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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21 22:09 수정 : 2009.12.21 22:09

김형태 변호사

평양 순안비행장 너른 들은 언제나 바람이 세다. 저 멀리 야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활주로에 비행기 몇 대와 자그마한 건물이 서 있다. 나뭇잎이 푸르러 가는 오뉴월에도 가 보았건만 기억 속에서는 늘 찬 바람 부는 텅 빈 들판이 떠오른다. 새로 지은 베이징공항의 북적이는 사람들과 명품 화장품, 양주 가득 찬 면세점에 대비되어서일까. 일주일에 몇 번, 150여명을 태우는 비행기가 베이징과 선양에서 들고 나는 게 전부이니 한산하다 못해 쓸쓸도 하다.

대동강 가운데 조그마한 섬 양각도 호텔에는 겨우 십수명의 중국인 투자자들이 묵고 있었다. 지난 몇년간 식당이며 호텔에서 마주치던 남쪽 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남과 북이 서로 감격에 겨워 손 맞잡고 부르던 ‘고향의 봄’이며 ‘반갑습니다’ 같은 노래들도 다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도움 받는 쪽의 자존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2, 3년 전보다는 활기차고 밤 불빛도 밝아졌지만 12월 평양 거리는 갈색, 혹은 국방색이다. 그래도 빨간색 혹은 연두색 점퍼를 입은 여성들도 제법 보이고 특히 30대 이하 여성들 상당수가 키높이 신발을 신고 있다. 마침내 모진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5, 10㎝ 커진 키만큼 그이들에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일까. 하지만 아직도 경제적 어려움은 상당한 듯했다. 화폐개혁으로 사실상 시장거래가 어려워진 듯 보였다. 함북 혜산에서는 근방 희천발전소를 짓고 있는 인력들에게 필요한 양식이며 물자들을 주변 시·군 인민들이 지원하고 있었다.

북쪽 헌법 제63조는 “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고 되어 있다. 집단주의는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일종의 도덕규범이다. 오로지 이타를 강조하니 남쪽의 어느 종교보다도 더 종교적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성서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집단주의는 사실상 ‘전체를 위한 하나’를 강조하다 보니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속성을 낮게 보아 빵 문제의 해결에 일단 실패하였다. 북은 남을 퇴폐·이기주의라 하고, 남은 북을 전체·획일주의라고 서로 비판한다.

사실 고타마께서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탐내는 마음(貪), 화내는 마음(瞋), 어리석은 마음(癡)을 드셨지만 사람의 존재 조건을 생각하면 이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늘 아침상에 오른 쌀, 고등어, 돼지고기를 먹어야 이 한목숨이 유지되니 음식에 대한 욕구는 존재의 필수 조건이다. 남녀 간의 성적 욕구가 없으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 게다. 화냄은 또 어떤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집 잃고 일터에서 쫓겨나고 무시당하는 현실과 제도에 분노하는 이들 덕분에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사회가 진보해온 거다.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 욕구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공적 분노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이 한 세상 태어나서 살다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이 색(色)의 세계를 꿈이라, 없는 거라 부인하고, 번뇌를 떠나 자신의 해탈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게 아니라 번뇌가 곧 보리요, 중생이 곧 부처라는 믿음도 있다. 이 세계는 그냥 없는 게 아니라 분명 있되 독립 불변의 실체가 없고, 모든 게 서로 기대어 있다. 개인의 욕구를 부인하지 않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되 나의 이익을 넘어서서 다른 이, 다른 것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 남과 북이 함께해야만 넘어설 수 있는 산이다.

빵과 말씀 모두 필요하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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