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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29 21:21 수정 : 2010.08.29 21:21

김형태 변호사

엊그제 처한테 마음이 썰렁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 아는 선생님 한 분이 아들 교육에 지극정성이었다. 아들도 어머니가 짜준 인생 계획표에 잘 따라 주었다. 드디어 미국 명문대 학위를 따고 돌아온 아들이 이랬단다. “어머니, 이제 뭘 해야 되지요?”

자기를 책임질 능력이 없는 ‘잘난’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크게 자책을 했다. 중산층 동네 중고등학교에는 문제아들이 별로 없다. 잘사는 부모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렇게 살려면 일찌감치 반항을 접고 시키는 대로 사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을 내린 걸까? 아니면 부모의 압도적인 경제력·학력에 기가 눌려서일 수도 있겠다. 강남 학교에 가면 단정한 교복, 착실한 표정의 ‘범생이’들이 대개다. 반면 못난 부모를 둔 강북 아이들은 1960~70년대식 반항을 한다. 남자아이들은 바지통이 아래로 점점 좁아지는 쫄바지 같은 교복을 입고, 여자애들 교복치마는 무릎 위 몇십센티미터의 미니스커트다. 부모나 선생님 말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는 범생이는 왕따시킨다. 평상시 대화는 대개 욕으로 이루어져 있다.

60~70년대는 지금처럼 빈부차가 크지도 않았고 부모 학력도 대개 국졸이거나 기껏해야 중졸이었다. 아이들은 나름의 반항을 통해 숨을 쉬고 새로운 걸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돈 있는 집 자식들은 있어서, 없는 집 아이들은 없어서 새로운 걸 지향하는 반항은 엄두도 못 낸다. ‘현명한’ 강남 범생이들처럼 일찌감치 현실에 순응하거나, ‘멍청한’ 강북 아이들처럼 그저 친구들끼리 욕설이나 주고받을 뿐.

요즘 아이들이 범생이 혹은 쫄바지나 욕쟁이의 탈을 쓰기는 했으나 그 속에는 정반대 성향이 깊이 억눌려 있을 게다. 시인 황동규에 따르면 한용운과 김소월은 ‘버림받은 여인의 탈’을 썼다. 서정주는 ‘저주받은 시인의 탈’을 지나 ‘탈속(脫俗)의 탈’을, 모더니스트들은 ‘정신적 귀족주의의 탈’을 썼다. 반면 김수영은 ‘시적인 탈’을 거부했다. 재미있는 건 모든 탈을 거부한 김수영의 후배들이 결국은 ‘탈을 거부한 포즈를 가진 시인의 탈’을 쓰기도 한다는 거다.

선하고 악하다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기는 하다.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착한 아들이 그 처에게는 끔찍한 악몽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건과 관계는 서로 첩첩이 그물처럼 얽혀 있다.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일도양단으로 잘라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긴 하지만 그저 통속적 의미에서 선악을 나눈다면 많은 이들이 선과 악의 탈을 쓰고 살아간다. 친구 하나는 돈도 있고 과거 글 쓰는 직업이었는데도 거리에서 걸어가는 걸 보면 영락없는 노숙자다. 차림새며 표정에 행동거지가 모두 그렇다.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반은 욕설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순진한 어린아이 같다. 억지로 못된 척한다. 위악(僞惡)이다. 반면에 교회 열심히 다니고 거룩한 말과 몸가짐을 한 이들이 속은 시커멓고 제 잇속 차리는 데 선수인 경우도 많다. 착한 척, 위선이다.

나라로 치면, 미국은 다분히 위선적인 나라이고 북한은 위악적이라 할까. 미국은 지구촌 구석구석 민주주의와 자유의 깃발을 들고 군대를 보내지만 결국은 제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챙긴다. 미국의 군사개입과 경제봉쇄 때문에 죽어가는 건 그 나라 백성들이다. 북한은 미국이나 남한을 향해 몇백배의 보복이니 불바다니 호전적인 발언을 늘어놓지만 다분히 위악적이다.

정부는 쌀이 남아돌아 돼지사료로 줄지언정 북한에는 보낼 수 없단다. 적정재고는 72만t인데 현 재고는 그 두 배인 140만t이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26만t가량의 쌀을 북에 보냈다. 북은 굶주림을 면하고 남의 농민들은 쌀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장은 현재 북은 성인 하루 필요량의 절반인 200g만을 배급하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늘 굶고 있다. 쌀은 이념이 아니고 생명이다. 이명박 정부는 억지로 악한 척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착한 척, 쌀을 북에 보낼 일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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