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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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느 봄날, 친구가 세상을 떴다. 서른넷의 젊은 나이였다. 본시 간이 나쁘던 터에 검사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그리되고 말았다. 친구가 땅에 묻히던 날 그의 고향 들녘은 유난히도 아지랑이가 아롱댔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무언지도 모르는 듯 무덤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포클레인으로 흙을 파고 덮는 걸 보며 그가 병상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몸이 회복되어 일어나면 검사 일 그만두고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살겠노라. 평소 그는 죄지은 자들을 잡아들여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도록 하는 데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죽음을 앞두고 긍지를 가졌던 검사 일을 그만두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기를 바랐던 걸까. 사람 좋던 그였으니 그런 말을 했으려니. 옛날 검사 시보 시절, 한번은 전철에 앉아 있는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 머리 빡빡 깎아서 죄수복 입혀 놓으면 어떤 모습일까. 고작 시보 생활 두어 달 만에 세상을 ‘범죄’라는 틀로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나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검사 노릇 한 10년 했더라면 틀림없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세상을 단죄하려 들었으리.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져 온다. 국민의 안위를 위해 군인은 적들을 죽여야 하고 검사는 죄인들을 잡아들인다. 그 일 잘하라고 국민들은 그 자리에 권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바로 그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을 시험한다. 자리에 합당한 그릇이 못 되는 이들은 그만 시험에 빠지고 만다. 자리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이 바로 그 자리인 줄 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신은 영원히 검사고 장군이고 대통령으로 남을 것처럼 착각한다. 궁력거중(窮力擧重)이라. 있는 힘을 다해 무거운 것을 든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 힘보다 조금 가벼운 것을 들어야 탈이 없다. 제 그릇보다 큰 자리에 앉으면 자리가 거기에 앉은 사람들을 망가뜨린다. 대통령이며 장관, 국회의원, 장군, 판검사. 모두가 국민들 편안히 살게 해 달라고 큰 권력을 안겨준 자리들이다. 제 분수를 잘 알아서 감당 안 되는 자리는 피해야 하는 법이거늘, 대개는 그저 자리와 권력을 탐내 저도 망치고 자리를 준 국민들도 고통스럽게 만든다. 스님, 신부, 목사 자리도 무거운 자리다. 신자들은 이 자리에 앉은 이들을 예수님, 부처님 모시듯 떠받드니 나는 아니라며 아래로 내려와 앉기가 쉽지 않다. 1900년대 사하라사막의 성자로 불렸던 샤를 드 푸코 수사는 그게 두려워서 신부 되기를 마다하고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그는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길 닦는 공사 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어머니가 그런 아들을 보고 지도신부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기왕 수도자가 되려면 신부나 주교가 되어 청중들에게 감동 어린 설교를 하고 그 영향력을 좋은 일에 사용하면 안 되나요? 그 배움, 배경을 다 버리고 왜 하필 원주민과 구별도 안 되는 막일꾼으로 저리 세상을 보낸다는 말입니까?” 푸코는 마흔둘의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되기는 했지만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회교도 원주민들과 함께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같이하다가 강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투아레그족 원주민들은 가톨릭 신부인 그에게 회교도 은수자를 뜻하는 ‘마라부트’라는 존칭을 바쳤다. 오래전 친구의 장삿날, 그가 현직 검사였다고 경찰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검사란 자리가 무슨 소용이리. 그는 검사가 아니라 자연인 아무개로 마지막 길을 갔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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