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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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적막하다. 들은 가을걷이가 끝나 텅 비었고, 뜨락에는 국화마저 다 시들었다. 1년 내내 사람들로 북적이던 산도 온통 황톳빛 낙엽들뿐. 이 적막이 싫어서 다들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겐가. 이렇게 한 번 비우기에 봄에는 다시 새잎들이 들어설 수 있을 터. 자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어수선한 인간세상에서 언제부터인가 그 흔한 사랑노래며 가을시 한 편 듣기가 어려워졌다. 우리 귓전에 늘 맴돌던 그 노래들은 요즘 소위 댄스음악에 밀려 다 사라졌다. 이게 다 ‘돈’이 만들어낸 못된 조홧속이다. 돈은 우리의 청춘들을 입시와 취직전선이나 혹은 컴퓨터게임 같은 무의미한 소일거리로 내몰아, 선배들처럼 사랑에 울고 사랑에 죽는 건 이제 드문 일이 되었다. 연애와 결혼이 무어 그리 대수냐는 청춘들이 날로 늘어간다. 도를 통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가정 꾸려 살기가 너무 힘이 들다 보니 그저 이 한 몸 편하고 보자는 게 우선순위가 된 결과다. 무슨 황금돼지해인가라던 작년을 빼고는 수년째 출산율이 1.2명을 맴돈다. 경제성장론자들은 물론이고 분배를 내세우는 진보학자들도 저출산을 걱정하고 있다.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소비수요가 줄어들어 성장이 더디거나 후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좁은 땅덩이에 오천만, 육천만으로 계속 인구가 늘어야 한다는 건데 참으로 끔찍하다. 작년 이맘때 낙엽이 다 진 설악산 십이선녀탕에서 귀때기청봉을 가는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을 서너 팀 만났다. 산에서 사람이 반갑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정말로 반가운 마음에서 인사하며 지나쳤다. 매 주말 북한산이며 도봉산에서는 앞사람 엉덩이만 보며 산을 오르내리니 풀썩이는 먼지가 짜증스럽고 사람들이 그저 밉다. 수십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 참외는 내다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나그네와 나누어 먹으려고 키웠다. 남북한 합쳐서 한 이천만명 정도면 어떨까. 경제학자들이야 펄쩍 뛰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반가워하고 서로 대접하면서 살 게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임금을 더 올려주고 소비수요가 줄면 자원이나 환경이 보전될 수 있다. 소득이 반쯤 준다 해도 분배가 고르다면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에 물자의 부족을 참을 수 있겠다. 6, 70년대 아이들은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하니 일찍 철이 들었다. 아마 국민소득 3, 4만달러 수준은 되지 싶은 강남의 아이들은 판사가 되어서도 어머니 치마폭을 못 벗어난다. ‘자발적 인류멸종운동’(VHEM)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이기심과 탐욕으로 자신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자연환경을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으므로 자발적으로 서서히 인구를 줄여 지구상에서 사라지자는 것이다. 만약 일순간에 출산이 중지된다면 당장 낙태수술이 사라지고, 5년 뒤에는 다섯살 이하의 아이들이 한 해에도 수백만명씩 굶고 병들어 죽는 끔찍한 일들이 사라지고, 20년이 지나면 청소년 범죄가 없어진다. 바다는 깨끗해지고 전쟁과 미움이 끝나고 “마지막 남은 인류는 마지막 석양을 평화로이 즐기면서 자기들이 에덴동산에 가장 근접한 지구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란다. 많은 인구로 인한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소비수요,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사람을 소외시키고 미래 후손들이 살아갈 자연환경을 미리 당겨다 써버리는 일일 뿐이다. 청춘들이 더이상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기를 꺼리는 건,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고성장이 가져온 채찍이자 변증법적 희망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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