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18 21:35
수정 : 2010.01.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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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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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미선·효순 추모비 건립 모임에 갔다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노름을 해서 남편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는 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그 답이 걸작이다. 본래는 그 남편이 억만장자였단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낙동강·영산강이 수만년 내려온 억만금짜리인데 여기다 손을 대면 백만금짜리밖에 안 된다고.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더워지고 사막이 늘어나고… 그저 사람들이 벌이는 일이란 게 생각하면 모두 답답한 것들뿐이다. 그런데 세이건이라는 생물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좀 위안이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태양광선의 변형일 뿐이다.” 식물이며 짐승, 사람의 몸은 물론 말과 생각, 음악, 이 모든 게 따지고 보면 태양에너지가 변한 것이다. 지구를 뒤덮는 자동차며 매연이나 온갖 쓰레기도 결국은 태양광선의 변형이니 본래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여 걱정하는 게 넓은 틀에서 보면 부질없다. <주역>의 한 대목 같다. “하늘은 세상 만물을 사랑할 뿐 성인들처럼 걱정을 하지 않는다.”(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어리석은 이들은 강을 파헤치고 자원을 마구잡이로 써대고, 성인들은 이것을 보고 걱정을 하지만 하늘은 그저 만물을 사랑할 뿐이라고. 그래도 몸을 가지고 하늘을 이고 이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은 성인들처럼 이것저것 걱정할 수밖에 없다.
공자님은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씀도 하셨다. 주자는 이 말을 사물에 대해 계속 배우고 익히면 궁극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사물에 대해 많이 안다 해서 참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 싶다. 법을 수십년 공부한 헌법재판관들이 우리나라 수도가 서울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수도를 옮기려면 국민투표 해서 헌법을 바꾸라는 건데 대관절 헌법 몇 조에 수도가 서울이라 씌어 있어서 그 헌법조항을 개정한다는 건가.
엊그제 검찰총장은 법원의 용산수사기록 공개를 두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검사는 피고인과 대등한 위치에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한쪽 당사자일 뿐이다. 절도 피고인이 자신에게 징역형을 내린 판사에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마디 하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다. 애초 검찰은 수사기록에 국가안보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1심 법원의 공개 명령을 거부했다. 하지만 막상 공개된 기록을 보면 화재 원인과 경찰의 공무집행이 적정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진술들이 있을 뿐이었다.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이러한 증거들을 스스로 제출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법원에 대해 기피신청을 하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법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거다.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언론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다른 판단을 내린 판사들의 성향을 문제삼고 나서는 것도 그렇다. 이해갈등의 최종심판자라는 법원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보수 자신의 기반을 허무는 일이다.
헌법재판관이며 검사, 기자들 모두 배울 만큼 배운 이들이다. 사물에 대해 배우고 익혔건만 세상 이치를 깨친 건 전혀 아니니 격물치지의 해석을 달리해야 할 성싶다. 왕양명은 공자의 이 말씀을 이렇게 풀었다. 본래 궁극의 도리에서 보면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지만 이 세상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으니 악을 없애고 선을 행하는 게 격물이요, 욕심을 없애는 게 격물이니 그리하면 참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하늘은 세상을 그저 사랑할 뿐 이 걱정 저 걱정 않음을 알면서, 하늘이 아닌 우리는 성인들과 더불어 이 걱정 저 걱정, 걱정이 많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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