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0.01 19:51 수정 : 2008.10.01 19:51

김형태 변호사

김형태칼럼

다 잘려나가고 뿌리뽑혔다. 봄이면 그 집 마당에선 목련꽃 백, 천송이가 온 동네를 하얗게 밝혔다. 폐지며 페트병 실은 유모차를 밀고 가던 노인도 물끄러미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목련 흰빛들의 소리없는 아우성. 담 너머 얼굴을 내밀던 빨간 장미도, 이 가을 노랗게 물들어 가던 감나무도 사라졌다. 이웃집 주인이 암으로 세상을 뜨자 집장사가 솔개, 병아리 낚아채듯 그 집을 사들였다. 그리곤 그 땅 위에 방들만 빼꼭한 원룸 건물을 지었다. 팔십평쯤되는 땅에 방이 20여개가 나온다니 월세 30만원만 쳐도 한달에 600만원을 가만 앉아서 번다. 아침에 허둥지둥 일터로 가는 동네 사람들이며 폐품수집하는 노인이 콘크리트 덮인 골목길에서 바라보던 조그만 즐거움과 맞바꾼 셈이다.

내년 우리나라 살림살이에 드는 돈이 273조8천억원이란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전성시대다. 월 600만원의 수입 대신 마당에 장미며 감나무를 선택할 이는 거의 없을 듯하다. 정원을 선택해도 여전히 쓰고 남을 만큼 돈이 많거나 아니면 돈이나 편안함을 거부할 배포를 타고 나지 못한 필부들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동네의 목련이며 장미는 잘려나가게 되어 있다.

한동안 노자(老子) 바람이 불더니 슬며시 사라졌다. 그 ‘늙은 이’께서는 똑똑함이나 귀한 재물을 떠받들지 말라셨다.(不尙賢 不貴難得之貨) 이 세상 모든 다툼을 잘 살펴보면 원인은 두 가지로 돌아간다. ‘내 말이 옳다’ 아니면 ‘내가 저 귀한 것을 가지겠다.’

‘내 말이 옳다’를 살펴보면 종교를 둘러싼 다툼이 그렇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그렇고 이 집 저 집에서 벌이는 부부싸움이 그렇다. 어찌보면 이 명분 싸움은 이익을 둘러싼 다툼보다 더 무섭다. 깨달음이 무엇인가에 관한 게송 때문에 신수 스님의 제자들은 1대조 달마를 이은 6대조 혜능을 죽이려고 십수년을 따라다녔다. 중세 가톨릭은 수많은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불에 태웠다. 개신교의 장 칼뱅은 가까운 친구마저 이단으로 무참히 처형하고 제노바에 신의 나라를 세운다며 공포정치를 폈다. 일상의 부부싸움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 않고 내 말이 옳다고 우기는 데서 비롯된 것일 터.

‘내가 귀한 것을 가지겠다’는 이익 다툼은 사소한 도둑에서부터 전 세계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국제투자금융 자본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널려 있다. 하얀 와이셔츠, 최고급 양복에 명문대 출신의 말끔한 미국 리먼브러더스 임원은 최신 금융기법을 내세워 금융에 ‘금’자도 잘 모르는 우리를 주눅들게 했다. 결국 머나먼 한국의 소액 투자자들 펀드마저 반 토막내 버리고 제 배만 불렸다. 겉으로는 명분싸움으로 보이지만 속으론 이익싸움인 경우도 많다. 미국은 이란, 이라크, 북한처럼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나라들에 ‘악’이라고 딱지를 부쳤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는다며 이라크를 침략하였지만 속내는 ‘석유’와 미국의 패권이다. 종부세를 부자들에 대한 부당한 징벌이라 주장하는 이명박 정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기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은 이들이 미국·영국·일본 등 모든 나라가 부과하는 보유세를 안 내려는 속심을 ‘부당한 징벌’ 운운하는 명분으로 감추려 든다.

노자가 아무리 말려도 세상은 명분과 이익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갈 게다. 그러다가 제 풀에 뉴욕 월가가 무너지고, 세상의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새로운 세상이 다시 시작될 게다. 제 풀에 무너지는 것, 이게 변증법의 묘미다. 하지만 당장은 목련이 사라진 골목길이 슬프다.

김형태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형태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