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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6 17:58 수정 : 2010.06.06 17:58

김형태 변호사

담장 너머로 빨간 장미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유월의 골목길. 오늘도 낙지장사 트럭이 지나간다. “자, 뻘낙지요, 뻘낙지. 목포 뻘에서 막 잡아 올린 낙지가 다섯 마리 만원.” 저 낙지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이 참으로 무섭고 황당할 게다. 인간들이 낙지를 만든 것도 키워준 것도 아니건만 갯벌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걸 어느날 갑자기 멋대로 잡아다가 만원 받고 판다. 또 나는 이걸 사서 기름장에 찍어 맛있게 먹는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서로 자기가 맞다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지만, 창조론의 제일 큰 약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삼라만상을 지어낸 신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어야 살도록 했다는 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일부에서는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창조론을 삼라만상이 신의 자녀라는 하나의 은유적 선포로서가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인다. 모든 게 신의 피조물이라면 목포 뻘낙지는 안 먹는 게 맞다. 아마도 가장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이들은 채식주의자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쌀이나 밀도 인간이 먹으라고 세상에 난 건 아니겠으나 이 무정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살려니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종교회의가 열렸다. 기독교, 불교, 유대교, 힌두, 이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다른 세계관과 교리를 가지고 있으니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그 일을 훌륭히 해냈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서 당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말라.’ 황금률이라 불리는 이 선언은 성서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다. 남에게서 바라는 것을 해주려다 보면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그게 커다란 고통이 될 수도 있겠다. 채식주의자에게 불고기 사주겠다는 호의는 호의가 아니라 괴롭힘일 터.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가 크게 빗나갔다. 압승을 기대했던 여당은 허탈해하고 야당들은 만세를 불렀다. 곰곰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부 정책과 다른 생각을 표현한 사람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조사받고 일터에서 쫓겨났다. 미네르바, 피디수첩, 전교조 선생님들, 김제동, 이정희 의원, 신상철, 김용옥…. 천안함 정부 발표에 토를 달면 북한에 동조하는 게 되는 상황에서 필부필부들이 신분이 노출되는 여론조사에 제대로 대답을 할 리가 없다. 사람들의 입을 막으니 국민들의 진정한 뜻을 읽을 수 없게 되고 그 결과가 선거에서의 참패로 나타났다. 현 정권은 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셈이다.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막는 걸 원치 않는다면 나도 다른 이가 말하는 걸 막지 말 일이다.

저 크고 길고 아름다운 강들을 파헤치는 것도 그렇다. 강바닥을 파고 운하를 만들어 배 띄우고 자전거길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들도 물론 있겠다. 하지만 그저 강둑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모래톱이 있고 구불구불 제 삼긴 대로 흘러가는 걸 바라는 이들도 많다. 저마다 강에 바라고 생각하는 게 다르니 어느 한편이 원하는 걸 일방적으로 다른 편에 강요하는 건 황금률에 어긋난다.

1993년 세계종교회의에서는 황금률의 실천지침으로 네가지가 제시되었다. 비폭력과 생명에 대한 외경, 인간은 물론이고 우리 행성의 동반자인 동물과 식물의 생명보호, 정의로운 경제질서, 관용과 정직성, 남녀의 평등과 동반자의식.

사람들은 가만 놓아두면 대개는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무정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저 목포 뻘낙지를 잡아먹고 쌀을 먹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느 당을 찍었건, 무슨 종교를 믿건, 영남에서 살건 호남에서 살건, 진보건 보수건, 모두가 명심할 일 딱 하나, ‘네가 다른 사람에게서 당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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