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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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칼럼
이제 막 시작된 로스쿨 입학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이른다. 법은 정말 빵의 학문인가 보다. 법 근처에서 얼쩡거리면 돈이 나오고 권력이 나온다. 오래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술 마시고 자정이 넘어 파출소 앞을 지나가도 법대생이라면 그냥 보내 주었다. 괴테며 바이런, 멘델스존도 처음에는 법대에 들어갔다. 아마도 바이올린이 빵과 권력을 보장해 준다면, 법으로 먹고사는 이들은 모조리 음대로 몰려갔을 게다. 모든 이해관계가 법으로 규율되니 위세를 떨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법대에 들어가면 빵이나 권력을 넘어선 ‘정의’라는 가치를 배웠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칸트의 이 말은 법대생들의 속물근성을 가려주는 멋진 치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제 논에 물대기 식의 허무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란 게 저마다 다르니 그렇다. 시행 일년이 넘어선 비정규직법을 보아도 그렇다. 강남성모병원은 홍 간호사에게 줄 월급으로 240만원을 책정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에게는 180만원만 주고 60만원은 파견업체로 돌린다. 귀찮은 노무관리를 대신 해 준 대가다. 그리고 2년이 되기 전에 병원일을 그만두란다.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싫어서다. 비정규직법이 병원 쪽에는 정의겠으나 홍 간호사에게는 임금과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불의다. 저 옛날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벌써 알아보았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도 법이란 계급의 이해를 관철하는 도구일 뿐이다. 지금 법조인들이 높은 대접을 받고 있지만 이런 시각에서 볼 때는 그저 자본가 계급의 머슴에 불과하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형방이나 이방, 호방 격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법치주의’란 말이 자주 들린다. 법을 잘 지키라는 ‘준법질서’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정치인, 기업가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법조인들도 법치주의를 그저 법률의 형식을 띤 법에 복종하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과 법원, 검찰, 변호사, 법학자 등이 모두 참석한 ‘법의 지배’ 행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법치주의가 경제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따져보는 토론이 있었다.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면 효율성이 생겨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인 듯하다. 그러나 법치주의는 준법질서도 효율성을 보장하는 규율도 아니다. 헌법 교과서에는 이렇게 써 있다. ‘법치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국민의 자유와 평등, 정의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만들어 내고 제한하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애초 법의 지배는 절대군주가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맞서 부르주아 계급이 주창한 개념이다. 그 뒤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형식적 법률에 맞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실질적·사회적 법치국가의 이념이 등장하여 1949년 독일 기본법에서 현실화되었다. 요컨대 법치주의란 인간의 존엄이나 국민의 자유·평등·정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법률은 더 이상 법이 아니란 뜻이다. 노동의 권리나 알 권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은 불법이다. 서민대중의 이익을 침해하는 비정규직법, 상속세, 종부세 완화법, 집시법 등을 그저 법률이니 지켜야 한다며 법치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헌법의 기본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란 국민 대다수 서민대중과 약자, 차별받는 이들의 이익이다. 법치는 준법질서가 아니라 국민을 받드는 덕치(德治)다.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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