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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01 22:26 수정 : 2010.08.01 22:26

김형태 변호사

시인 김춘수에게 꽃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고 의미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이름이라는 게 단순히 ‘라일락꽃, 동백꽃’ 하는 구체적 꽃이름을 뜻하는 건 아닐 게다. 실제로 그는 꽃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썼지만 그 꽃이 무슨 꽃인지 꽃이름을 댄 적은 드물다. 그래도 젊은 연인들은 그 시를 구절 그대로 연애시로 받아들인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마당에 봉숭아꽃이 한창이다. 지난봄 게으름을 피우다가 식목일, 어린이날 다 보내고 꽃씨 뿌릴 때를 놓쳤다. 꽃집에 가서 봉숭아 모종을 6000원 주고 30포기 사다 심었다. 닭똥을 거름으로 주고 나니 사나흘은 마당만 아니라 집 밖 골목까지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덕에 여름이 되자 봉숭아들 키가 두어 살짜리 아이만하다. 주홍색 꽃들이 끊임없이 피고 지어 마당이 풍성하다. 사람들이 저것에다 “봉숭아”라고 이름 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까만 씨, 자그마한 싹에서부터 점점 커서 꽃이 피고 씨방이 달리고 터지고 누렇게 시들어가는 ‘하나의 몸짓’으로 받아들였겠지. 저 몸짓은 씨, 싹, 꽃을 거쳐 다시 씨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니 그냥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봉숭아 하고 이름을 붙였을 때 가지게 되는 고정된 실체라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게다.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에 대응하는 어떤 변하지 않는 실체를 떠올리게 되니 이름을 붙이지 말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하나의 과정, 몸짓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실상에 맞다.

지난번 꽃집에 갔을 때 봉숭아 모종을 보고 약간 놀랐다. “요즈음도 봉숭아꽃을 알고, 또 심는 사람들이 있나? 심을 마당들이 있나?” 서울 변두리 우리 동네만 해도 올봄에 라일락 나무며 화단이 있는 집들이 두 채나 헐려 나갔다. 바로 건넛집도 5층 원룸으로 바뀌어 우리 마당을 훤히 들여다본다. 엊그제 취재 테이프를 법원에 넘기고 괴로워하는 기자와 새벽까지 마셨다. 만취하면 늘 하던 대로 마당 잔디에서 잠을 자다가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푸른빛에 잠을 깼다.

그런데 보여야 할 하늘의 조각달 대신 5층 원룸 불빛이 환하다. 새벽달 같았으면 나에게 노랗게 빛나는 미소를 보냈으련만. 건넛집 노부부에게, 꽃과 마당을 대신한 원룸은 시집 장가 보낸 자식들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이를 탓할 일만도 아니다. 돈이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는 게 슬픈 현실이긴 하지만 이것도 그렇다. 또 변해갈 게다. 봉숭아꽃 같은 ‘존재’만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사람과 돈 사이 같은 ‘관계’도 변하니 너무 애달파하고 화낼 일도 아니다. 사물, 일, 관계의 기초가 되는 원인과 조건들 중 변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으니 사물이며 일이며 관계에 이름을 붙이고, 이건 꼭 이래야 한다고 목을 맬 것까지는 없으렷다. 그저 제 할 일 하고 몸짓, 과정을 지켜보면 세상이 편하겠다.

법정스님 가시고 빈자리가 크다. 그분은 늘 무소유를 가르치셨다. 그런데 <무소유>라는 책을 ‘소유’하려고 아우성이라니 참으로 역설이다. 그분이 쓰신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고 추천하신 책들까지 덩달아 도서판매 순위에 올랐다. 스님께서 당신이 한 말씀이나 쓴 글이 다 부질없고 죽을 때 가지고 가려하니 더 이상 세상에 펴내지 말라셔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짧고 어리석은 생각에는 당신의 말과 글을 그냥 풀어놓아두고 가셨더라면 싶다. 당신의 몸은 물론이고 생각이나 말씀, 글이 따지고 보면 본디 당신 것이랄 게 없고 부모가 주신 성품, 머리, 스승들의 가르침, 사회의 현실 같은 여러 원인과 조건들이 맞닿아 생겨난 것이니. 그냥 풀어놓아주고 가셨더라면 <무소유>를 소유하려 애쓰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은 없었을 텐데.

옛글에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퍼 마라’고 했다. 그저,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또 지는 ‘몸짓’일 터.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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