 읽고 있는데 천지가 폭우로 뒤덮여 별수 없이 산을 내려왔다. 하릴없어 낮부터 이어진 술자리는 결국 추석날 새벽 집 앞 땅바닥에 넘어지는 걸로 끝이 났다. 차례 지내는데 눈 아래 뺨의 피부가 뻘겋게 벗겨져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이 바글대는 버스정류장에서 포옹을 하고 있는 젊은 연인을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난다. ‘너희들도 한 10년 지나 봐라. 지금은 서로 좋아 죽고 못 살지만 저 녀석도 저 마누라 집에 놔두고 밖에서 술 마시느라 아무 생각 없을 테니.’ 나나 저 사내녀석의 행적을 쇼펜하우어는 정확히 꼬집어 낸다. 사랑이란 인류의 종족 유지를 위해 성욕 본능이 특수화되고 개체화된 것일 뿐이라고. 무서운 사랑의 열정도 결합이 끝나면 곧 소멸되고 만다. 진화생물학자 도킨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세상 유일의 존재자는 어떤 특정 목적도 가지지 않은 채 인간 같은 생물체를 이용해서 스스로를 영속시키는 유전자라는 거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하는 행동은 크게 보면 딱 두 가지다. 다른 것을 먹어 에너지를 얻고, 번식을 통해 자신을 계승시키려 한다. 내 자유의지로 이 일들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종족 유지 본능이나 유전자가 나라는 개체를 잠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두 사람 생각이다. 한창 사랑에 빠지고 열정이 넘치는 젊음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노인들 잠꼬대로 들릴 게고 또 그래야 씩씩하게 인류사회가 지속될 게다.

하지만 높은 산, 아니 도봉산에만 올라도 저 아래 땅을 까맣게 덮고 있는 아파트며 건물들을 보면 징그럽고 무섭기까지 하다. 인간은 그저 지구의 기생충일 뿐이란 생각도 든다. 다른 모든 유정·무정물들을 내몰아 버리고 저렇게 그악스럽게 땅을 뒤덮어 버릴 수가 있는 걸까. 저 수많은 집들 속의 저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시집·장가가고 애 낳고 좋은 학교 보내고 잘 먹고 잘 살려고 할 테니, 이게 감당이 되는 일이긴 한 건가.

어디 땅만 그런 게 아니다. 수억년 흘러온 강들도 온통 바닥까지 파헤쳐지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제발 그리 말아 달라고 탄원하고 애소하고 아우성쳐도 꿈쩍도 않고 오늘도 공사는 계속된다. 대통령 임기 안에,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정도까지 공사를 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만이 저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강은 강 스스로의 것이요, 미래 후손들도 기대어 살 생명줄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대통령 개인의 의지 하나로 저리하는 걸 보며 절망한다. 하지만 사실 곰곰 생각해보면 이게 대통령 한사람 뜻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든 뉴타운이며 재개발이며 아파트 분양받고 그 집값 오르고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면 좋은 대통령이라고 다들 밀어준 결과다.

한 개인은 그저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은 헤겔도 비슷하다. 그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건 개개인이 아니라 ‘세계정신’이라 했다. 역사상 위인들도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세계정신이 그를 이용한 것뿐이다. 저 큰 강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시대정신’은 돈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벌게 해주는 효율이다. 이 시대정신은 국민들 개개인을 사로잡아 ‘돈과 효율’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뽑고 총리, 장관 자리에 앉힌다. 강을 그대로 두라고 앞장서서 외치는 이들은 꼭 한번 와서 보라고 한다. 와서 보면 ‘아 내가 잘못했구나. 돈이 전부는 아니구나’ 몸으로 느끼게 된다.

공자님은 작은 다리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 돈과 효율이라는 시대정신이 온통 우리를 꼭두각시로 놀아나게 했지만 이것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리. 그리고 이웃과 자연과의 상생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흘러오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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