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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26 17:51 수정 : 2010.09.26 17:51

김형태 변호사

공자님은 나이 오십에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늘 뜻을 알겠노라 하셨다. 하지만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럴 게다. 이십대에 이미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하늘 뜻을 알았노라고. 그런데 정작 오십대가 되니 어디 그런가. 내가 아직 멀었구나, 아니, 앞으로도 하늘 뜻을 알기는 글렀구나.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는 양아버지에 의해 눈이 멀어서 받은 고통으로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른다. 원작을 쓴 이청준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소설에서도 비슷한 주제와 구성을 보여준다. 외국유학을 앞둔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이상이 오기 시작해 결국에는 처도, 교사 자리도 다 잃고 서울역 앞 길바닥에서 장님들과 구걸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그의 소설 <눈길>은 가난이란 배경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큰아들 빚 때문에 산골 오두막집마저 날리게 된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마지막으로 그 집에 재운 뒤 이른 새벽 서울로 보내고 되돌아오는 길은 이랬다. “눈발이 그친 그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구나 …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만 싶었제 … 오목오목 들여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문학이며 그림, 음악이 모두 가난이나 이별, 전쟁, 죽음의 고통 속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배부르고, 등 따습고, 누릴 게 널린 요즈음은 삶이나 하늘 깊은 뜻을 알기는 틀렸다. 돈, 명예, 권력, 지식은 물론이요, 도덕이나 종교적 확신도 종종 사람들을 유치한 어린애로 남게 한다.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으로 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셨다. 고타마 부처님도 평생을 길에서 탁발하셨다.

전세계가 자본주의로 덮여 있는 세상에서 스승님들 뜻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가난이며 탁발이 삶의 깊은 뜻을 알게 하는 길이라 해도 이 세속에서 과연 그것이 타당하기나 한 걸까. 그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 같은 이는 아주 특이하다. 세속 자본주의 경제를 개신교 칼뱅주의와 연결시킨 점에서 그렇다. 칼뱅은 구원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했다. 루터처럼 오직 믿음으로 구원되는 것도 아니고 가톨릭의 선한 행위에 의한 것도 아니라 한다. 우주 창조 때부터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아니라고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다.

사람들은 구원과 상관없이 그저 신이 부르신 바 자신의 직업을 열심히 수행할 뿐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돈을 많이 벌어 삶을 향락하는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수도원에서 하던 금욕주의 정신을 가지고 세속 직업에서 합리적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금욕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한 게 아니고 역사적으로 그랬다는 현실을 말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수익성을 지향하지 않는 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될 수 없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수익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속성상 끝없이 자연자원을 소비해야 하고 가능한 한 싼값에 사람의 노동을 공급받아야 하니 그러하다.

또한 과거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금욕주의를 바탕으로 출발하였다 해도 어디 사람의 본성이 그러할 리 없다. 들어온 돈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즐거움을 위해 한껏 쓰려 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그러니 다시 원점이다. 스승님들의 가난과 탁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저 마음으로만 하는 겉치레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얼마 전, 가난한 나라들이 상대적 비율에서는 자선과 기부를 부자 나라들보다 더 많이 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나라가 아닌 개인 차원에서도 없는 이들이 더 이웃에 마음을 쓰며 살아간다. 가난이며 질병, 이별의 고통은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한다.

요즘 청문회를 보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그리고 성직자들은 국민 평균 이하의 재산을 가진 이들로 자격을 제한하면 어떨까 하는 헛된 꿈을 꾸어본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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