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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04 21:14 수정 : 2010.07.04 21:14

김형태 변호사

‘피고인’ 김영수는 용산 항소심 법정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는 노부모와 처, 초등학생 아들딸이 있다. 남들처럼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는 용산 망루에서 어려운 선택을 했다. 자신이 사는 동네 역시 철거지역이라 용산 철거민들을 도우러 갔다가 그대로 망루에 남았다. 자기 동네 일도 아닌데 용산 식구들이 딱해서 남았다가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선택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의 처가 노모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하소연했다. 왜 애들 아빠를 사지에 불렀느냐고. 그 자리에 있던 철거민 연대모임 간사와 용산대책위 대표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있었다. 이 두 사람 역시 예전에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다가 감옥에서 몇 년씩 살고 나왔다. 중형을 선고받게 만든 변호인인 나 역시 가만히 입 닫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초등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감옥에 있다는 걸 이제는 다 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일러주었다. “네 아빠는 정말 훌륭한 아빠다.”

판사의 준엄한 선고를 듣는 내내 빌라도 법정을 떠올렸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판한다는 건가. 판결은 1, 2심 재판 과정에서 수없이 드러난 무죄의 증거들을 애써 외면했다. 토끼몰이식의 터무니없는 과잉진압으로 평범한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찰 지휘부의 책임에도 눈감았다. 가진 이들만 더 배불리는 부당한 재개발제도에 대해서도 모르쇠였다.

어려서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 그 힘들다는 법대에 들어가고 20대 초중반에 소년 등과하여 판검사, 변호사가 된 이들이 있다. 50대 중반이 된 그들은 대개 그저 저와 제 처자식 잘 먹고 잘사는 게 전부다. 어떤 이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진실 앞에 눈을 질끈 감기도 한다. 반면에 배운 것, 가진 것 없어도 이웃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함께하다가 피고인 자리에 서고 감옥에 가는 ‘별 볼 일 없는’ 이들도 더러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도였으나 기독교 성서의 산상수훈을 높이 받들었다. 세상은 부자와 권세 있는 자를 훌륭하다 일컬으나 산상수훈에서는 가난한 이, 온유한 이, 마음이 깨끗한 이가 복이 있다 한다.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험한 세상에서 위로받고 복 받으려 종교를 찾는다. 그러니 가난한 이가 복이 있고 정의 때문에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한 몸 ‘구원’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 그 구원은 선한 행실이나 노력에서 오는 게 아니고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간디는 이 지점에서 도저히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스승이 걸으신 길,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마다지 않는 그 길을 따라가야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가 사해진다는 식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했다. 그는 <신의 자녀들>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비록 종파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지만 예수 고난의 모습은 나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영원한 비폭력 신앙의 한 기둥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가 영원한 사랑의 법칙에 의해 우리 삶이 통제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면 예수는 헛되이 살았고 헛되이 죽은 것입니다.”

동서고금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라’는 거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곧 ‘사랑과 자비’다. 세상에는 구원이나 해탈에 관한 갖가지 교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사랑과 자비’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이나 해탈도 자기중심적 욕망이다.

피고인 김영수, 그는 별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구원이나 해탈의 도를 닦은 일도 없지만 이웃이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나앉으려 할 때 옆에서 함께해주었다. 그 결과 시퍼런 죄수복 입고 4년을 감옥에서 썩어야 하지만 그래서 그는 자랑스런 아빠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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